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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Nov 14. 2020

‘집중을 하면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거짓말.

무언가 끝장을 보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당장 끝장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닥에 내팽겨 치는 것이다.  쉬운 방법을 택하면 끝장을   없다. 완결을 내지 못함을 의미한다. 미완결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시리즈를 끝까지 완주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책을 읽을 때도, 글을  때도다. 집중력이 옛말이 되어버렸다. 회사 동기가 사준 구글 타이머(빨간 표시로 타이머의 남은 시간을 보여 집중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시계)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락했다. 10 동안의 명상도 유지하지 못한다. 아아,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학창 시절엔 집중을 잘했다.  덕에 공부가 어렵지 않았다. 수업에 집중했고, 선생님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혼자 공부할 때도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았고, 기억에 남지 않더라도 열심히 필기한 노트를 꺼내보면 그만이었다. 집중을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집중의 비결이 무엇인지 고민한 적이 있다. 언젠가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혹은 공부법에 대한 특강을 하게 된다면 청중들에게  집중의 비결을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집중을 하면 주위의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집중 하였을 때의 현상이다. 나도 마찬가지인지 떠올려 보았다. 아니, 이건 거짓말이야. 왜냐하면 나는 집중할 때도 친구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들렸다. 하지만 깔끔히 무시했다.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친구들이 말했다. “영재, 집중하고 있어서  들리나 .” 이때부터가 진짜 집중의 시작이다. 이야기를 하던 친구들이 화두를 돌리고, 나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한다.  역시도 내가 집중하고 있음에 집중한다. 지금부터 흐트러지면 친구들의 이야기를 무시했음이 들통난다. 집중해야만 한다. 지금 보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챕터를 끝내야 자리를 일어날  있다.


이렇게 집중하는 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정말 집중해서 문제를   있었다.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보다도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문제를 읽거나 문제의 풀이법을 되뇌는 목소리다. 주변의 공기는 차분해지고, 어느 순간엔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의 리듬에 몸을 맡긴다.  세트의 리듬이 끝마치면 그제야 연필을 놓는다. 주위의 대화에 참여한다.


결론적으론 무시를 잘하면 되었다. 이야기를 무시하고, 지금 봐야 할  이외는 무시한다. 그게 집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고, 이것 하다가 저것을 넘겨 본다. 전화가 울리고 대답을 갈구한다. TV 보는 동시에 SNS 확인한다. A 기사가 나오면 B 기사가 동시에 울린다. 정신없다. 무시하려야 무시하지 못한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집중한다고 관심 가져 주는 사람도 없다. 그러다 보니  ‘집중 무시당한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집중은 아니지만 그럴  집중력은 배가 됨은 무시할  없다.


어렵사리 오늘의  일을 시작한다.  늦은 시간이다. 근래에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무시하지 못하고 일을 시작한다. 무시의 대상이 바뀌었다. 해서 집중하지 못하고, 끝장을 보지 못하는  아닐까. 그러다 보면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중에 끝장을 낸다.  때문에 끝장을 보지 못한다. ,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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