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날이다. 오늘도 우리 일행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꽃피는 봄날에 시작해서 어언 초여름에 접어들었다. 아산에서 청주까지 가는 길은 꽃으로 물든 계절이어서 오고 가는 길이 너무도 즐거웠다. 샛노란 개나리, 연분홍 진달래, 희고 순결한 목련화, 폭죽 같은 벚꽃, 향기 짙은 라일락, 조팝꽃 이팝꽃 보랏빛 초롱꽃 오동꽃 등 하늘에서 별을 쏟아 놓은 듯 연이어 피고 지는데, 화엄華嚴 세상을 오가는 듯 황홀하였다.
한 학기 동안 재미있게 공부를 했는데 특히 두 가지가 잊혀지지 않는다.
한 가지는 강의 내용이다. 수필을 배우러 왔는데 수필은 가르치지 않고 철학과 사상의 흐름 등을 내내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중에서도 니체 철학에 관한 강의를 듣고는 나의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첫날 첫 시간 강의 주제는 유명한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신(神)은 죽었다’라는 주제였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니체는 5대째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그의 사상은 모든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치를 허물어뜨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기존의 관념론적 기독교적 도덕을 부정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를 구축하려 하였다.
거짓 도덕을 물리쳐라, 힘의 의지로 극복하라, 어린이처럼 순수해라, 춤추듯이 살아라, 최고의 예술은 자신의 삶이다.
니체에 관한 강의를 듣다 보니 니체의 철학이 어렵고 난해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가치를 믿게 하는 종교를 배척하고, 살아 있는 인간을 위한 철학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알게 되었다. 근거 없는 희망, 알맹이 없는 치유의 말들이 횡행하는 지금, 내 운명을 내 손으로 만들어 가자는 니체의 말들이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강사님의 열강은 계속되었다.
“허무주의 시대에 인간의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메뚜기 같은 인생과 밧 줄 인생이 그것입니다. 메뚜기는 한 군데 정착을 못하고 펄쩍펄쩍 뛰어다니 며 먹잇감을 찾느라 분주하지요. 하지만 밧줄 위의 인생 또한 밧줄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퍼런 강물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에 있습니다.”
두 유형의 인간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이 초인(超人)이라 하였다. 문학 강의는 하지 않고 딱딱한 철학 강의를 하는데도, 수강생들은 모두들 열공에 빠져 있었다. 단지 오래전부터 강사 님하고 친밀한 관계여서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 중에 스승님을 받드는 마음과 진심 어린 사랑을 서로 교유하고 있는 듯하였다.
두 번째로 놀란 일은 다른 데서 보기 힘든 특별한 수강생들이었다.
강사님께선 이곳에서 ‘문학 강의’를 하게 된 경위와 15명 정원인데 수강인원 많아서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 한 학기 동안 같이 문학에 젖어보자는 말로 시작하였다. 강사님 소개가 끝나고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한 수강자가 자기소개를 하는데 모두가 귀를 활짝 열고 들었다.
저는 경기도 용인에서 왔습니다. 강사님이 저의 초등학교 때 은사님입니다. 10대였던 소녀시절에 뵈었는데 60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 다시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아이 2명 둘 다 출가 보내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하고 싶었던 문학공부를 하려고 하다 보니, 은사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뵙고 싶은 마음으로 컴퓨터로 검색도 해보고 파출서로도 알아보기도 하고 백방으로 수소문 끝에 이곳에 계시다는 걸 알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잠시 말을 쉬었다. 어릴 때 은사님에 대한 순수한 동경심을 그대로 간직한 예쁜 마음이 엿보였다. 다음 시간에는 은사님께서 제자와 할머님과 은사님 셋이서 다정하게 찍은 빛바랜 사진을 들고 나와 다시금 추억을 되살려 내기도 하였다.
옆 교실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계시다. 그 선생님은 우리 강사님 대학 제자라고 하는데 매주 목요일마다 우렁각시처럼 ‘간식’을 강사님 책상에 갖다 놓곤 한다. 시작할 때부터 강의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거른 적도 없었다. 한결같은 제자의 갸륵한 정성에, 수강생들이 ‘와’ 하는 탄성을 지르곤 하였다.
하기야 나 또한 강사님의 열렬한 제자이다. 강사님과 나와의 관계는 혈육적으로 특별하다. 좀 더 솔직하게 밝히면 강사님이 내 동생이고 내가 강사님의 누이이다. 누이인 내가 동생에게 와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동생이지만 선생이고 선생이지만 동생이니까 ‘동생 선생’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남매 관계가 사제관계로 바뀐 셈이다. 동생 선생은 벌써 3년 동안이나 내가 사는 곳 가까이 와서 수필을 가르쳤다. 대학에서 정년을 마치자 첫 번째 가르침으로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누님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한 학기 강의 듣는 동안 심심찮게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푸대접을 받는데 밖에서는 인문학의 인기가 높아만 갑니다. 특히 문학 판에 많은 이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계로부터 소외당한 인간들이 다시 인간의 자리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인 듯싶습니다.”
15주를 끝으로 끝나는 시간이 정말로 쏜살같이 지나갔나 싶은데, 어느새 시립도서관에 도착하였다. 문예교실에는 수강생들이 종강 준비에 한창이다. 꽃다발과 케이크와 각종 다과와 과일 등이 책상마다 수북하다. 오랜만에 스승의 노래를 들으니 가슴이 짜안하게 울려온다. 유난히 감동이 깊었던 청주에서의 수필 공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