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가 온통 화(火)로 가득하다. 분노의 대상이 보이면 몰아친다. 예전의 잘못을 드러내고, 지금의 잘못에 분개한다. 예민하다.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일이 줄어들고 자유로운 활동에 제약이 걸린 지금은 한스럽다. 코로나 블루가 만개하다. 날씨라도 좋을라치니 뿌연 미세먼지가 가득이다.
지금 이대로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 그마저도 재테크로 돈을 불리지 않으면 거지가 되는 세상, 마스크를 벗고 희희락락 웃고 있는 연예인들의 과거는 볼품 없고, 내부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공직자들은 이미 한 몫을 크게 챙겼다. 그러면서 ‘꼬우면 너도 하든가.’를 시전한다. 화가 난다. 화가 나.
전화로 사람들을 응대하는 나의 하루도 그렇다. 그 자체로 이미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는 일인데, 사람들은 불만을 곱배기로 뱉어낸다. 전화상으로 불쾌감이 넘어온다. 온 몸을 적신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불편해지고, 속은 뒤틀린다. 후-우 크게 숨을 내뱉으며 화를 가라앉히고자 애쓴다. 최대한 알맞은 응대 방법을 고민한다. 일개 사원인 나는 법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과 지금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상대방은 못마땅하다. 무엇이라도 빼앗아야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마냥 하나라도 더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자기 멋대로 결정한다. 그건 되는 일이 아니라고요 선생님. 아니, 결국 그들은 그들의 바람대로 나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고 흐뭇해하는걸까.
어린 시절에 나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을 때, 그 마음을 자기 전에 모두 뱉어냈다. 벽을 마주하고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 쓴다. 작은 몸 가득 숨을 들이 마신다. 그리곤 벽을 향해 발사. 몇 번을 뱉어 내고 나면 어느 순간 잠에 빠진다. 돌이켜보면 명상 호흡법이다. 그 어린 시절에 벌써 명상을 하고 있었다니. 어린 내 모습 속에서 이 불편함을 해소할 실마리를 찾는다.
초등학생 때의 나의 한숨엔 자전거가 있었던 것 같다. 새 자전거를 사주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숨소리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교통수단은 자전거였고, 그 자전거가 낡았던 탓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왜 한숨거리였는지. 지금의 일들도 그러할테다. 한숨 쉬는 일들이 결국엔 아무 일도 아닌 일들로 기억될테지. 밖은 화나는 일로 가득이라도, 내 속에선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다.
아직은 마음 편하게 자전거를 타기 애매한 날씨다. 쌀쌀한 기운은 풀렸어도 미세먼지가 온 천지에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미세먼지가 나아지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야지. 바람이라도 쐬면서 기분 전환을 하며 화를 삭여야지. 날씨가 좋으면 그렇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