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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Dec 27. 2015

[군대, 근데.] 또 삐었다.

나는, 그냥, 있다.

또 발목이 말썽이다. 왼쪽 발목이다. 이 놈의 발목이 시도 때도 없이 아프기 시작한 것은 언젠가 발목을 삐끗한 이후부터인데, 그 언제인가가 언제인가를 말하기가 애매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삐끗한 그 발목을  또다시 삐끗했더니,
이 아픈 것이 그 전에 삐끗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 삐끗한 것 때문인지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후보, 2014년 9월 15일 (입대날)

우선 그 언젠가의 첫 후보를 생각해보자면, 2014년의 9월의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입대날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모인, 어정쩡하기만 한, 1200여 명의 장정들이 한꺼번에 모였다. 그리고 한꺼번에 훈련소로 향했다. 그 무리에 휩쓸려, 나 역시도 훈련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을 것이다.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걸음을 옮기며 잠깐이나마 등 뒤 어딘가에 계셨을 부모님을 바라보고자 몸을 돌리려다가 그만, 누군가의 움직임에 걸며 왼쪽 발목이 삐끗했다.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훈련소로 들어가야 하는데 발목 삔 걸로 멈춰 서 있을 수는 없잖아,라고 생각하며 그냥, 들어갔다. 예전부터 발목을 삐끗하고서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지곤 했으니깐. 그 상태로 나는 훈련병이 되었다. 


훈련병이 되었더니 발목이 아프다고 해서 가만히 서 있거나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파도 곧 괜찮아지겠지, 이 정도는 견딜 만 해,라고 생각하며 그냥 버텼다. 그랬더니 발목이 삐어 있는 상태가 그냥 평범한 나의 상태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이 아픔은, 그냥,이다. 애초부터 나는 이 발목이 아파왔던 것이다. 오히려 내가 느낀 문제는 내성발톱 때문에 엄지발가락의 발톱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발목이 아픈 것은 그냥, 이었고 발톱에 생긴 물집은 이상, 이었다. 게다가 나는 평발,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의무대 진료를 희망했다. 내성발톱은 연고를 받았고, 평발은 신발을 크게 신으라고 군의관의 진단을 받었다. 훈련소였고, 내게 주어진 신발은 처음 보급받은 신발, 하나였다. 평발도, 그냥 버텨야만 했다. 예전에 신체검사를 받을 때 평발이라고 미리 말할 걸, 그러면 훈련소에 안 왔을지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해봤지만 이미 나는 훈련병이었다. 어찌어찌 훈련소에서 훈련들을 모두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랬더니 훈련소 기간 5주가 지났고, 직별별 교육을 받는 후반기 교육도 지났다. 군대에서 받을 교육이란 교육은 다 받고, 실무로 향했다. 2014년 11월이었다.



두 번째 후보, 20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첫 당직)

두 번째 후보를 떠올려 보자면, 실무에 와서 막내 생활을 하다가 당직을 서야 하는 날이었다. 아마도 나의 첫 당직, 20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해군의 근무복의 신발은 육군이나 공군이 신는 군화와는 다르게 구두이다. 훈련병 막바지에 보급받은 구두를 신고 당직 밥 교대를 할 때였는데 문 앞 화단에서 그만, 발목을 삐끗하였다. 왼쪽 발목이었다. 이번에는 그 자리에 곧장 주저앉고 말았는데 여태껏 그냥,이라고 생각하며 아파왔던 그 아픔이 그냥, 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구두도 벗겨져 뒹굴었는데 내가 신는 구두는 285mm였다. 훈련병 때 구두가 밖에서 신는 신발보다 작게 나왔다는 동기들의 말에, 사회에선 280mm을 신었지만 군 생활하며 전역할 때까지 신어야 하는 구두를 285mm로 보급을 받았다. 처음 신어보았을 때, 조금 컸지만, 이게 큰 게 아닌가 보다, 하며 그냥 받았다. 그런데 구두를 신고 발목을 한번 삐끗해보니 이게 큰 게 아닌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같이  훈련받았던 동기 놈들을 믿은 내가 바보지. 걔들이 뭘 안다고. 어쨌든, 그렇게 또 발목을 삐었다.  훈련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발목을 삐끗하고서 그 자리에 잠시  주저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막내였다. 주말이면 선임들을 따라 축구를 하러 나가야 했고, 주전자에 물도 떠다녀야 했다. 내 발목이 삔 것을 이번에도 또, 그냥,으로 뒀다. 그랬더니 그냥,처럼 또 느껴졌다. 


세 번째 후보, 그리고 그 사이 언젠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났다. 여전히 내 발목은 삐어있다.  작년의 크리스마스 이브 이후로도 자주, 발목을 삐었다. 이 놈의 구두는 여차하면 그냥, 혼자서 휙 돌아가며 내 발목을 걷어차 버렸기 때문. 왼쪽  발목뿐만 아니라 오른쪽 발목도. 왼쪽 발목이 더 이상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니, 왼쪽 발목이 삐인 것이 그냥, 이었으므로 오른쪽 발목도 그냥, 삐었다. 오른쪽이건, 왼쪽이건 성한 발목이 없다. 그런데 그냥, 지내고 있다. 훈련병도 아니고, 막내도 아니지만 발목이 삐인게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더니, 그리 되었다. 굳이 다른 처방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 입대를 할 때부터 발목이 삐인 것을  그냥,이라고 여겨왔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발목이 삐인다고 해서 특별할 것이 전혀 없다. 


내 발목이 삔 것이 대수롭지 않다 보니, 지금 아픈 발목이 처음 삔 것으로 추정되는 입대날부터 지금까지의 생활도 이젠 그리 대수롭지 않다.

이 생활도 마치 삔 내 발목처럼 그냥,이다.  



이제 와서 발목이 삔 것의 처음을 찾으려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어쩌면 지금 제시한 날들 중이 아닐지도 모른다. 입대하기 이미 전부터 삐여 있었을지도. 괜히 생각해보려 발목을  들추어내면, 삔 내 발목만 불쌍할 뿐.


그래서 입대날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그냥, 있다.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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