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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Feb 28. 2016

일요일 오후 세 시의 카페, 아니, 방.

주말이면 다들, 잔다. 평일동안 얼마나 피곤하면 그리도 잘까 싶을만큼, 부대의 주말이면 다들, 잔다. 나 역시 예외는 없다, 잔다. 우선 기상방송이 울리면 일단은 일어난다. 조별일과를 하러 간다. 조별일과가 끝나면 방으로 돌아온다, 잔다. 아침 먹을 시간이 되면 으레 그중 누군가 한명이 밥 먹으러 가자 소리를 낸다. 그러면 용케도 그리도 무거운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운다. 물론,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몇몇이 있다. 그 친구들은 그냥 자는거다. 별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잔다. 그렇게 오전 내내 자다보면 그세 점심시간 이다. 그러면 또, 누군가가 점심 먹으러 가자 소리를 낸다. 용케도. 점심을 먹으러 간다. 점심을 먹으면 그제서야 조금, 깬다. 점심에 각성제가 들어있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잠들어 있는 사람은 있다.


깨어나선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보거나, 책을 본다. 보는 것이 정규일과는 아닌데도 다들, 보기 바쁘다. 그러다 일요일 오후 세시 경이면 나는 조용한 카페에 있는다. 블라인드로 가리워져 있지만 조금은 벌려진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이 있고, 재즈풍 음악이 흘러 나오는 조용한 카페. 이곳에서 나는 조용히 혼자 책을 읽는다. 커피를 마실 때도, 차를 마실 때도 있지만, 아무 것도 마시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아무것도 마시지 않으며 있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깐. 읽는 책은 그때그때 다른데, 주로 에세이집이다. 조용한 일요일 오후 세시는, 어쩌면 조용한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에 딱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어쨌든 일요일 오후 세시경이면 나는 에세이집을 펼쳐든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조용히 흘러나오던 재즈풍 음악은 꺼지고, 조용하던 공간이 조금은 소란해진다. 조용하던 카페는, 어느새 방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잠을 자고 있던 동기들이 일어나고, 방을 벗어나 있던 동기들이 돌아온다. 모두 자고, 나만 깨어 있어서 누릴 수 있었던 사치가 무너진다. 내가 있던 카페는 카페가 아니었으므로, 방으로 돌아온다. 모두 잠들어 있고 나만 깨어있어서, 그래서 조용했던 방.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와 여자 아이돌의 음악 소리로만 가득했던 TV 채널을 카페 음악을 들려주는 채널로 바꿔두고,  혼자서 부리고 있던 사치.


이 사치의 끝에서 나는 책을 덮는다. 그리고 TV 소리, 말 소리, 운동 소리들 같은 소리들과 함께 소음에 동참한다. 동기들과 함께 TV를 보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운동을 하거나. 다시 조용히 사치를 부리기엔 더이상 고요는 찾아오지 않는다. 침대 위에서 편하게 누릴 수 있었던 나만의 독서시간은 이날엔 이걸로 끝이다. 그러면 나는 얼른 다음 주말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 사이사이에도 얼마만큼의 고요는 찾아오지만 주말 오후 세 시만큼은 고요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주말 오후 세 시를 기다린다. 이 고요가 주는 조용한 사치를 누리기 위해서.


일요일 오후 세 시의 카페, 아니, 방. 이때의 고요가 나는 참 좋다. 조용히 책을 읽기에도, 조용히 생각에 잠기기에도, 때로는 조용히 잠에 빠져들기에도.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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