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라이세이 Jan 25. 2016

[군대, 근데.] 달리기

준비, 시작.

    

    사실 내가 2014년 9월 15일에 해군에 입대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내가 오래 달리기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해군으로 가는 것이 나중에 복학 시기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순 우연이었다. 오래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어 운동을 하는 시간보다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부터인데, 순 추측이다. 그 이유는 초등학생,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썩 잘 달리는 편이었고, 반 대표로 달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때와 고등학생 때를 비교하자면, 달라진 게 이것 하나뿐이라 생각되니 아마도 올바른 추측일 것이다. 거기에 대학생이 되어서 더욱 운동을 하지 않은 데다 술까지 마시기 시작했으니, 더 잘 달릴 수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달리질 않았다. 고작 달리는 일이라곤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술을 달리는 정도. 


    그러던 내가, 어느 날은 진짜로 달려야만 했다. 대구였고,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보다 뚱뚱한 사람, 나보다 빼빼 마른 사람도 있었는데, 무척 몸이 좋은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이 사람들과 함께 달려야만 했다.


 출발 지점에서 준비, 시작.

처음에 달리다가, 조금 달리다가 그만, 걸어버렸다.  여기에서 오래 달리기 종목은 실은, 정말 '오래 달리는 것'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어느 정도의 거리를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달리느냐를 측정하는 것이었기에, 사실상 단거리 달리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걸어버리는 탓에,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달린, 결국엔 꼴등인 사람이 되었다. 이건 경북경찰청에서 주관한 독도수비대 체력검정이어서, 나는 오래 달리기 종목에서 너무 오래 달려 버린 탓에, 아니, 걸어버린 탓에 경북경찰청의 독도수비대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2014년 9월 15일에 진해에서 해군으로 입대해야만 했다. 만일 내가 그때 잘 달렸다면, 이미 독도수비대에서 해군의 병장과 맞먹는 수경을 달고 있었을 것이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나는 해군 상병이다.) 그리고 전역일이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을 것이었다. 그때 잠시, 그리 오래, 는 아닌 시간을 오래 달리지 못한 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2개월을 더 복무하는 해군 신분이 되어 버렸다. 그때는 평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걸었다며 둘러댔는데, 어쨌든 내 오래 달리기는, 오래 걷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해군이 되었다.


    달리는 것과 관련한 이야기는 하나 더 있는데, 이건 해군이 된 이후의 이야기이다. 어떤 기념 달리기였는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여하튼 6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야만 했다. 오래 달리기가 오래 걷기가 되던 나였지만, 입대 이후에 꽤 꾸준히 오래 달린 덕에 3km 정도는 곧잘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6km가 넘는 거리를 달린다는 것은 처음이어서 지레 겁을 먹고 조금만 뛰다가,  걷자,라고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생각했다. 


일단 출발선에 서서 준비, 시작.

그런데 일단 출발 총성을 듣고 뛰기 시작했더니, 일단 3km는 뛰자, 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일단은 뛰려고 하는데, 옆에 보이는 동기 녀석. 시작과 동시에 걸으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로 두면 그냥 걷다가 포기해 버릴 것만 같아서, 왠지 대구에서 오래 걸어버린 탓에 독도수비대가 될 수 없었던 내 모습처럼 될 것만 같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작적 그냥 그 동기 녀석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는 으레 혼자서 달리는 것이라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달리지 않으려는 녀석을 이끌고 달리려고 하다 보니 내가 더 힘을 내서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은 나에게 끌려가며 어쩔 수 없이 달렸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더 힘을 내서 달려야만 했다. 평소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리는데, 쉴 수도 없었다. 달리지 않으려는 녀석을 달리게 하곤 내가 쉬고 싶다고 쉬어버리면 그건 무진장 쪽 팔리는 일이었으니깐. 힘이 들었는데, 혼자 뛸 때보다 더 힘이 들었는데, 게다가 중간에 쉬지도 않았는데 결국엔 동기 녀석을 이끌고 6km가 넘는 그날의 코스를 주파하였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있었고, 옆의 동기 녀석은 죽을 상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뛰기 전에는 죽어 있었던 것 마냥. 나도 6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가  있었구나, 라는 마음에 축축해진 옷들 정도는 별 것도 아니었다. 일단 뛰었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뛰는 걸 멈추지 않았더니 어느 순간 도착지점이었다. 뛰지 않으려는 녀석과 함께였지만 어쨌든 혼자가 아니라 함께.


    그날 이후론 6km를 쉬지 않고 뛰어본 적은 없다. 뛰지 않고 걸으려는 동기 녀석이 옆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건지, 그날만 특별히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그날만큼은 그렇게 뛰었다. 


    어쩌면 달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단 뛴다, 가 아닐까. 물론 많이 느린 경우도 있을 것이고, 생각지도 못한 거리를 다 달려낼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가끔은 걸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힘들면 잠깐 쉴 때도 있을 거다. 쉰다고 완전히 멈추어 버리는 것은 아니니깐.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것은 오래 달리기이다. 진짜 '오래' 달리기. 이름만 오래 달리기이고, 실제로는 단거리 달리기인 그런 달리기가 아니라 진짜로 오래 달리는 달리기. 그리고 그 오래 달리기란, 단 한 번의 달리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달리기가 이어져 있는 이어달리기라서, 지금의 달리기를 끝낸다고 끝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달리기가 끝나면, 다른 달리기가 있을 것이다. 그 출발선에 직전까지는 또 달리기 싫다가, 막상 준비, 시작. 소리가 들리면 다시 달려 나갈 것을 안다. 일단 달려 나가기만 하면, 빠르든 느리든, 내가 그 달리기를 잘 해낼 것이란 것 역시 안다. 그래서 지금의 달리기도, 나중의 달리기도 그리 큰 걱정은 없다. 그래서 일단은 뛴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현재 나는 군 복무라는 레이스 중인 해군 상병이다.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Copyright ⓒ  2016  빛글로다.  All Rights Reserved.)  

페이스북 https://facebook.com/yjposts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lim6922
매거진의 이전글 똑같은 벽, 다른 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