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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Feb 21. 2016

[군대, 근데.]땡땡땡.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그리고 저녁 먹고 땡.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
그리고 저녁 먹고 땡.


정말이지 하루는 아침 먹고, 점심 먹고, 그리고 저녁 먹으면 땡이다. 나만 그런가? 특히나 군인인 나에게 일과가 없는 부대 안 주말이면 더더욱. 하필이면 아침 먹고, 점심 먹고, 그리고 저녁을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군부대 안이라 주말 하루 동안은 정해진 이 시간들로 딱 삼분할 되고 만다.


오늘만해도 그렇다. 연인끼리 초콜릿을 나눠주는 밸런타인 데이인지, 독립운동을 하시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에 대한 일본 재판의 처형일인지, 컴퓨터의 시초인 진공관 컴퓨터 애니악이 개발된 날을 기념하는 성 애니악 데이인지는 난 잘 모르겠고, 오늘은 일요일, 빨간 날이다.


분명 아침 일찍 조별일과 시간에 맞춰 6시 30분에 눈을 떠 아침체조를 하고서 잠깐 눈 붙였는데 금세 들리는 방송소리,

금일 아침 식사당번 영내식당에 집할할 것.

아침 먹을 시간이다. 아침 반찬은 '고추 멸치 볶음', 나머지는 먹지 않아 기억 나지 않는다. 아침밥을 먹었으니 잠깐의 산책. 그리고 돌아온 방에서 동기들은 이미 잠들어 있다. 불은 꺼져 있고 TV마저 꺼져있다. 다행히 창문으로 들어오는 불빛, 그 불빛으로 조용히 책을 읽다가 나마저 스스로 잠든다. 그러자 이내 들려오는 방송소리,


금일 점심 식사당번 영내식당에 집할할 것.


아침 먹은 지 얼마나 됬다고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다. 평일에는 아침 먹고서 점심 먹을 때까지 시간이 긴 것 같더니, 주말이 되니깐 금방이다. 오전동안 한 것 없이 자버려서 그런걸까. 어쨌든 점심 반찬은 '비엔나 소시지 볶음'이었던가. 그리고 역시나 밥을 먹었으니 산책. 방에 돌아오니 동기들은 없다. 인터넷을 하러 갔거나, 게임을 하러 갔거나, 어쨌든 방에는 없다. 그 틈을 타서 창문을 열고 환기. 동기 녀석들은 왜들 그런지 창문을 열어 두고 환기 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깐 애들이 없을 때 살짝. 그렇게 열어둔 창문 사이로 찬 바람이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TV를 보고 있자니 스르르 감기는 눈.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았는데, 또 방송이다.


금일 저녁 식사당번 영내식당에 집합할 것.


어김없이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반찬은 '명태순살찜.' 그래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식당 밥을 먹지 않고 P.X.로 향한다. 어쨌든 저녁까지 오늘의 세 번째, 마지막 끼니까지 먹었다. 여유를 크게 부릴 새 없이, 저녁 먹고서 조금만 빈둥거리다보면 금세 점호 청소 시간과 점호가 다가온다. 이 점호가 끝나면 이젠 어쩔 수 없이 잠들어야만 한다. 그러면 하루는 끝.


이렇게 보면, 하루는 참 단순하다. 하루 24시간이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으면 끝이 난다니. 


군인이 아닐 때도 이랬던가.


이 단순한 하루들을 700일 정도 보내면, 그러니깐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기를 700번 정도 하면 해군 첫 입대부터 전역까지의 모든 시간이 흐른다. 나같은 경우는 앞으로 180번 정도를 이 반복을 더 하면 전역이라고나 할까나. 이 단순한 시간 속에서 나는 그저 밥만 먹는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그리고 저녁까지. 이렇게 그냥 밥만 축내는 식충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 본다. 그게 아니라면... 어쩌라고?


괜히 울화가 치민다. 밥 먹는 것 외에는 꼭 해야 할 다른 것이 없으니 부대 안의 주말은 항상 이런 식이다. 물론 밥을 한 두 번 먹지 않을 수도 있고, 가끔 책을 읽기도 하고, 기타를 치기도 하고, 또 지금처럼 글을 쓰기도 하는데, 정말 가끔일 뿐이다. 대부분은 그냥 먹고, 잔다.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그리고 저녁 먹고나면 하루가 땡. 땡땡땡이다. 이 하루가 그저 이렇게 끝나 버린다니 허무하다. 다른 무언가를 해야겠는데...... 라는 생각은 한가득이다.


그러고 보니 밥을 먹고 또 먹는 사이마다 '땡'이다. '딩동댕'이 아니라 '땡'이라니. 괜히 나더러 탈락을 알리는 것 같잖아.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밥 먹는 사이사이 마다의 '땡'을 잡아 버린다면...?


'땡 잡는 것'이 아닌가!  이 '땡'을 어찌 쉽게 잡을 수 있겠냐만은 '땡'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쉽게 놓칠쏘랴. 그래서 이제 그냥 밥 먹고 땡, 이라고 지나칠 순 없겠다. 왜냐하면 땡 잡아야 하니깐! 이렇게 가까운 곳에 땡이 있으니깐! 이렇게 말은 하지만 어찌 해야 할 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도 어찌 되었건 간에 이리 가까운 곳에 내가 잡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이전보다는 확실히 그 시간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겠지, 라고 역시나 생각은 해본다. 정말로 땡 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멍청하리만큼 단순하게 내 옆에 있는 '땡'을 잡아내기를 바라며.


그러고보면 하루는 참 단순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단순한 하루만큼이나 단순한 행운이 '땡'하고 머무르고 있다. 말만 그런지 아닌지는 해봐야 알겠지.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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