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라이세이 Oct 30. 2020

쓰지 않은 휴가를 통보받았다.

회사에서 1년 동안 주어지는 연차는 15일이다. 경영지원팀에서 쪽지가 왔다. 한 해가 다 끝나가는데 연차가 10일 이상 남은 사람들은 얼른 연차를 소진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연차가 다 소멸될 것이라고. 그 말을 보고 휴가를 썼다. 그 덕에 금요일인 오늘 회사를 나가지 않았다.

휴가를 아껴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쓸 일이 없었다. 여행을 즐기는 것도 아닌 나는, 쉰다고 특별히 하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집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늘어지고, 먹기만 하고, 후회했다. 일주일에 2일 정도의 주말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마저도 가끔은 주말에 '차라리 일이나 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니라 다른 주말 일자리를 찾아볼까 고민한 적도 있다.

어쨌든 회사를 나가지 않은 금요일인 오늘, 역시 나는 역시나. 한참을 늘어졌고, 일어나자마자 뭔가를 먹고는 다시 잤다. 살이 뒤룩뒤룩 오르는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운동하러 집을 나서기엔 옷을 갈아입기가 귀찮았다. 집을 나서서 운동을 가거나 독서실을 갈라치면, 점심이나 저녁을 밖에서 사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까웠다. 냉장고에는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재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끼니를 해결하며 살을 찌웠다. 그리고 살이 찌는 기분은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먹고 자는 동안 시간은 흘렀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쌓아둔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그제야 아, 오늘 너무 게을렀다는 자각이 든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책을 벌써 1권을 읽었어야 하는데 10페이지도 읽지 않은 것 같다. 억지로 책을 편다. 책을 읽을라치면, '역시 집에서는 집중이 잘 안돼.' 생각한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집을 나갔어야 했어.' 쉬는 날, 저녁을 먹고 8시에서 9시 사이에 꼭 드는 생각이다. 그때뿐이다. 다음 쉬는 날에도 같은 후회를 하고 있을 테지.

하루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남은 시간 동안 책을 읽으려 자리를 잡는다. 억지로 편 책은 독서대에 고정되어 있다. 이때 책을 읽으려면 지금이라도 집을 나서거나, 의자에 허리를 깊숙이 밀어 넣어야 한다. 침대에서나 늘어지는 소파에서는 금방 책을 덮을지 모른다. 깊숙이 허리를 밀어 넣은 의자에서야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런 안정감이 있어야 집중할 수 있다. 딴은 '신발을 신어야 해.'라고 이야기한다. 신발을 신으면 긴장감을 유지하여 늘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동감한다. 그러나 신발을 신고 나가지 않은 지금에서는 그나마 최선은 허리를 의자 깊숙이 밀어 넣는 것이다. 그 덕에 지금 나는 책을 읽으려 하다가, 글이라도 쓴다.

휴가가 조금 남았다. 2020년도 2달 정도 남았다. 꾸준히 휴가를 올린다면 기간 안에 휴가를 다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휴가를 날려버린다. 아까운 휴가. 아깝지 않으려 휴가를 쓴다. 쉰다는 것보다는 휴가를 소진한다. 돌아가면 일은 쌓여있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다. 쉬는 날 저녁에 후회하는 일도 반복된다. 아직까지 제대로 쉬는 법을 모르는 탓이다. 그렇다면 쉬는 날 집에서라도 나갔어야지!라고 오늘도 생각한다. 뭐, 어쩔 수 없지. 


매거진의 이전글 옷은 보호막이다. 누드로부터, 추위로부터, 위험으로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