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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23. 2020

플라타너스(천재)

겨울_12월 23일의 탄생화

"드디어, 드디어 성공이야. 다음 주면 내 꿈은 이뤄진다. 내 이름은 이제 성공적인 신화가 되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거라구."


P교수는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무수한 개발 도면과 수식들, 3D 입체 모형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P교수의 책상 한 편에는 그림 한 장이 코팅되어 걸려있었다. P교수가 초등학생 시절 과학 경진대회 그림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아직 미지의 천체로 알려져 있는 블랙홀을 직접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겠다는 다짐과 포부를 담은 그림으로, 블랙홀 안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장엄하게 그려져 있었다. 블랙홀로 들어가 웜홀을 통해 화이트홀로 나오는 미지 탐험. 온갖 모험 소설을 읽으며 자라왔던 P교수에게 블랙홀 여행은 자기 인생의 최종 목표이자 꿈이었다.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이 블랙홀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실험에 도전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P교수는 남달랐다. P교수의 두뇌는 이 말도 안 되는 실험을 성공시킬 만큼 뛰어났다. 무수한 도전과 낙담 끝에 드디어 바라고 바랐던 완전한 블랙홀이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사실상 연구는 끝났다. 지난주 P교수의 개발팀은 3초간 작동하는 쌀알 크기의 블랙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60평 규모의 특수 실험실에서 생성된 이 작은 블랙홀은 3초 동안 실험 공간을 그야말로 '무(無)'의 상태로 돌리고는 사라졌다. 온갖 최첨단 기구가 설치되어 있던 실험공간은 블랙홀이 사라지고 난 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공터가 되어버렸다. 이제 제대로 된 블랙홀을 만들 날만 남았다. 이미 남해안에 있는 100평 남짓의 무인도 위 공터에 블랙홀 생성을 위한 장치들이 설치되고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 오후 1시, 블랙홀 생성 시연이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이었다. 블랙홀 유지 시간은 단 2초였다. P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2초 정도의 블랙홀 생성은 무인도를 아예 사라지게 할 만큼 강력하며, 그만큼 블랙홀의 힘을, 그리고 블랙홀 생성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성공 소식이 알려지면 세계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고, 블랙홀을 이용한 미지 탐험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P교수가 자신의 성공적인 미래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을 무렵, P교수 연구팀에서는 점점 두려움에 찬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생성된 블랙홀을 제대로 끄지 못하면 그야말로 종말이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블랙홀 개발이 진전을 보이면서 환호를 하던 연구원들은 시연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공포감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연구가 세계를 종말 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게 삶의 마지막이라면 가족을 보러 가고 싶다는 연구원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고, 이 실험을 중단해야 하지 않겠냐고 강하게 따져 묻는 연구원도 있었다. 그렇게 블랙홀 시연이 가져올 공포스러운 미래는 연구원들을 광기로 몰아넣었다.


시연이 하루 남은 일요일 저녁, 연구원들은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 P교수의 방으로 몰려 가 둔기로 그를 살해했다. 그리고 연구소 옥상에서 떨어트렸다. P교수 살해에 가장 앞장섰던 연구 1팀 팀장은 곧바로 자신이 아는 기자에게 연락했다. 내일 블랙홀 시연이 아닌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대규모 기자회견을 준비해달라고 말하고 옥상에서 내려갔다. 다른 연구원들도 말없이 그를 따라 내려갔다.



블랙홀 416번째 모델 시연 불가, 개발 실패로 밝혀져… 
비관에 빠진 P교수 자살
한국블랙홀 개발연구소 신임 소장에 연구 1팀 K팀장,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한국블랙홀 개발연구소 417번째 새로운 모델 개발 착수, 
"이전보다 성공 가능성 높아 보여"
당·정·청, '한블연(한국블랙홀 개발연구소)'에 예산 3조 배정… 
글로벌한 대규모 투자처 만든다
한국블랙홀 연구소 개발직 평균 급여 1년 새 2,000만 원 올라… 
공기업 역대 최고
한국 과학의 미래이자 산실, 한국블랙홀 연구소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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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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