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손자 손녀의 졸업식이다. 두 아이가 학교도 다르고 시간은 같은 시간대여서 애들 엄마는 손녀를 따라가고, 우리 내외는 아들 차를 타고 손자한테 가기로 했다. 교정에 들어서니 이미 졸업식은 시작되어 학교 이사장님과 학교장님의 축사가 이어졌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탄핵이다 뭐다 하여 비상시국이라서 이 사장님의 축사에서도 위중한 때인 만큼 나라를 생각하고 사랑하며 학생의 본분인 공부 열심히 하여,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큰 인물이 되라는 말씀이셨다.
재학생의 축사, 졸업생들의 답사가 끝나고 졸업식 노래는 생략되었고, 대신에 학교 교가를 식장이 떠나갈 듯이 우렁차게 부른다. 가슴이 뭉클하다. 어느새 자라서 늠름한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신나는 율동에 귀엽던 모습에 학부모들도 콘서트장이라도 온 것만큼이나 함께 웃고 즐겼는데, 중학교 졸업식은 싱겁게 금방 끝이 났다.
가족들은 주인공을 세워놓고 스마트폰에 기념 촬영하느라 여기저기에서 소란스럽다. 우리도 손자와 기념으로 폰에 담아보았다. 교정을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손녀와 며느리는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늦게 나타났다. 그런데, 손녀는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왔다. ‘친구들과 헤어져서 슬퍼서 울었느냐고 했더니!’ 며느리 말로 좋아했던 담임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해서 교실이 울음바다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손자가 담임선생님과 헤어짐이 서운해서 울었었는데…. 나는 불현듯 수십 년이 지난 졸업식을 생각해본다.
우리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는 어디 할 곳 없이 졸업식 날이면 각계각층 기관장들의 축사에 이어 상장 수여식을 끝으로, 졸업식 노래가 시작되고 다 마치기도 전에 졸업식장은 떠나갈 듯 해일이라도 덮친 듯 울음바다였었다. 졸업하면 학교는 끝이라는 생각에 정들었던 선생님 친구들과 헤어짐이 서럽고 서글퍼서였다. 그 시절에는 먹고살기가 힘든 시대여서 상급학교 진학률이 아주 저조했다. 특히 여자들한테는 더 심하였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농후해서 여자들은 천시를 받았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떠한가! 남녀 구별 없이 상급학교 진학이 의무화되어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반면에 급속도로 발달한 문명(文明)과 걸맞게 학력은 높을 대로 높아져서 치열한 경쟁사회가 되었다. 경쟁사회에서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으로 실력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힘든 면도 없지 않아 있다.
두 아이들한테는 중학교 졸업이 고등학교 진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졸업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
고등학교 진학으로 새 각오와 새로운 다짐으로 높은 포부와 희망을 가지며, 친구들과도 학교생활 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아이들은 학습을 통하여 인격이 형성되리라고 보는데, 더 중요한 것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본다. ‘배려’란 상대를 기쁘게 하는 건데 공원에서 산책하다 쉼터에서 쉬다 보면, 쓰레기통이 옆에 있는데도 누군가 담배꽁초며 음료 캔 생수병들을 즐비하게 난장판으로 해놓았다.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데서 조금만 주의를 가지고 쓰레기통에 넣어만 주어도 배려심이 엿보여 기분이 좋을 텐데…
사소한 배려는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중풍으로 쓰러져 온몸이 불편하여 신문 한 장을 넘기지 못하는 아버지를 돕는 자식들이 번갈아 페이지를 펼쳐준다. 이렇게 사소한 것이지만 배려를 받는 사람은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것이다. 가정에서 배려의 문화를 익힌 아이들은 공공장소에서도 배려를 실천할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배려를 잘 실천하는 사람은 어떠한 집단에 속하든 중심인물이 될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예를 들어 보자. 대지진으로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큰 참사가 일어났음에도 국민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식수를 받아먹기 위해서도 오히려 침착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긴 줄을 보며 세계인들이 경악했었다. 이토록 내공이 쌓였단 말인가? 이는 곧 국가 차원에서 유아 교육부터 배려심이 지침이 되는 교육이 아니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보아진다. 이처럼 배려심이란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배려심이 많은 아이들로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