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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비밀처럼 계절이 흘러 상처들이 아물어 가면..."

by 돌아보면

유일한 오락거리라곤 친구들과 하는 축구뿐이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떠올려본다. 그 흔한 게임도 한번 하지 않았으며 컴퓨터는 숙제를 하거나 친구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가끔 하는 정도 외에는 쓰지 않았다. 그랬던 나는 대학교에 진학한 후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공부만 하고 있는 동안 세상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대학 입학 전부터 같은 대학 같은 과에 합격한 동기들끼리 카페를 만들어 서로 인사를 하고 싸이월드 일촌신청을 주고받았으며 이제 어른도 되었겠다 우르르 모여서 술까지 마시곤 했다. 컴퓨터를 고작 그 모양으로만 쓰던 고3 시절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나도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그들 틈에 녹아들어서 함께 취하고 웃고 떠들며 놀고 있었다.


그 싸이월드 클럽을 알게 되었던 건 1학년 때 사귀던 과 CC 여자친구와 - 내 생애 첫 번째 여자친구였다. - 헤어진 후였다. 친목 클럽인 줄 알고 가입했는데 가입해놓고 보니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자기 잘 나온 사진들을 올리며 일촌을 구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일촌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냥 그런 노골적인 곳이었다. 뭐 나도 마냥 순수한 목적으로 가입한 건 아니었어서 할 말은 없지만. 사진도 올린 적이 있는데 비슷한 타이밍에 잘생긴 남자가 같이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이게 대체 뭐하는 건가 하고 괜히 혼자 창피해져서 금방 지웠었다.


그게 동아리 MT를 가기 바로 전날이었고, 다시 싸이월드에 접속한 건 MT를 다녀오고 집에 돌아오고도 이틀 후였다. MT 복귀날, 이대로는 뭔가 아쉽지 않냐는 몇몇 동기들의 의견이 있었고 한창 혈기왕성하던 우리는 남녀 구분 없이 만장일치로 '콜!'을 외치며 집이나 각자의 자취방 대신 후문가 술집으로 향했다. 동기 여자애의 주량 도발에 넘어간 나는 그날 그 여자애와 '다이다이'를 했고 나름 주량에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놀랍게도 패배하고 말았다. 졸업하는 그날까지 그 여자 동기가 만취하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 지금까지의 전적이 6전 6패가 된 것은 조금 더 훗날의 이야기.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친구의 자취방에서 일어나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MT 때 친구에게 추천받은 노래를 다운받을 겸 컴퓨터를 켰다. 싸이월드도 늘상 들어가던 식으로 별생각 없이 로그인했고, 쪽지가 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쪽지는 세 개 정도 와 있었는데 동일한 사람에게 온 것이었다.


"사진 왜 내렸어요? 그쪽도 충분히 매력있으신데~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못 보시나? 설마 제가 많이 웃어서 기분 상하고 그런 거 아니죠?ㅠㅠ"


"흠... 뭔가 미안하네 혹시 나중에라도 보시면 연락 주세요ㅠㅠ"


나 없는 새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해 놓은 그녀의 쪽지를 보며 나는 작성자의 이름을 눌러 미니홈피를 타고 들어갔다. 흔한 반도의 여대생 싸이월드와 다를 바 없었고 무심한 표정으로 사진첩을 클릭한 나는 잠시 후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래. 예뻤다.


일단 답장을 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 나는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답장을 썼다.


"아...제가 동아리 MT를 다녀와서요! 사진 내린 건 어떻게 보셨대요ㅋㅋ민망해라."


보내고 나니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왜 저렇게 멀쩡하게 이쁘게 생긴 여자애가 나한테? 이거 뭐 종교 믿으라고 하는 그런 건가? 신천지? 여호와의 증인? 아니면 다단계? 그 왜 거마대학생 이런 말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도 접근을 하는 건가?

그렇게 선배들한테 들은 사회 초년생이 조심해야 할 사기 유형들을 머릿속에 적용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안 답장이 왔다.


