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라이세이 Feb 18. 2021

나는 대필 작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면접 때 못다한 이야기

*뒤늦게 최종결과를 확인했다.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서류 합격 명단에 있던 친구의 이름이 보였다. 친구는 면접의 꽤 잘 본 모양이었다.


나는 대필 작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면접이 끝나고 나면 이렇게 말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렇게 말할 걸'과 '아쉬움'의 조합은 과거에 실망과 함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남긴다. 10분도 되지 않는 면접이 끝나고 난 뒤, '이렇게 말할 걸'과 '아쉬움'의 조합이 불쑥 찾아 왔다. 이를 가능성의 씨앗으로 남기기 위한 글쓰기다. (*면접 질문이 유출되면 안되기 때문에 면접 결과가 나온 뒤에나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글쓰기이기도 하다)


건명원이라는 공간의 면접이 있었다. 건명원은 인문/예술/과학 분야의 석학들께서 직접 강의를 진행하시는 학교다. 만 30세 미만에게만 지원 자격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종로에 멋드러지게 공간이 있긴 하지만, 코로나라는 상황 때문에 줌을 통해 면접이 진행되었다. 한 사람 당 배정된 시간은 10분 남짓. 서류 평가에서 '인생의 프로젝트'를 물었기에, 면접에서도 '인생의 프로젝트'에 대한 진정성을 물을 것이란 예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마땅한 답안을 준비하진 못했다. 나의 불찰이다. 그냥 나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면접은, '나'보다는 '나의 프로젝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8년 간 동안 알아온 '나'에 비해서 '인생의 프로젝트'는 다분히 건명원 지원을 위해 성급하게 생각해낸 감이 없지 않았다. 해서 면접에서 깔끔하게 '인생의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다하지 못했다.


그건 내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다. 더 나아가서 10년 뒤, 20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에 대해 물었는데, 이 마저도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저냥한 하루를 살고 있다보니, 앞으로에 대한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떤 탓이다. 그러다 문득 '나중에 나는 대필 작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 때는 답하지 못한 이야기다.


건명원에 제출한 '인생의 프로젝트'가 개인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작업이었기에, 그와 연관되어서 떠오른 이야기다. 우선은 올해 '나'에 대한 28년을 아카이빙 하는 것이다. 건명원에서 할 프로젝트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전파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생애를 기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나는 개개인 각자가 자신의 역사서를 편찬하는데 일조한 선봉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연유로, 다른 사람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함께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는 혜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어쩌면 노래의 대본(가사)는 '개인사의 공론화'다. 들은 이야기거나,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써낸 것들이지 않은가. 한때 내 에세이집은 <공적으로 사적인, 사적으로 공적인>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직까지 에세이집을 내지 못한 상태이니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건명원 면접에 합격할지 장담하진 못하겠다. 개인에게 주어진 10분에서 난 6-7분 정도만 사용했을 뿐이다. 면접관으로 참여하신 교수님께서 내 이야기에 반신반의 하는 뉘앙스를 풍기셨다. 그 때문에 10분을 풀로 채울 정도로 호기심을 가지시진 않았던 것 같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건명원에 합격하든, 합격하지 못하든 <공적으로 사적인, 사적으로 공적인> 이야기는 가득 모아서 에세이집이라도 내야지. 2021년에는 원고를 작성해서 내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클럽 하우스>에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