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청주 ‘사슴 동호회’에서 서울 나들이 가기로 한날이어서 아침 일찍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에 난영 동생을 만나 함께 갔다.
전철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초록빛 산야가 살짝살짝 비추며 지나간다. 마치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스릴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2시간 넘게 소리 없이 힘차게 달려온 전차는 멈추고 출구로 나와 보니 교수님과 일행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회원을 기다리느라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바로 눈앞에 ‘헌법’ 재판소가 있고 손에 잡일 듯 ‘청와대’ 뒷산이 보인다. 얼마 전에 높으신 분을 권좌에서 내려놓기 위해 탄핵을 인용했던 곳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묘한 감정에 사로 잡혀 먹먹해 있을 때, 기다렸던 회원들이 도착하여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느라 소란스럽다. 인원 점검을 하고 인솔교수님을 따라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을 차례로 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고래 등 같은 기와집들이다. 고대광실 사대부집 앞에서 서 있는 순간 “여봐라”하고 호기 있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면 행랑채에서 하인들이 재빠르게 나타나 ‘예’ 마님’ 하고 고개를 조아리는 상상도 해보았다.
우리나라 역사와 조상님들의 얼이 서려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 마음이 뿌듯하다. 길가로는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갖가지 물건을 진열해놓아 볼거리로 넘쳐난다. 길가에는 아기자기한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골목에 들어서니 옛날 모습 그대로여서 좁았지만 보행하기에는 불편함은 없었다.
수학여행 온 남. 여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리 옷을 차려입고 폰에 모습을 담아가며 한복 체험에 만족해하는 웃음도 마냥 예쁘기만 하다. 외국인들 다수도 한복 입은 맵시에 자랑스러워하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특히 아프리카인들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를 하고 한복 입은 모습도 다소곳해 보였고, 거리를 활보하며 시종 웃는 모습이 만족스러운 표정들이다.
우리 옷에서 풍기는 ‘기품 있는 멋과 우아함’을 재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골목골목을 누비다 집안을 들여다보면 나지막한 천장과 여러 개의 작은방들, 앞마당도 몇 사람 들어서면 꽉 들어찬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골목길을 배회하는 기분이다.
2시간 가까이 걷다 보니 시장기가 느껴진다. 점심을 먹기 위해 교수님이 추천한 식당 “촌집”이라는 곳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기와지붕은 그대로 내부만 개조했다. 천정이 야트막하니 아름드리 대들보가 수백 년을 지탱해온 흔적이 역력하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크고 작은, 실내등 불빛의 은은함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음식은 한정식이다. 예약을 해놓아서인지 음식은 곧바로 나왔다. 시장한 판에 반가웠다. 한정식이라기보다 일반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채가 있고, 두어 가지나물들 채소 샐러드가 있다. 북어 요리는 튀겨서 졸였는지 바삭하니 고소했다. 이 집만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로 대표음식인가 보다. 한정식에는 필히 김치가 2가지 정도는 밥상 중앙에 터주 대감처럼 떡 버티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안보였다. 누군가가 ‘김치’가 없다고 하자, 교수님이 그 말에 이어 종업원을 불러 여기 김치가 없다네요? 하니까, 냉큼 들어오더니 ‘이거 김치 아니에요?’ 하며 짜증스러운 언사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눈이 일제히 집중하여 바라보니 아주 작은 용기에 얼거리 배추로 만든 겉절이었다. 기분은 언짢았지만 대응하고 싶지 않아 겉절이도 김치에 속한다고 나름대로 일축해 버렸다.
일행들 모두가 서울 나들이를 위해 일찍 집에서 나오느라 아침식사를 대충하고 나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2시간 가까이 걸었던 것이 운동효과를 톡톡히 낸 것인지 밥맛이 꿀맛인걸 보면! 왕후장상(皇后將相)도 부럽지 않게 배부르게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차(茶)는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 운영했던 집으로 갔다. 찻집은 귀천(歸天)이다. 옛날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 있어 지금은 다른 사람이 운영하고 있지만, 서너 평쯤 되어 보이는 작은 공간, 누렇게 찌든 벽지도 천상병 시인을 말해주듯 궁핍했음을 보여준다. 벽에 걸어놓은 천상병 시인의 사진이 생존에 모습처럼 웃으며 우리를 반기는 것 같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진 속의 얼굴 모습이 일그러져 보여 가슴이 짠하다. 가족으로는 부인만 있었고, 슬하에 자식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63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다지만 세상을 떠난 후에 더욱 천상병 시인으로서, 높게 평가되어 묘비도 조성하고 뜻있는 분들의 잊지 않으려는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 천상병 시인의 생각에 깊이 잠겨있노라니, 주문한 차가 오래 기다린다 싶었는데 배달됐다. 보시기만 한 컵에 감귤차가 한가득이다. 배가 불러서 많은 양이 달갑지 않았다. 감귤을 설탕에 절인 물인지라 순 설탕 맛이다.
유명한 시인 찻집에서 맛있는 차(茶)를 우아하게 마시고 싶었는데…. 세상사 마음대로 안 된다더니 이를 두고 한말인가 싶기도 하다.
귀천 찻집에서 나와 인사동은 길 건너에 있어 쉽게 볼 수 있었다. 오후가 되자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서울 명동거리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우리 일행도 그 대열에 끼어 계절이 계절인지라 시원한 인견 여름옷에 시선이 끌린다. 현란한 빛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액세서리에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가계마다 쌓여있는 멋진 모자에 집중하여, 일행들이 일제히 사서 쓰고 한껏 멋을 부려 보았다. 따가운 햇볕을 가리게 되어 한결 시원함을 느꼈다. 이곳에서 시간을 마냥 보낼 수는 없었고, 갈현동 교수님 댁에 들르기로 돼 있는데 우리 천안 팀은 사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 마음은 아쉽지만 교수님 댁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헤어져야만 했다.
북촌 한옥마을은 우리나라 전통 옛집을 볼 수 있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특히 우아한 처마의 곡선 바람이 드나드는 대청 소박함을 담은 중정, 고풍스러운 멋에 실용과 편리함이 더해졌다. 한옥과 양옥의 절묘하게 공존하는 이곳이야 말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며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
오늘 청주 ‘사슴 동호회’ 회원들과 서울 나들이를 함께했던 시간들이 즐거웠고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