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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Apr 04. 2021

진심이었다

나의 성의요,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다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진심으로 행동했던 때가 있었는지 떠올려 본다. 애석하게도 최근의 일 중에선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진심을 다한 적이 없던걸까. 아니, 그러고 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진심이었다. 특히 시험 기간, 구체적으로 시험 시간 동안의 나는 진심이었다.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하니, 그 시절의 나는 앞에 놓인 시험지에 성의를 다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시험이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45분이면 45분. 90분 이면 90분. 모든 시험 시간을 다 채우고 나서야 시험지를 제출했다. 그 때문에 친구들의 원성을 들은 적도 있다.


아마 미술 시험 시간이었을 것이다. 문항 수도 적고, 문제의 난이도도 높지 않아서 시험이 시작되고 5분에서 10분이면 문제를 모두 풀 수 있는 시험이었다. 시험이 시작되고, 친구들은 금방 시험지를 제출했다. 그러나 나는 미술 시험 시간으로 할애된 1시간 가량을 모두 채우기로 하였다. 그게 시험에 대한 나의 성의요, 시험을 출제한 선생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분도 안 되어 모든 문제를 1번 풀었지만, 2번이고 3번이고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감독하시는 선생님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모든 학생이 시험지를 제출하면 남는 시험 시간 동안 자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속한 반은 예외였다. 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반복해서 시험지를 보느라 끝까지 시험지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리 시험을 마치고 자습을 하려고 했던 친구 입장에선 나 하나 때문에 자습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날린 셈이다. 그래도 어쩌랴, 나에게 그건 진심이었다.


최근에 본 시험을 떠올려 본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시험을 치는 동안에도 나는 진심이었던가. 시험지에 성의를 다했던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시험 종료 10분을 남기고 시험지를 제출해버렸으니 말이다. 그 10분만큼 더 살펴본다고 해서 크게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못했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열과 성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없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만큼 머리가 커진 탓인지, 나의 최소한은 다른 사람의 최대한임을 알게 되어서인지……. 어쩌면 성의를 다해야 할 정도의 시험에 드는 일이 이젠 없어진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의를 다하지 않고도 살아갈 순 있다. 한국 어디에서든 잘 자란다는 미나리의 꽃말이 그래서 성의, 고결일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성의를 다하는 삶에서 고결한 희열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 해서 조금은 더 진심을 다해보려 노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시험에 들지 않고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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