"아하 그러셨구나... 혼자 난리친 제가 더 민망하네요!ㅋㅋ"


그녀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으며 우리 집에서 겨우 2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남자친구하고 헤어진 후 괜히 외롭고 쓸쓸했는데 마침 이 싸이월드 클럽을 발견하고 찾아온 이유도 나와 비슷했고 주량, 좋아하는 야구 팀과 음악 장르도 비슷했다. 처음 내 사진을 보고서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잘생긴 남자 사진이 올라오며 내 사진이 갑자기 사라진 걸 보고 뭔가 귀여웠단다. 그래서 작성자 이름으로 검색해서 나에게 쪽지를 보냈단다. 그게 대체 어디가 귀여웠는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나는 굳이 나를 찾아내서 쪽지까지 보낸 그녀의 그런 집요함이 귀여웠다. 그렇게 우리는 쪽지로 며칠간 이 얘기 저 얘기를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근데 왜 나한테 만나자고 하거나 연락처 물어보거나 안 해?"


어느 날 그녀는 뜬금없이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사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내가 이런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우물쭈물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아 그게 아직 잘 모르는데 막 그렇게 들이대면 누나가 싫어할 것 같아서ㅠㅠ"


그냥 있는 그대로 답장을 했다. 그리고는 'ㅋ'으로 꽉 찬 답장을 받았다. 휠을 한참 내린 밑에는 전화하라는 그녀의 말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고, 학교 전산실에서 과제를 하며 그녀와 쪽지를 하던 나는 쪽지의 전화번호를 눌러 둔 후 재빨리 자리를 정리하고 전산실 밖으로 나갔다. 물을 계속 마시고 목소리를 한참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잠깐 들리더니 곧바로 약간은 앳된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누나 나야. 전화번호 보고 바로 전화했어."


"이번엔 연락이 빨리 오네? 목소리 멋있다~"


내가 생긴 건 그냥 그래도 목소리는 좀 좋다. 성대모사도 꽤 잘 해서 이걸로 선배들한테 밥을 여러 번 얻어먹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날 그렇게 그녀와 번호를 주고받고 싸이월드 일촌도 맺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슬슬 만나자고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애초에 목적이 그런 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요즘이야 소개팅 어플에 이런저런 것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세상이지만 그때만 해도 인터넷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시선을 받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말해서 상담도 못 받고 혼자 끙끙 앓곤 했었다. 고민이 있을 때 흔히 써먹는 '이건 내 친구 얘긴데...'로 시작해 질문을 해 봐도 돌아오는 건 하나같이 부정적인 대답들뿐이었다.


'나 아는 사람이 그렇게 해서 만났는데 나가보니까 사진이랑 완전 다르다더라.'


'걔는 여잔 줄 알고 나갔는데 남자가 나왔대! 대박이지 않냐.'


'그러다가 장기 털린대. 혹시라도 그런 생각 말아라.'


'사진 도용도 진짜 많대. 완전 뚱뚱한 사람 나와가지고 걔 그냥 그 길로 다시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더라. 근데 그런 건 왜 물어? 이거 이거 친구 얘기 아닌 거 아니야?'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진짜 모습이 어떻든 일단 만나나 보자는 결심을 했다. 거의 하루 종일 문자를 했고 그 당시에는 '썸 탄다'라는 표현이 없었지만 나름 달달한 문자도 통화도 많이 했었다. 혼자 속으로 몇 번씩 연습을 한 후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습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말했고 진짜 연애 못 해본 남자 티를 줄줄 내면서 어버버 거리면서 말을 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흔쾌히 만나자고 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중간에 그녀의 집이 있어서 그 근처에서 보기로 했다. 만남 당일, 나는 아끼던 옷을 옷장에서 꺼냈고 그 나이 대 남자애들이 으레 야한 상상을 자주 하듯 혹시 모른다며 아끼던 팬티까지 꺼내 입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는 진짜였다. 신천지도, 여호와의 증인도, 거마대학생도, 사진 도용도, 남자도 아닌 사진첩 속 모습 그대로였다. 오히려 미천한 카메라가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얼마간 기다리자 저만치서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며 걸어왔다. 덕분에 나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안부를 자꾸 물으려 올라가는 광대뼈를 누르느라 조금 힘들었다.


쪽지로도, 문자로도, 전화로도 이야기가 술술 통하던 우리라 어색함 같은 건 없었다. 그녀는 내게 이거 완전 꾼 아니냐며 농을 던졌다. 하지만 꾼이라기엔 너무 경험이 없는 나는 너무도 어수룩했고 그녀는 그래도 한 살 많다고 이미 나를 다 파악한 눈치였다. 그렇게 술잔이 오고 가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근데 누나는 왜 거기 들어가 본 거야?"


