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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꽃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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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20. 2020

수박풀(아가씨의 아름다운 자태)

여름_8월 4일의 탄생화

어느 작은 마을에 부모님을 여읜 채 홀로 살아가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살아있을 때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미녀였다. 그녀가 죽은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


하지만 그녀에 비해 딸은 못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소녀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항상 어머니와 비교했다. 그들은 소녀의 어머니가 가졌던 아름다움에 비하면 소녀의 얼굴은 참으로 보잘것없다고 여겼다. 어떻게 그 아름다움을 물려받지 않았을까, 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술에 취해 소녀가 사는 집을 향해 괜히 욕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소녀는 아름다움의 의무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녀에게 아름다움의 의무를 씌웠다. 그 의무를 진 건 마을에서 오직 한 사람, 소녀뿐이었다.


소녀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왜 어머니는 아름답게 태어나서 자신에게 벗어나지 못할 굴레를 씌우는가. 매일 밤 잠에 들기 전 소녀는 거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단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소녀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속마음을 뱉은 것, 그뿐이었다.


"나도 한 번쯤은 아름다워지고 싶어요, 엄마. 하루, 아니 찰나의 순간만이라도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게 뭔지 알고 싶어요."


다음날 소녀는 두 눈이 부은 채로 잠에서 깼다. 새벽이슬을 맞은 새들이 창가에서 짹짹거리는 맑은 아침이었다. 약간의 찌뿌둥함이 느껴졌다. 기지개를 크게 한 번 켜고 침대에 앉아 무심코 거울을 본 소녀는 화들짝 놀랐다. 거울 속에는 자신이 여태껏 본 적 없던 아름다운 미인이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소녀가 지금 보고 있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 그 자체였다. 


소녀는 곧바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곤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렇게 이뻐졌다고 울면서 소리쳤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나,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소식은 온 마을 사람들을 이른 아침부터 광장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하룻밤 새에 아름답게 변한 소녀를 두고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하지만 해가 중천에 뜨자마자 웬일인지 소녀의 얼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원래 소녀의 얼굴로 변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녀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때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다.


   "마녀다! 마녀가 나타났다!"

   "마녀가 위험한 마법을 쓴다! 물러나요 다들!"


마을 사람들은 삽시간에 공포감에 휩싸였다. 말로만 들었던 무시무시한 마녀가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마을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넣었다. 광기는 사람들을 예민하게 만들었고, 예민해진 사람들은 틈만 나면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평화롭던 마을엔 다툼과 갈등이 퍼졌고, 민심은 점점 피폐해졌다. 그리고 어느새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된 원인을 소녀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한편 소녀는 그 날 이후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무서웠다. 마법처럼 변해버린 자신을 마녀라고 부르고 역겹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소녀를 해칠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과거엔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할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엇도 소녀를 구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매일 아침 아름답게 변하는 자신의 모습과, 곧이어 원래의 못난 모습으로 돌아오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소녀는 세상의 모든 불행을 자신이 껴안은 것만 같아 심장이 쓰라렸다.

마을 어른들은 흉흉해진 마을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마녀를 죽여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며칠 뒤, 야심한 밤에 사람들은 손에 횃불과 농기구를 들고 소녀의 집 앞에 모였다. 그리고 소녀의 이름을 연달아 크게 불렀다. 집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사람들은 마녀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에 찬 마을 사람들은 지금 순순히 집에서 나오면 곱게 마을에서 내쫓아주겠노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집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만약 아침까지 마녀가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직접 들어가서 마녀를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집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마을에서 가장 우악스러운 대장장이가 곡괭이를 움켜쥐고 집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문고리를 쳐부수기 시작했다. 문고리는 힘없이 바스러졌다. 사람들은 반쯤 부서진 문을 박차고 소녀의 집으로 몰려 들어갔다. 집 안은 텅 비어있었다. 사람의 온기는 온 데 간 데 없이 찬바람만 불고 있었다. 마녀가 대체 어딜 간 건지 다들 어리둥절하던 찰나, 작은 호미를 들고 아빠를 따라온 어린아이가 방 한 구석에서 작은 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작고 하얀 꽃이었다. 아이는 아빠에게 꽃을 가리켜 보였지만 어른들은 꽃 따위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이는 어른들 몰래 그 꽃을 자기 집 마당에 옮겨 심었다.


그 꽃은 신기하게도 아침이면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웠다가 정오가 되기 전에 금세 져버렸다.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아이는 그 꽃을 사랑으로 키웠다. 마을에서 그 꽃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오직 그 아이 하나뿐이었다. 


_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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