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꽃 한 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라이세이 Sep 21. 2020

하이포시스 오리어(빛을 찾다) #2

여름_8월 26일의 탄생화

"하... 마땅한 색이 없네."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이게 걱정이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된 색 선택의 고통. 미술학원에서도 항상 스케치는 좋은데 색을 잘 못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여파가 됐을까. 성인이 되고, 디자이너가 된 지금까지도 색을 고르는 게 너무 어렵다. 이번 의뢰는 꽤나 큰 전시관에서 온 오퍼라 어떻게든 좋은 작품을 작업하고 싶었다. 스케치는 완벽했다. 최근 2년간 작업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으로 색을 덮는 순간, 너무나도 초라해졌다. 

"단순하면서 화려하고, 깨끗하면서 여운이 남는 색..."

이런 색깔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계속 찾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색 조합 사이트를 들어가 보았다.


"내티어... 로코코 시대의 차분하고 아름다운 파란색. 트와일라잇 퍼플... 황혼녘 아주 잠깐 볼 수 있는 색. 번루색...  아침에 활짝 핀 닭의 장풀 색."


아무리 찾아봐도 작품에 딱 맞는 색이 없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볼까. 


"마티스... 보색의 아름다움. 고흐... 파스텔톤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색. 알폰스 무하... 원색과 파스텔톤의 조화."


괜히 찾아봤다. 천재들이 사용한 색을 보면 너무나도 자괴감이 든다. 이렇게 보면 색 감각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 같다.

  

"단순하면서 화려하고, 깨끗하면서 여운이 남는 색...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프로그램에서 색을 다 빼보았다. 완벽한 스케치. 하지만 색을 넣으려고 하면 내가 의도한 선들이 다 묻혀버린다. 

   

"뭐가 문제지."


이번에는 내 방을 둘러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로 도배된 벽. 

   

"프란시스 하... 동주... 대부...."


이상하게도 전부 흑백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들보다 영화의 의도가 절실히 보였다. 

   

"어쩌면..."


나는 급하게 배경에 아우터 스페이스 색을 칠하고 선을 모두 흑백 반전으로 하얗게 만들었다. 하얀 선들은 돌에 피어난 석화처럼 보였다. 선의 두께가 명확히 보였고, 마무리가 딱 떨어졌다. 배경은 자신의 색을 숨기면서 선을 밝혀줬다. 빛이었다. 우주 바깥의 어두움을 표현한 아우터 스페이스 색과 우주의 모든 색을 합쳐놓은 하얀색. 내가 그은 모든 선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이거였구나, 단순하면서 화려하고, 깨끗하면서 여운이 남는   색."


_제곱



매거진의 이전글 하이포시스 오리어(빛을 찾다) #1 - 반짝이는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