"나? 나 뭐 그냥... 심심하기도 했고 뭣보다 외롭잖아!"


"아니 누나가 뭐가 모자라서? 굳이 그런 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남자 많을 것 같은데?"


"...그런 데는 어떤 데인데? 오프라인 만남은 무조건 좋고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온라인 만남은 무조건 안 좋은 거야 그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왜 갑자기 정색을 하고 그래~내가 말실수 한 거 있으면 미안해. 그런데 잘 모르겠어.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


잠깐 동안 싸늘해졌던 그녀는 '그래... 아직 넌 잘 모르니까.'라는 혼잣말과 함께 표정을 풀었고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서로가 남자친구,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부분은 뭔가 역린을 건드리는 것 같아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주제로 이야기가 갈 것 같으면 자연스레 이야기 화제를 돌리곤 했다.


전 남친은 정말 키도 컸고 정말 잘생겼고 정말 돈도 많았으며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의 외모에 반해 혼자서 짝사랑을 하고 있던 그녀는 그가 사귀자고 하던 어느 날, 속으로 뛸 듯이 기뻤단다. 그가 자기 말고도 이 여자 저 여자 함께 만나고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래서 내가 지금도 잘생긴 놈들만 보면 그놈 생각이 나서 재수가 없다니까? 그 클럽도 마찬가지야 다들 지 잘난 맛에 사진 올리고... 그런데 그날 너 사진 올라오고 잘생긴 놈 사진 올라오니까 니 사진이 없어진 거야. 뭔가 그냥... 니 편을 들어주고 싶었어. 그 잘생긴 놈한테 지는 것 같아서 그런 건 싫었거든. 이유가 웃기지?"


그녀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잔을 부딪힌 후 한 잔을 다 비웠다. 약간 취기 오른 얼굴과 눈빛마저 예뻤다.


"그런데 얘기하다 보니까 너는 나랑 되게 잘 맞는 것 같아. 나한테 말 걸어서 이야기하고 있던 사람들도 사실 몇 명 있었는데 너 알게 된 후로는 그 사람들 다 끊었어. 이런 말하는 거 조금 느끼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날 닮은 너랑 이야기하는 게 정말 좋았거든. 정말이야. 보여줄 수도 있어."


"아하... 그랬구나. 뭔가 영광인데?"


"영광은 무슨. 술이나 더 먹으러 가자."


그렇게 옮긴 술자리에서 한참 술잔이 더 오고 갔다. 어느새 그녀는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아 있었고 우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던 새에 시간이 자정이 거의 다 된 것을 보았다. 부모님은 아마 잠드셨겠지만 그래도 집엔 들어가야 하니 슬슬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기 전에는.


"우리집 가서 한잔 더 할래? 더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날이 우리가 사귄 지 1일째 되는 날이자 나의 첫 경험 날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날 탁월한 옷 선택(속옷 포함)을 했던 나 자신, 그리고 나에게 수많은 일본산 시청각 자료를 전송해 주어 내 첫 경험을 보다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도와준, 현재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윤 모 군, 집중적인 1:1 트레이닝과 효율적인 운동법 전수로 약골이었던 나를 강건한 육체의 소유자로 만들어 준 김 모 형님과 임 모 형님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싸이월드 프로필을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꾸고, 커플 미니미도 설정해 놔서 언제든 그녀의 싸이월드로 갈 수 있었다. 사진첩은 온통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로 채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은 물론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도 아래와 같은 리액션과 함께 폭풍이 몰아쳤다.


'아니 이런 분이 대체 왜 널...?'


'퍼가요~♡'


'전생에 나라가 아니라 대륙을 구했나?'


'너 이분이 너한테 뭘 잘못했는진 모르지만 쿨하게 용서하고 그냥 놓아 드려라. 남자가 여자 약점 잡고 그러는 거 아니다.'


'헐 야'


'미친!!!!!!!!'


그들은 집요하게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나의 어디가 좋았는지, 우리의 첫 만남 장소 등을 물었고 나는 미리 그녀와 입을 맞춰 둔 대로 그냥 소개팅에서 봤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친구들의 반응을 본 그녀는 웃으며 소주병을 둔기 잡듯 집어올렸다.


