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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Mar 14. 2021

역주행의 맛 / 브레이브걸스 - 롤린

리코포디움 플래그마리아

https://youtu.be/cfHWIqJkEf4


몇 년 전의 이야기가 스믈스믈 들려옵니다. 숨겨져 있던, 남 몰래 숨어 듣던 음원이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예전의 노래가 차트를 역행합니다. 역주행입니다. 난데없이 어디서 나타났느냐, 라고 묻습니다. 거꾸로 자라고 있었을 뿐입니다.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글쎄요, 저는 군대에 있었을 때는 듣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 줄곧 인수인계가 되어 전수되었다는 노래입니다. 영상 클립에는 군인들끼리 이 좋은 노래를 듣고 있었느냐는 댓글이 달립니다. 저도 모르게 몇 번 반복해서 본 영상 속 주인공들이 인터뷰를 하고, 차트 순위권에 안착된 노래를 보며 놀라워 합니다.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줘서 고맙다는 댓글이 더해집니다. 남아 있던 곡 덕에, 남아 있던 그룹이 빛을 발합니다. 역주행은 이런 맛입니다.


거꾸로 자라는 식물인 리코포디움 플래그마리아는 공중식물입니다. 긴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줄기를 감당하기 위해선 높은 곳에 화분을 두고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석송과로 분류되는 리코포디움 플래그마리아.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빗대어서 그런지 석송의 꽃말은 ‘비단결 같은 마음’입니다. 대신 저는 그 모습에서 떠올린 ‘역주행'으로 마음대로 꽃말을 붙여 봅니다.


종종 저에게도 역주행이 있길 기대합니다. 제가 쓴 글이, 제가 남긴 무엇인가가 역주행하여 저의 활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립니다. 위에서 아래로 거꾸로 자라는 식물처럼 제 속에서 거꾸로 옛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그렇게 치자면 매번 역주행을 하는 셈입니다. 거꾸로 자라지는 않지만, 거꾸로 잘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작성한 일기장을 들추어 봅니다. 그 시절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지금이랑은 다른 감성을 가졌구나. 그때부터 나는 이랬었구나. 마음 속에서 지금부터 그때로 거꾸로 달립니다. 거꾸로 자라는 마음입니다. 남아 있던 내가, 남아 있던 글 속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역주행은 이런 맛입니다. 거꾸로 자라고, 거꾸로 잘하는 역주행의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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