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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칸 옆 차량에 타서 고개 숙인 당신의 옆 얼굴 보고 있으니..."

by 돌아보면

※ 이전 포스팅 '흐리고 비'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전 편을 보시지 않은 분들은 '흐리고 비'편을 먼저 읽고 와 주세요.



돌아보면 내 대학 생활은 참 파란만장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서울에 혼자 덩그러니 올라온 것부터 참 패기로웠다. 자취방 보증금은 집에서 지원받았지만 다달이 보내 주시는 월세는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다. 월세는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라서 내 용돈벌이도 할 겸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했다. 그러던 중 오빠를 만났고 연애를 시작했다.


인터넷 용어 중에 보면 '츤데레'라는 말이 있다. 되게 틱틱거리고 투덜대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닌, 투덜거리면서 이것 저것 잘 챙겨주는, 좋아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오빠가 딱 츤데레다. 그런 은근히 챙겨주는 모습이 좋아서 내가 먼저 좋다고 했고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었다. 츤데레긴 하지만 점점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는 빈도가 늘었는데, 그건 그거대로 또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같이 살 때도 너무나 행복했다. 오빠랑 나중에 결혼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매일매일이 꿈만 같았다.


그렇게 즐겁게 학교를 다닌 덕분인지 매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장학금에 대한 포상(?)으로 집에서 보내준 꽤 많은 양의 목돈을 모아 두었다가 오빠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온 돈과 합쳐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냥, 그런 날들이 계속 될 것만 같았다. 오빠가 졸업하기 전 까지는.


취직을 한 오빠는 예전과는 달라졌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혀 기반이 없는 새로운 지역에서의 시작, 직장에서의 생존 경쟁, 툭하면 하는 회식자리 등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래,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고 결국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헤어진 그날, 나 이제 오빠 없이 어떻게 사냐며 서진이를 잡고 펑펑 울었다.




어떻게 살긴... 잘 살았지.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원하던 회사에도 취직을 해서 오빠가 그랬듯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다른 날들과 다를 것 없는 보통의 퇴근길이었다.


10월 말에 접어들면서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지만 나는 어제 택배로 온 트렌치 코트를 처음 입고 나온 날이라 몸도 마음도 너무나 따뜻했다. 옆 팀 재경 씨가 코트를 유심히 보던데 봄 때처럼 내 코트를 따라 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제발... 그러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카드를 찍고 여느때처럼 플랫폼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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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쪽에 서 있는 남자가 입은 가을 코트, 어디서 많이 봤는데... 저 남자 뒷모습도 어디서 많이 봤는데...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몸은 이미 잰 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 옆을 빠르게 걸어 올라 코트의 남자를 뒤쫓았다.


그래. 오빠였다. 2년의 세월 동안 단 한번도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고 서로의 소재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회사가 이 근방 어디쯤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이 좁은 한국 땅에서 오빠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서진이와도 그런 주제로 한참을 수다를 떤 적이 있다. 그 때 샘솟던 그 아이디어들은 다 어디 간걸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밀어내고 숨겨 두었던 그리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덮쳤고 나는 말을 걸기는 커녕 저만치 뒤에 서서 멍청하게 오빠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2년이나 지났다. 나는 오빠가 그렇게 좋아하던 단발 머리를 길러 이제 제법 긴 생머리 아가씨 티가 났고, 오빠는 예전보다는 조금 지쳐 보였지만 넓은 어깨와 당당해 보이는 모습은 여전했다.


내 생각을 하기는 할까? 2년이나 지났는데?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에 몇 번 연락이라도 해 볼걸. 나 졸업 때까지 장학금 안 놓쳤다고, 우리 함께 누워서 이야기하던 그 콧대 높은 회사 문 이제 당당히 카드 찍고 들어간다고, 우산은 여전히 잊어버리지만 가방 안에는 항상 예비용 3단 우산 가지고 다닌다고, 난 잘 지낸다고 이야기 해 주고 싶은데...


이윽고 열차가 도착했고 나는 멍청하게도 같은 칸에는 차마 타지 못하고 옆 칸 출입구 옆 창문을 통해 오빠를 바라보기만 했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번이고 출입구 문을 열고 오빠가 있는 칸으로 갔다. 가서 밝은 얼굴로 그동안 잘 지냈냐고, 이렇게 만나서 너무 신기하고 반갑다고 말하고 싶었다. 지난날의 다툼도 화도 이젠 다 사라지고 그리움만이 남았다.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 경우가 있고 나쁜 기억만 남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는 둘 모두에게 전자이길 바란다. 내가 그러니까.


하지만 실제로 말을 걸지는 못했다. 아니, 사실은 두려워서 말을 못 걸었다. 오빠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잘못하면 그리워하는 이 내 마음도 송두리째 부정당할까봐 그게 무서웠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오빠를 그냥 보내고 말았다. 신세 한탄을 하려고 서진이한테 전화를 했다가 한시간 20분동안 혼났다. 그리고 또 만나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가면서 2시간 40분 정도를 혼났다. 정말 서진이 말대로 우린 이제 완전히 끝난 걸까?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이후 몇 번을 비슷한 시간에 지하철 역으로 가 봤지만 다시는 오빠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나에게 찾아왔던 기회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에 파묻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희망한다. 언젠가 또 다시 마주치기를. 그 때는 서진이한테 하루 종일 혼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을 걸어볼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기회가 찾아왔던 것처럼 그런 날이 또 다시 평범함 속에 숨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정 안오면 먼저 연락도 해 보려고 한다. 많이 무섭고 두렵지만 거울 보고 연습도 할 거고 어렸을 때의 내가 아니다. 언제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오빠를 만나고 싶다.




처음 사연을 접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 노랫말이 떠올랐다. 사실 처음에는 노래 가사인지도 몰랐고 처연해 보이는 문구를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잊어버렸었는데 그 문구가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고, 결국 어떤 노래인지도 알게 되었다.


사연의 주인공들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길, 우연이 두 사람을 도와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vKpIqKq3-2s


타케우치 마리야(Takeuchi Mariya) - 驛(역, Eki)


어딘가 본 적이 있는 레인 코트

황혼 무렵의 역에서 가슴이 떨려왔어.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보니, 틀림없이

예전에 사랑했던 그 사람이었네!


그리움의 일보 직전에서

복받쳐 오르는 괴로운 추억에

할 말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


당신이 없어도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2년의 세월이 바꾼 것은

그의 눈빛과 내 머리 모양.

각자 기다리는 사람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군요. 눈치도 못 챈 채.


한 칸 옆 차량에 타서

고개 숙인 당신의 옆얼굴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아.


지금에서야 당신의 마음

처음으로 알겠어, 가슴 아프도록.

나만 사랑했었던 것도...


러시아워의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가는 뒷모습이

몹시도 슬프게 마음 속에 남아


개찰구를 나올 무렵에는

비도 그쳐 가는 이 거리에

늘상 있는 흔한 밤이 찾아오네요


takeuchi.jpg Takeuchi Mariya 'Request'(198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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