"누....누나? 저희한테 왜 그러세요..."


"응? 술잔이 비었길래 술 따라주려고요. 그런데 좀 전에 뭐라고요?"


"아...아닙니다!! 믿습니다!! 믿어요!!!"


그녀는 웃으며 나와 친구들의 빈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고 그날 그녀의 행동에 감명받은 우리는 이후 각자의 술자리에서 소주병을 그녀처럼 집어 들곤 했다. 그녀와 1년 정도 사귀다 헤어진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말이다.


그럼 이제 헤어진 이야기에 대해 써야 하지만 그렇게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가끔씩 자꾸 뒤돌아보게 될 만큼 후회스러운 일이라 그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그냥... 그때 나는 어렸고 경험도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군대에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배려가 부족했다. 그녀와 말다툼을 하던 도중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고, 그녀는 그 길로 내 곁을 떠나갔다.


다행히 그 다음 주가 휴가였기 때문에 나는 장문의 문자로 진심이 아니었음을 설명했고 부대에서, 그리고 휴가 나온 후에 핸드폰으로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이미 상처 입은 그녀의 마음을 어쩔 수는 없었다. 내가 '이프 온리', '시간 여행자의 아내', '어바웃 타임', '나비효과' 등 타임리프를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도 영화 속 그들처럼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다면 군대를 다시 가도 좋으니 그때로 돌아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 같지 않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이름 석 자만 알면 그 사람의 SNS 등 행적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는 그녀가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찾으려고 해 본적도 있지만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은 없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신기하다. 그렇게 이야기가 잘 통하고 모든 것이 서로를 위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살면서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비밀스럽게 시작되어 흘러간 우리의 계절들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너를 생각한다. 가슴 두근거리던 처음 만난 그날의 너무 예뻤던 너를.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던, 강하고 능숙한 척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여렸던 너를. 그리고 닿을 수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너와의 그 시간들, 사랑하던 날들, 헤어지던 날이 아직도 눈 감으면 생각이 난다고. 그런 아름답고 아팠던 날들 덕분에 나는 그때보다 조금은 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고.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 비밀이란 건 너무 소중해서 입 밖에 내기조차 아까워하는 것일 수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부끄러워 차마 주변에 말할 수 없는 흑역사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하지만 이것은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는 소중한 나의 비밀이다. 비밀을 말한 후엔 그런 복을 너 스스로 찼냐며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될 수도, 그런 식으로도 여자를 만났냐며 뒤에서 수군대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혼자 속으로 그때를 간직하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바래진 기억으로 남기기보단 이렇게 몇 번이고 되새기며 오롯이 아름다웠던 그 모습 그대로 내 기억 속에 남기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이 글을 보게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우리는 많이 변했을 테니까. 그리고 뭣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같은 하늘 아래서 잘 살기를, 나를 가끔 추억하기도 하겠지만 그냥 잠깐 쓴웃음 머금고 말아주기를. 그것뿐이다.




https://youtu.be/VNxUy2ua9AM


[부활 - 비밀(Vocal 박완규)]


빈 의자와 마주 앉아서

가끔 나 혼자서 말을 하고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비밀처럼 계절이 흘러

상처들이 아물어 가면

설레이던 너는 설레이던 너는

한편의 시가 되고


너무나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져서

가끔씩 홀로 두 눈을 감곤 해

너와 나 사랑을 하던 날들과

헤어지던 날을 난 간직하게 돼


너무나 그리워져서 너무 그리워서

너의 이름을 홀로 부르곤 해

너무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넌 내 안에 늘 있나 봐 있나 봐


비밀처럼 계절이 흘러

상처들이 아물어가면

설레이던 너는 설레이던 너는

한편의 시가 되고


너무나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져서

가끔씩 홀로 두 눈을 감곤 해

너와 나 사랑을 하던 날들과

헤어지던 날을 난 간직하게 돼


너무나 그리워져서 너무 그리워서

너의 이름을 홀로 부르곤 해

너무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넌 내 안에 늘 있나 봐


너무나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져서

너의 이름을 홀로 부르곤 해

너무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난 네 안에 늘 있나 봐 있나 봐

부활 'Collaboration Project +1'(201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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