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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Dec 01. 2020

나는 내 물건을 잘 챙긴다니까!

회사에 충전 중이라 여겼던 무선 이어폰이 없다. 분명 사무실 책상 위에 있어야 할 텐데 보이지 않는다. 앗, 잃어버린 것인가. 그래, 잃어버릴 때도 되었지 뭐. 꽤 오랜 시간 잘 사용하던 이어폰이다. 남들은 에어팟이니 버즈니 할 때도 줄로 연결된 아이를 사용했다. 그 편이 잠시 동안 한쪽 귀의 이어폰을 뺄 때도, 두 쪽 모두 이어폰을 뺄 때도 목과 어깨에 이어폰을 걸쳐두고 있을 수 있다. 잠시 동안 무신경해도 괜찮다. 에어팟이나 버즈라면 이어폰을 빼는 동시에 케이스에 보관하거나 주머니에 잘 간수해야 하지 않은가. 한쪽만 애매하게 이어폰을 이어버리면 새롭게 한쪽만을 사기에도, 그냥 쓰기에도 애매하지 않은가. 그럴 바에야 통째로 이어진 이 무선 이어폰처럼 통으로 잃어버리는 편이 낫다. 그러니까 잃어버려도 무덤덤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는 이어폰과 귀가 맞닿는 부분의 실리콘 케이스가 한쪽 빠져버렸다. 찾지 못한 그 케이스가 무선 이어폰 실종의 복선이었을까.

중학생 때였을까. 버스를 타고 시내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혼자 다녀오는 길이었고 야무지게 지갑 안의 교통카드를 이용해서 버스를 탔다. 오를 때도, 내릴 때도 완벽했다. 안전하게 버스에 올랐고, 안전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목적지에 도착했고, 해야 할 일들을 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버스를 이용해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게 완벽했... 어? 어?! 지갑이 없다. 분명 지갑 속 교통카드를 이용해 버스를 탔는데? 이리저리 살펴도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허겁지겁 버스 정류장까지 가보아도, 걸어온 길을 살펴보아도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아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완벽했던 오늘 하루는 대체 무엇이라 말인가. 그리고 잃어버린 지갑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 애썼다. 제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한 나에게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잘 챙기지 못한 게 아니던가. 줄곧 물건을 잘 챙겼던 지난 시간이 스쳤다. 이번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챙기지 못했다. 아아, 아쉬워라.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며칠 뒤에 지갑이 발견되었다. 어? 어?! 가방에 지갑이 있었다. 가방을 안 뒤져보았던가? 아닌데... 분명 가방도 봤었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살피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방 깊숙한 곳에 지갑이 있었다. 무의식 중에 버스에서 내리며 가방에 지갑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나는 내 물건을 잘 챙긴다니까!

그럼 오늘의 이어폰은? 지난 며칠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내가 무슨 옷을 입었더라? 하며 입은 옷들을 옷장에서 하나씩 꺼내어 주머니를 살폈다. 음, 없었다. 분명 실리콘 케이스를 잃어버린 그 날엔 이어폰을 착용했었더란 말이지. 그때 난 어떤 옷을 입었던 걸까? 그러다 문득 다른 서랍에 넣어둔 가디건이 떠올랐다. 맞다. 이 옷도 입었었지?

그리고 찾았다. 이어폰. 잃어버렸다고. 잃어버릴 수도 있지 뭐. 그런 생각으로 살펴본 옷 안에서 찾아낸 이어폰이었다. 주머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내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니까. 나는 내 물건을 잘 챙긴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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