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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Nov 26. 2020

영혼을 울리는 소고기 뭇국, 대신에

영혼을 울리는 닭고기 스프, 가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소고기 뭇국이 먹고 싶어 졌다. 퇴근에 임박한 즈음에 몰려든 악성 전화 탓이다. 허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따뜻한 국물에 씹히는 정도가 있으면서도 흐물어지는 무.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집에 무가 없다. 자그마한 시장이 있지만 깔끔한 인상이 아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마트는 없다. 영혼을 울리는 소고기 뭇국의 재료를 살 수가 없다. 아하, 아쉬워라.

대신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인 식당으로 들어선다. 순두부찌개가 보인다. 그리고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주문을 한다. 소고기 뭇국만큼 영혼을 울리지는 못하겠지만 집으로 돌아가 어중간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가자! 저녁을 먹지 않는 간헐적 단식을 시도하고 있지만 오늘은 스킵이다. 영혼을 달랠 무엇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전화들은 자잘한 것을 자주 물어보는 탓에 귀찮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대화를 통해 응대할 수 있다. 그러나 악성 전화들은 그게 아니다. 대화가 불가능하다. 자신의 주장만 늘어놓는 탓이다. 그리고 100% 본인의 주장이 정답이다. 시스템상의 절차를 안내해줘도, 법적인 근거를 제시해줘도 소용없다. 본인이 직접적인 창피를 당하지 않는 이상 이 짓은 그치지 않을 테지. 그 전까진 무조건 본인만이 정답인 세상이다. 전화를 받는 상대방이 있지만, 까짓것.

그러면서 본인은 약자라고 말한다. 불우한 사람이란다. 그런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느냐 이야기한다. 아하, 불우한 사람. 가난한 사람. 가엾은 사람.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 내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 다시 본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화기를 가리고 나지막이 한숨을 쉰다. 후우-

어렵사리 전화를 끊는다. 여운이 남는다. 차가운 겨울 공기처럼 아린 기운이 든다. 무시하려고 해도, 이미 몇십 분을 들은 귀는 그렇지 않나 보다. 허니 이 허한 마음을 달래줄 것이 필요하다. 영혼을 울리는 소고기 뭇국, 지금은 먹지 못하니 그 대신에 흐물흐물한 순두부 찌개와 사나이 울리는 농심 신라면. 오늘은 이렇게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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