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기록되는 장부가 있다.
<빛글로 - 옮며, 적다.> 프로젝트는 저 빛글로다가 '빛글로'라는 저만의 청춘로드를 따라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적어내는 기록입니다. '옮며, 적다.'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적는다.'의 줄임말입니다.
<빛글로 - 옮며, 적다.>의 첫 시작은 부산이었다. 부산 토박이이지만 부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정한 목적지이다. 그중에서도 부산 보수동의 책방골목, 이 거리가 나만의 청춘 로드 '빛글로'의 첫 번째 길을 연다.
"부산 토박이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다는 미지의 세계, 깡통 시장. 국제 시장과 깡통 시장, 나는 이 남포동 일대를 참 좋아한다. 한 번 갔던 길은 잊는 법이 없는 나도, 이곳에서 유명한 밥집을 찾기 위해서는 두 바퀴쯤은 헤매아한다. 하지만 그 덕에 남포동 길에선 목적도 도착지도 없는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카페 부산> 이슬기 지음, 148p 중.
보수동 책방골목은 국제 시장과 깡통 시장이 위치한 남포동 일대에 있다. 나의 첫 방문 목적은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었지만 이 길을 지나는 길에 잠깐씩 남포동 일대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깡통시장'은 일전에 부모님을 따라 곱창을 먹으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 시장의 야시장에서 주린 배를 채우러 온 것이었고, 이번엔 관광객의 마인드로 둘러보려 하였다. 하지만, 이날은 전날부터 몰아치는 비바람의 영향으로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비 탓에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띈 한 가게의 간판. 바로 '마크사.'
마크사는 군 부대 안에만 있는 특수한 가게 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타군은 모르겠는데 해군의 경우엔 부대 안에서 계급장을 새롭게 달 때 가는 곳이 바로 이 마크사이기 때문이다. 마크사 안에선 나이 지긋한 아저씨께서 미씽을 하고 계셨는데 그분의 집중을 방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진은 찍지 않고 패스.
우중충한 분위기 사이에서도 은은한 밝은 빛을 내고 있었던 꽃집.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한 장. 그러나 차마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번 들어가봤어야 하는 분위기인데, 아쉽다. 다음번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곳을 방문해서 가게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하나 사서, 사랑하는 그대에게 드리리.
시장의 한 골목을 빠져나오자 보였던 'BoDA'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했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5백 원짜리 4개를 넣고 돌리면 장난감이 나오는 뽑기 기계. 맘에 드는 장난감 종류가 없어서 뽑기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귀여웠다. 시장이라고 마냥 옛날 모습의 가게만 있는 것은 아닌 남포동이었다.
미술의 거리라는 곳도 있었다. 지하상가의 모습이었는데, 각 칸마다 미술인들이 자기만의 예술세계에 빠져있었다.
몇 평 되지 않는 곳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미술작품을 사러 올 손님을 기다리며.
역시나 그들의 작품세계를 방해하기 싫어서 사진은 생략. 미술의 거리를 나와 이제 책방골목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찰나에 운 좋게도 미술의 거리 끝이 책방골목으로 향하는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터넷 지도가 알려주는 길이 아닌, 내 마음이 이끄는 공간으로 향하다가도 어느새 이 공간이 내가 가야 할 다음 공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생긴 책방 골목의 입구. 비가 오는 탓에 역시나 열지 않은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중, 내가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두 곳 만은 문을 닫지 않았었다.
프랜차이즈 빙수 카페 '설빙' 글씨체로 대표된다는 캘리그래피 갤러리 <편몽>. 사실 이 갤러리의 존재를 알고 이번 첫 여행을 보수동으로 가자고 정한 이유가 컸다. 캘리그래피를 취미로 하고 있는 나이기에, 캘리그래피에 대한 관심이 컸다. 더욱이 '시원한 갤러리. 무료관람. 유료체험.' 무료로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니!
35평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엔 다양한 캘리 작품들이 있었다. 이 공간을 지키는 분은 아주머니 한분이었는데 내가 이 공간에 들어서고 얼마 뒤에 아저씨 한 분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셨다. 캘리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야기를 듣자니 오래된 친구인 듯했다. 연락도 없이 찾아왔냐며 그래도 반갑게 맞이해주시더라. 눈에 좋은 멋진 캘리 작품에다가 반가움의 소리까지 곁들여지니 금상첨화. 대신에 아주머니 한분만 지키고 있던 갤러리에 손님이 오니 나는 괜히 그 사이를 방해하고 있는 이방인이 되었다. 차라도 한잔 하려고 4층에 가자고 하는데 분위기가 내가 있기 때문에 아주머니가 못 올라가고 있는 분위기였다. 얼마 자리를 지키지 못했지만 35평이라는 공간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더라도 모든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크기였다. 그래서 얼른 한바퀴 돌고 자리를 떴다. 계단 위를 올라와 다시 살펴보니 그 위엔 작업실로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얼른 사진만 한 장 찍고 갤러리를 완전히 떠났다. 반가운 손님을 맞이한 주인 아주머니를 위해서.
갤러리 옆엔 북카페가 있었다. 이름은 <우리 글방> 사실 처음엔 북카페인 줄 모르고 그냥 분위기 좋은 헌책방인 줄 알고 들어갔다. 괜찮은 북카페가 책방골목에 있다는 검색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이곳이 그런 곳인 줄은 모른 채 이끌림에 그냥 <우리 글방>에 들어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또 웬 통로로 카페가 연결이 되었다. 마법 같은 구조. 그리고 그 카페는 또 밖으로 나가는 문이 따로 있었다. 비탈진 언덕 위에 건물을 지으며 공간을 멋지게 활용한 것 같다.
북카페보다 책다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한 이곳에서 밀크티 하나시켜서 마음에 드는 책 하나 골라서 마음껏 읽기. 테이블은 2개 혹은 3개밖에 없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다. 그 테이블엔 나와 이번에도 주인 아주머니랑 친분이 있는 듯한 아저씨 한분이 계셨다. 서로 기분 좋게 안부를 묻다가 각자의 일을 하다가, 헤어질 때는 다시 반갑고 아쉽게 인사. 나도 사람들에게 반가운 손님이 되길. 이번 여행 중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이 책다방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온 만큼 여행과 관련된 책을 하나 집어들었고, 집으로까지 모셔왔다.
언젠가 한 번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헌책방에서 누군가의 흔적과 함께 책을 구입했다.
<우리 글방>에는 방명록이 있었다.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그들의 기록으로 한 권의 책이 될. 나도 이 방명록의 한 장을 채웠는데 이 방명록의 첫 장에 있던 문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앙리 베르그송의 말이었는데 나의 손글씨로 한번 옮겨본다.
'시간이 기록되는 장부'라는 말이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나도 지금 나의 시간을 기록하는 장부를 만들고 있는 셈. 이름하야 <빛글로 - 옮며, 적다.> 그 장부의 첫 기록을 이렇게 남겨본다.
아직까지는 나의 행방을 그냥 쫓는 정도이지만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마치 좋은 커피나 차처럼 깊은 풍미를 낼 수 있게 되겠지. 그 날을 기다리며, 첫 번째 기록 끝.
그리고 이건 이 날의 상황.
나만의 청춘로드 '빛글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기록을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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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도, 글을 그리기도 하는 (하고프면 하고플대로) '빛글로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