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편에 섰다.
책 읽기는 줄곧 잠과의 싸움이었다. 졸린 눈을 부비며 억지로 책을 읽는 것도 아닌데, 책을 읽으면 항상 잠이 쏟아졌다. 그때부터 책과 잠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글을 읽어나가 책장을 넘기려는 쪽과 무자비하게 글들을 파편화시키고, 의미없게 만드는 쪽의 접전은 소리없이 치열했다.
팽팽한 책과 잠의 싸움은 어느 시점에 한 쪽으로 기세가 기울었다. 책이 이긴다면 그때부터 책을 읽는 속도는 빨라졌다. 글의 내용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고, 책장은 쉬이 넘어갔다. 하지만 잠이 이길 때는 달랐다. 점점 몽롱해지는 기분에 지금 읽고 있는 글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맛도 나지 않고, 소화되지도 않는, 의미 없는 덩어리를 씹고 있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책의 한 면이 무자비하게 구겨져 있기도, 잠에서 흘러 나온 침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기도 하였다. 의자 아래로 책이 떨어지기도 부지기수였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보기도 하고,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아보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책은 언제나 잠에게 지고 마는 것인지, 잠을 이기는 방법이 없는지 생각에 빠졌다.
그 결과, 떠올린 방법은 2가지였다. 그건 바로 첫째, 깔끔하게 책을 포기하고 잠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잠과 책이 싸움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책이 잠에게 백기를 들고 ‘항복’을 선언. 안전하게 지금 읽고 있던 쪽수를 표시해두고 책을 덮는다. 책을 읽던 자세를 완벽히 잠을 자는 자세로 바꾼다. 스탠스를 바꾸는 전략이다. 그리고 잠시나마 잠을 청한다. 온전히 잠을 위한 시간을 내어 주면 잠도 그 부드러움에 녹아 잠시 간의 시간을 보낸 후 너그러이 책에게 다음 시간을 양보했다.
둘째, 몽롱한 그 시간을 정면승부하는 전략이다. 자세를 바꾼다거나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괜히 잠에게 약점을 보이는 방법이었다. 대신에 잠이 파고 들려고 하는 몽롱한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이해되지 않는 글을 읽어 나갔다. 한 문단, 두 문단……. 소화되지 않은 덩어리를 그대로 우걱우걱 씹어대다 보면 잠도 혀를 내두르며 달아났다. 그때부터 한동안은 잠이 책에 파고들 틈은 없었다. 그때에 이해되지 않던 부분은 다시 읽으며 책 읽기를 이어 나갔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두 가지 방식 중 나는 첫 번째 방식을 선호했다. 깔끔하게 포기를 선언하고, 다음 기회를 보는 일. 잠에게 책을 잠시 양보하는 일. 그리고서 맑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 일. 종종 잠을 자고 나서도 상쾌한 기분이 들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책 읽기를 할 여력이 되지 않아 다음 날로 책을 미루는 일.
책과 잠의 싸움에서 대개 나는 잠의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