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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Oct 29. 2020

옷은 보호막이다. 누드로부터, 추위로부터, 위험으로부터

옷은 철저히 보호막이다. 누드로부터, 추위로부터, 위험으로부터.

패션 조합을 신경 써서 옷을 입는 편이 아니다. 패션에 무신경하여 있는 옷을 무심히 걸치고 집을 나선다. 주로 입는 몇 종류의 옷이 반복된다. 입고, 빨래하고, 건조대에 널어둔다. 갈아 입은 옷을 빨래하면 건조대의 옷으로 바꾼다. 순환 복장.

중고등학생 때와 군대에서가 편했다. 교복을 입거나 군복을 입는 일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도 유니폼을 입는 곳이라면 옷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장을 입을테니 와이셔츠만 잘 빨아서 갈아 입으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지금 회사는 정장을 입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곳이다. "면접 보러 가?', "소개팅하니?"

그런 관심에서 벗어나려면 사복을 입어야 했다. 매번 같은 옷을 입기엔 남의 사복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몇 종류의 옷을 구비한다. 그리고 다시 순환 복장. 이런 패션 테러의 연속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변한다. 그런 계절감의 변화는 주로 온도에서 체감된다. 혹은 사람들의 옷차림 변화로 체감된다. 사람들은 반팔을 숨기고 긴팔 옷과 겉옷을 두른다. 그런 사이에서 나의 순환 복장은 멈출 줄 모른다. 계절감을 잊고 여전히 반팔이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반팔 차림을 하고 돌아다니면 힐끗, 힐끗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아직 내가 느끼기에 실내는 덥다. 마스크까지 끼고 있는 요즘이라면 팔이라도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겉옷은 하나 챙긴다. 밖은 그래도 차가운 온도가 느껴지기에. 추위로부터 보호막이다. 잠시동안의 이동 시간을 위한 것이다. 집에서 회사, 회사에서 헬스장, 다시 헬스장에서 회사, 회사에서 독서실. 종종 안에 입은 옷과 양말과 신발과 겉옷의 매치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엘리베이터 거울이라든가, 상가의 유리문에 비친 모습을 볼 때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 입진 않는다. 면접을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소개팅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기에 곧장 목적지로 향한다. 지금 나의 목적지에서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모자람 없는 복장이다. 그냥 이대로 보호만 해주면 된다. 누드로부터, 추위로부터,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어떤 위험일쏘냐. 글쎄, 사람들로부터 질책받을 위험? 시기와 질투와 관심의 위험? 뭐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맞딱뜨려야 하는 그런 종류의 것들 말이다. 위아래로 갖춰 입고만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쓰겠다,고 글을 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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