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도 달아나려고 했던 너라는 그리움..."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고, 운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찾아오는 몇 가지의 굵직한 선택지 앞에서 나는 매번 이별을 겪었다. 첫번째 이별 후에는 둘의 연관관계 같은 건 생각도 못하고 마냥 슬펐다. 두번째 이별 후에는 잠시 멈춰서서 골똘히 생각에 빠졌으며, 세번째엔 이게 마냥 우연만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첫번째. 수능을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나는 3년간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억울했던 건, 그 당시 그 여자친구는 대학교 수시모집에 이미 합격한 상태였고 나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두번째. 대학교 2학년 때 과CC로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한동안 방황하느라 F를 3개나 받았다. 졸업 후 취업을 위해 출력했던 성적 증명서를 보면 2학년 1학기때 들었던 수업이 별로 없다. F학점은 대외용 성적표에 인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면접관들이 이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학점 이수가 이것밖에 안 되냐고 물으면 나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그랬다고 둘러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다 알고 있었는데도 그냥 물어봤던 것 같다.
세번째. 과 CC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만나 취업 준비를 할때까지 만났던 여자친구의 경우는 특히 가슴이 아팠다. 군대 다녀오는 것까지 기다려줬던 여자친구였는데 딸만 둘이었던 여자친구의 집에 놀러갈 때면 그 집에서 나는 거의 아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졸업 후 1년간 취직을 못 하고 있을때도 여자친구와 여자친구의 언니, 여자친구의 부모님은 마치 내 가족의 일인 양 함께 안타까워해주고 함께 응원해주곤 했었다. 하지만 내 바보같은 실수가 발단이 되어 헤어지게 되었다.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여자친구의 가족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건 그게 처음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헤어지게 되니 그건 우리 둘만의 이별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게 불과 일년 전 일이고 내 마지막 연애였다.
얘기가 이쯤 되면 나는 사실상 불행의 별이 친히 굽어 살피는 불행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마냥 불행하지만도 않았다는 걸 알 것이다.
수능을 2개월 앞두고 첫 여자친구와 그렇게 이별한 후 나는 거짓말처럼 이름만 대면 누구나 탄성을 자아내는 명문 대학교에 당당히 입학했다. 심지어 수능 시즌이 지나면 으레 학교 건물 한 켠에 대학 진학자들의 이름이 걸린 현수막이 걸리게 되는데, 내 이름 석 자는 다른 친구들의 이름과 함께 현수막의 가장 윗 부분에 커다랗게 인쇄되어 걸리게 되었다.
과 CC와 헤어진 충격에 F를 3개나 받고 C+. C0 파티를 거하게 벌인 나는 - 사실 대학 진학 후 너무 놀기만 해서 이전에도 썩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 이후 정신을 차리고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가 졸업할 때는 취업에 아무 문제없는 학점을 만들 수 있었다. 교수님도 학교 선후배 동기들도 본인들이 본 것 중 손꼽힐만한 기적이라며 칭찬해 주었다.
취업 준비를 하며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일주일 후, 나는 원하던 회사를 포함한 4개 회사에서 서류합격 통보를 받았다. 기업에서 보는 인적성검사 같은 건 별로 걱정도 안 됐고 전부 다 통과했으며 결국 가고 싶던 회사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고 최종 합격까지 하게 되었다. 정말 뛸듯이 기뻤다. 이 기쁜 소식을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여자친구의 가족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여자친구와 누나, 아버님 어머님의 얼굴이 눈에 자동으로 그려지는데, 그저 그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이렇듯 삶의 굵직한 부분에 있어서 내가 항상 원했던 것들은 모두 이별 후에 찾아왔다. 생각해 보니 그녀들 탓인것만 같았다. 원래 나는 연애 할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좋아하게 되어 버리는, 푹 빠져버리는 편이라 그녀들 때문에 내가 할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혼자서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해갈 때 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겪은 적은 아마 없을 거라며 나는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들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었다. 사실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만큼 자랑스러운 건 아니었으니까.
"들어보니까 어때? 진짜 어이없지 않냐 내 인생."
"그러게. 어째 그렇게 살았냐 진짜."
"그렇지? 뭐 연애 못한 귀신 씌이고 그런거 아니겠지 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났으니까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면서까지 친구들에게 말을 할 수 있구나, 하고. 그렇게 창밖을 멍하니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반대편에 앉아서 듣고만 있던 다른 친구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근데 그걸 왜 걔 탓을 하냐."
"뭐라고?"
"그렇잖아. 걔가 문제가 아니라 니 마음가짐이 문제 아니냐?"
아... 그런 거였구나. 그래, 그렇지.
나는 그저 네게 괜찮아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네게 떠넘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네가 없더라도 내가 괜찮음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려면 성공과 사랑 중에서 남은 성공만이라도 꼭 해내야 했고, 노력과 운이 잘 따라주어 그동안 보란 듯이 선 이별 후 성공을 해낼 수 있었다. 이별에 휘둘리지 않고 '괜찮아 보여야'했다.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는데. 나는 네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고, 모든 걸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는데.
헤어졌지만 보란 듯이 잘 살거라는 내 바보같은 다짐은 그날 밤 그렇게 무너져 버렸고 그동안 눌러 두었던, 벗어나려 했던 후회와 그리움이 한번에 몰려왔다.
두 번 다시 만날 순 없겠지만 네가 너무 보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는 어떻게든 이 후회와 그리움을 극복할 것이고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네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한동안은 마음 한 켠이 무거울 것 같다.
내가 몇년 전부터 시간 여행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보게 된 것은 단순히 그 영화와 드라마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널 놓쳤던, 널 보내야 했던 그 순간에 대한 후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별했던 그 날 밤부터 답답해지는 내 가슴
그렇게 신중히 결심했었던 우리 이별이지만
나 그렇게도 빨리 찾아오는게 후회인지는 몰랐어
그 날부터 시작된 불안한 가슴
시간 흘러가면 잊겠지 좋은 사람 나타날거야
너무 자주 다투는데 지쳤어 우린 맞지 않아
나 그렇게도 믿었던 이별 이유 그것 마저도 그리워
나의 밤은 끝 없는 후회..후회
이제 깨달았어 얼만큼 사랑하는지
우리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은 모두 과정이었음을
밤하늘에 추억 얼마나 수없이 떠올렸는 지
저 넓은 하늘이 너의 얼굴로 가득 차
아마 홀가분 해 질거야 넌 나의 짐이었으니
누구나 거뜬히 견디는 이별 내가 왜 못 하겠어
그 바보같던 다짐이 하나 둘씩 허물어지던 깊은 밤
잠들지 못했던 후회 또 후회
이제 깨달았어 얼만큼 사랑하는지
우리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은 모두 과정이었음을
밤하늘에 추억 얼마나 수없이 떠올렸는 지
저 넓은 하늘이 너의 얼굴로 가득 차
이제 깨달았어 얼만큼 커다란건지
우리 만들었던 추억의 그늘 끝없이 드리워졌음을
벗어나려 했던 그렇게도 달아나려고 했던
너라는 그리움 그래 니가 이긴것 같아
안녕 행복해줘 세상에서 젤 후회하는 말
붙잡지 못했던 그 순간 후회 또 후회
돌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