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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Jan 04. 2022

입사하자마자 인수인계서를 만듭니다.

업무 인수인계 중이다. 3년 만의 일이다. 첫 회사, 첫 팀, 첫 업무가 3년 간이나 이어졌다. 생각보다 길었다. 첫 회사를 떠날 줄 알았고, 첫 팀을 얼른 벗어날 줄 알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첫 업무가 다른 업무로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업무가 더해졌다. 기존 업무에 다른 사람의 업무가 추가되었다. 모 선배는 상대측과 언성을 높였다. 언성을 높인 선배는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그 업무가 나에게 왔다. 당사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과정이 3년 동안 이어졌다. 3년 전부터 나는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었다. 언제든지 떠날 생각이었다. 언제든지 떠날 마음이었다. 하지만 마음만 굴뚝인 채로 시간이 지났다. 인수인계 파일은 시간을 더해가며 업데이트되었다. 그 파일을 드디어 다음 사람에게 전했다. 3년 만의 일이다.


인수인계 파일을 전달하며 다시 한번 내용을 정리했다. 복잡한 하루의 업무를 순차적으로 할 수 있게끔 아침에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작업의 순서를 기록했다. 메뉴는 이렇게 찾아 들어가야 하며, 파일은 이렇게 제목을 붙여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처리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처리한다. 그런 와중에도 오늘 내가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한다. 아직 팀을 완전히 옮겨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022년에 회사에 출근은 이틀밖에 하지 않았는데 벌써 결재문서는 40개를 넘어선다. 참, 이 일이 올려야 할 문서가 많았지.


왼쪽과 오른쪽 모니터를 번갈아 쳐다보고, 웹사이트를 들어갔다가 엑셀 창을 열었다가 닫는다. 수시로 시스템에 들어가 사람들이 올린 정보를 확인하고, 그 잠깐의 찰나를 기다리지 못한 전화를 응대해야 한다. 분명 1분 전에 올라온 정보인데 자기는 한참 기다렸다면서 불만을 제기한다. 그럴 땐 기계적으로 대답한다. “네, 금방 처리됩니다.”


그런 내용까지 담으면 좋으련만,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전화를 응대하는 와중에는 인수인계서를 업데이트하지 못한 탓이다. 입사하자마자 인수인계서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런 찰나를 기록할 여유는 없었다.


입사하자마자 만든 인수인계서다. 매일 똑같은 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겠다만 이 일을 이해하는데만 해도 몇 개월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전의 난 입사하자마자 선임자도, 전임자도 없이 일을 시작했다. 선임이기도, 전임자이기도 한 사람은 도저히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면서 일을 내팽개치고 휴직을 떠났다.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을 리가. 거기다 전임자가 차곡차곡 쌓아둔 똥덩어리도 처리해야 했다. 그때부터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었다. 내가 나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기 위함이었다. 언제든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마음이었다. 하지만 3년이 걸렸다.


아직 이번 주가 남았다. 그리고 아마 한 동안은 어떤 식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지 물어올 테다. 인수인계는 했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3년 만에 넘긴 인수인계에 더해 3일, 3주, 아니 어쩌면 3개월은 더 시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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