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탓하며 시간을 미룬다. 미룬 시간만큼 다시, 시간이 없다. 그 때문에 낼 수 있는 시간은 사라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따윈 없다. 시간의 공백. 공백이지만 쓸 수 없어 공허하다. 채우지 못한 여백이지만 채울 순 없다. 비운 채로 다음 장으로 넘긴다. 지난 시간의 공허함을 달래려 쓸데없는 짓을 한다. 쓸 곳이 없으니 쓸 데 없다. 억지로 지난 시간을 채우려 말라. 그 시간을, 그 여백을 곧장 채우기 위해선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시간으로 가야 한다. 갈 수 없다. 갈 수 있는 곳은 앞으로의 시간뿐이다. 지금의 시간에 잠시 머물다 미래로 향한다. 가만히 있더라도 그 시간으로 향하는 모양이니 우린 타임머신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의 강물 위, 돛단배를 타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을 채우려 애써야 할까? 아니, 애쓰지 말라. 애쓰지 않더라도 그 시간 위에 존재하는 것. 그저 그 시간을 미루지 말자. 단지 그 시간 위에선 그 일을 해야 했을 뿐이다. 나의 마음이 동했고, 나의 행동이 통했다. 그뿐이다. 그저 그럴 뿐이다. 그냥, 그렇다. 앞의 시간을 핑계로 뒤의 시간을 피하기엔 새로운 시간은 귀하다. 그건 귀하에게도, 나에게도. 귀한 시간을 천하게 여기지 않도록. 지금도 시간은 당신과 함께 하는 중이다. 떼려야 뗄 수 없으니, 비우려야 비울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