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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Jan 25. 2016

짜장면집 아들은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토마토집 아들도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땐 아버지가 직장을 다니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들처럼 직장에 다니면, 빨간 날에는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들처럼 집에서 쉬셨을 테니깐.  아버지가 집에서 쉬시면 나랑 더 많이 놀아주셨을 테고, 힘도 덜 드셨을 텐데,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불효 막심하게도 아버지가 쉬면 내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러 불려 나가는 일이 없었을 텐데,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셔 안마를 하라고 불러 내는 일은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담긴 이야기랄까. 하지만 적어도 내 기억상으론 아버지는 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장인이셨던 적은 없다. 대신 내 기억의 어느 시점부터 아버지는 농부이셨고, 자연스럽게 나는 농부의 아들이 되었다. 농부의 아들이란, 사실 어린 농부와 다를 바가 없어서 나 역시도 농사일을 도와야만 했다. 아버지의 일이었지만, 나의 일이 되었고, 나와 아버지의 일은 곧, 우리 가족의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달력의 요일에 색이 바뀌어도 일을 하러 나서야 했다. 농부란, 종이 위의 색에는 무감해지고, 땅 위의 색에 민감해지는,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에겐 학교를 나가지 않는 날이란,  농사일을 도와드리러 가야 하는 날이었다. 적어도,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어린 농부라는 직업에서 차차 은퇴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주말이거나, 방학이거나, 어쨌든 내가 집에 있었고, 더불어 일이 있는 날이면 가족의 일을 하러 나서야만 했다. 그건 군인이 되어서 단 며칠의 휴가를 나가거나 외박을 나가서도 예외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마음 한 편으로는, 아버지가 직장을 다니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나의 모든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것은 토마토였다.  비닐하우스 농사였고, 그래서 겨울에서부터 농사를 시작하였다. 추운 겨울에서부터 시작해서 늦봄까지 이어지는 비닐하우스 농사에서 수확의 시기란, 흔히들 떠올리는 추수(秋收)의 계절인 가을이 아니었다. 늦봄이라기엔 아직은 이른, 여하튼 그 무렵의 시기였고, 그때가 되면 더욱 바빴다. 아들 삼 형제가 모두 나오는 것은 당연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함께 와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가족의 일'이 아닐 수 없는 풍경이었다. 늦봄이라기엔 아직은 이른, 그 무렵은, 내겐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드는 봄의 풍경이 아닌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작업을 하는 풍경이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작업은 길어지고, 그 와중에 가족들의 밥을 챙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어머니에게도 힘들고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저녁으로 중국집에 배달을 시켜 먹곤 했다. 단골 중국집은 저녁 8시면 문을 닫았고, 7시 30분 전에는 주문을 하여야 했으므로, 으레 그 시간에 맞추어서 우리의 저녁시간이 결정되곤 했다. 신기하게도 우리 집은 중국집에 배달을 시킬 때 주소를 말한 적이 없는데도 어김없이 집으로 짜장면이  도착했다. 아버지의 이름만 대면 끝이었다. 게다가  비닐하우스라고만 말하면 얼음물 한 통이 함께 배달이 되곤 했다. 단골 중국집과 우리 집 사이의 은연 중의 약속이 되어 버린 것이라고 할까. 어쨌든 그렇게 짜장면이 도착을 하면, 그게 짬뽕이든, 볶음밥이든, 우린 토마토를 가득 담아서 옮기곤 하는 '가구'라는 상자를 뒤집어서 상을 만들었다. 바닥에 퍼질러 앉거나, 또 다른 가구를 뒤집어서 앉으면, 밥 먹을 준비는 끝이 났다.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지고,  붉은색 형광등만 하나 켜져 있었다. 이 불빛 아래에서 먹는 이때의 짜장면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다. 이 짜장면이란, 진짜 맛있는데도, '중국집 아들은 짜장면을 싫어한다.'는 말이란 게 존재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는데, 이해가 되었다. 나는 토마토 집 아들이었는데, 토마토를 싫어했으니깐. 토마토를 좋아만 했다면 정말 토마토가 싫어질 때까지 원 없이 먹을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애초부터 토마토를 싫어했다, 내 두 명의 동생들은 토마토를 정말 좋아했는데, 나는 정말 토마토를 싫어했다. 토마토를 먹기만 하면 바로 구역질을 하는 정도였으니깐. 토마토를 먹는 것도 싫었고, 토마토가 작업대 옆에 계속해서 쌓이는 것도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게 싫었다. 그게 곧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깐. 그게 곧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을 사들이는 책값이었고, 그게 곧 내가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는 밥값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서야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쨌든 나는 그게 싫었다. 불효 막심하게도. 그건 그저 내가 쉬거나,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또는 그냥 잘 수 있는 시간이 토마토를 보는 것으로 대체되는 것에 따른 불만이었다. 그런데 그 덕에 나는 또래의 친구들보다도 많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태까지 아르바이트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도 또래들보다도 일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 좀 더 자연친화적이라고 할까. 맨 흙바닥에서 그냥 퍼질러 앉거나, 자는 것도 나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으니깐. 


    지금도 나는 아버지가 직장을 다니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혹은 농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쉬는 날이면 여지없이 쉴 수가 있는 그런 종류의 일. 불효 막심하게 아버지가 쉬면 내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러 불려 나가는 일이 없었을 텐데,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셔서 안마를 하라고 불러 내는 일은 없을 텐데,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제 조금은 철이 들어서, 쉬는 날이면 여지없이 쉬시면서, 정말로 쉬시면서 몸을 챙기시고, 굳이 안마를 받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몸이 편안하시면 좋겠다, 식의 이야기랄까.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토마토는 그리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짜장면집 아들이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토마토집 아들인 나는 토마토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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