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빈다.
욕심이 크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봄은 가치 있는 일이고,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실상 그 새로운 일에 투자한 시간이라든지, 고민해온 역사가 짧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에 반해서 딴은 긴 시간을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매진했을 지 모른다.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준비해왔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치자면 나는 준비한 것이라곤 달랑 지원 서류를 넣고선 짧은 시간을 기다린 일 뿐이다.
하지만 투자의 결과가 꼭 시간에 비례하지 않음을 안다. 자그마한 불씨가 큰 화력을 내뿜는 도화선이 되듯이 짧은 역사가 큰 역사를 만들 수 있음을 안다. 사람들은 이를 '행운'이라 일컫는다. 염치없지만 나에게 그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방송 PD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다. 신문방송학을 전공으로 삼았지만 나의 관심은 광고나 홍보 쪽이었다. 그래도 고등학생이 접근할 수 있는 신문방송학의 영역이란 직업적으로 크게 PD와 기자, 그리고 아나운서 정도였기 때문에 'PD란 무엇인가?' 혹은 아나운서가 쓴 에세이 따위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때 처음 PD를 접했고, EBS <공부의 왕도>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촬영을 하면서 실제 PD를 만났다. 당시 나를 촬영한 PD님은 '진짜, 정말로 PD가 하고 싶은게 아니라면 PD는 할 일이 못 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그 조언을 새겨 들은 나는 PD의 길을 꿈꿔본 적이 없다.
하지만 라디오는 조금 달랐다. 대학에 진학해 팟캐스트 소모임 <신나라 - 신방인의 신나는 라디오>를 참여했고, 그 덕에 MBC 라디오국에 견학을 가기도 했다. 당시 <박경림의 두 시의 데이트> 스튜디오에 방문했는데 그날의 큐시트를 기념품으로 챙겨온 경험이 있다. 얼마 전 나의 일기장과 각종 기록물을 챙겼는데 그때의 큐시트가 함께 있었다. 그날의 게스트는 조정치와 유승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팟캐스트 채널 <꽃 한 편[꽃:단편]>을 만들었다. 목소리와 디자인, 편집을 담당하는 팀원이 따로 있고, 나는 그들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라디오 총괄PD의 역할이랄까. 팟캐스트지만 라디오에 대한 연을 끊지 않았다는 말이다.
취업준비생 땐 방송국 신입 모집엔 원서를 쓰지 않았다. 소위 '언론고시'라 부르는 방송국 시험을 언론고시 스터디와 같이 오랜 시간을 공부한 이들만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란 생각했기 때문이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시사상식과 논술 혹은 작문을 스터디하며 공부한 이들을 상대로 내가 좁은 방송국 채용문을 뚫을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 있어 보자, 일반 사기업이나 지금의 직장도 나는 따로 공부를 오래 한 적은 없다. 취업스터디를 하지도 않았다. 아하, 이건 케바케구나. 지금의 회사도 언시생들 일부에겐 신의 직장이라 여겨진다고 하지 않던가.
직장생활을 2년 조금 넘게 한 시점에서 라디오PD를 뽑는 공고를 보았다. 영어 성적은 없었지만, 영어 성적을 필수로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서를 썼다. 서류 전형에서 미끄러진다면 '영어 성적도 없고, 지금의 나는 조건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런데 서류를 합격하였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다. 언론고시를 경험한 적 있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잘 어울린다고, 시험도 평소에 글 쓰던 것처럼 쓰면 잘 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욕심이 조금 더 커졌다.
서류 결과가 발표되고 시험까지 일주일 남짓. 시사상식 책을 샀고, 작문과 관련된 기출이라든지 경향을 살폈다. 그런데 막상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시간을 재며 글을 쓴 것은 2편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내일 있을 시험에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시사상식과 작문 시험은 평소에 읽은 신문에서 정답이 떠오르길 바라고, 평소에 쓰던 글감과 결이 비슷한 주제가 나오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시험을 치러 온 사람들에 파묻혀서 신나게 글을 쓰다 오면 좋겠다.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