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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언제나

"우습게도 어느새 이렇게 사랑한 시간은 지나가고..."

by 돌아보면

※ 서울에 살고 계신 C모양의 사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 등의 모든 것들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 총 4편의 이야기 중 마지막입니다. 좀 짧습니다.


연말이란 언제나 그렇듯 정신이 없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사람들과 서로 안부를 묻고 나누느라 금방 지나갔다. 오빠에게 연락할 생각 같은 건 들지 않았지만, 정이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같이 해온 시간이 있다 보니까 단칼에 잘라내기는 어려웠다. 복잡했다. 그렇게 새해가 어느 순간 내 곁에 찾아왔다.


친척들, 친한 친구들, 교수님 등 안부 인사를 돌리고, 미안하지만 잊고 살았던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있었는데, 오빠에게 문자가 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잘도 많이 받겠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제정신인가?'였다. 그날 그렇게 헤어져 놓고, 어떻게 이런 문자를 아무렇지 않게 나한테 보낼 생각을 하지? 이런 식으로 또 흐지부지 넘기려는 건가.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쉰 후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응 예지야. 웬일이야?"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이번 달 초에 보자. 날짜는 문자로 보낼게. 끊어."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쯤 거의 마음을 굳혔던 것 같다. 나는 카페에 오빠가 와서 앉자마자 - 심지어 이때도 20분 늦었다. 답이 없다. 이 사람은. - 오빠에게 헤어지자고 얘기했고, 오빠는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자기변명을 시작했다.


"그래... 너가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 그동안 만나면서 내가 알고 있는 너는 절대 정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말할 애가 아닌데.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고 내가 아무리 잡아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잡아보려고 시도는 했는지 모르겠다. 자기 딴에는 이치에 맞는 변명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결국 자기의 마음이 고작 그 정도라는 걸 나에게 다시 한번 되새겨준 꼴이 되었다. 이 사람은 또 결국 자기만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오빠의 말에 '그럼 잘 살아.'라고 특별할 것 없는 대답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연애는 그렇게 끝났다. 찌글찌글한 신파도, 그칠 줄 모르는 눈물도, 오고가는 성난 목소리나 다툼도 없이 조용히 끝났다.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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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후에도 연락은 중간중간 왔었다. 그냥 차단하면 되지 않느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 또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내 마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1년 정도 지났을 때는 한번 만나기도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슨 날만 되면 생각나고 아 우리 이때 뭐 했었는데, 그래도 이런 건 좋았었는데 하고 청승의 끝을 달리곤 했었다. 그런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어서 일단 한번 만나보기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만나는 순간 느꼈다. 별다른 계기는 없었고 그냥 만나는 순간 '아, 아니구나. 돌아가고 싶지 않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만나자마자 확 정리가 되어버려서 간단히 밥만 먹고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진 후 1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행복해졌다. 내가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내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를 위해 한다는 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벅찬 기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느 순간 오빠를 생각하며 눈물짓지도 않았고, 생각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권유로 소개팅을 몇 번 했었다. 애초에 별로인 사람도 있었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도 있긴 했었다. 하지만 전부 이어지지 않았다. 오빠랑 조금이라도 닮은 느낌이나 행동들이 보이면 그동안 이 사람의 이미지가 어땠건 상관없이 전부 다 싫어졌다. 덕분에 눈이 높아졌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싫은 걸 어떡해.


분명히 오빠의 목소리도, 얼굴도, 함께 했던 기억들도 잘 생각이 나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예전보다 더 예뻐졌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매번 그런 식으로 끝났다. 아마 당분간은 이런 식일 것 같다. 그냥 나는 연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행복하다.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은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행복을 언젠가는 느끼게 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이다. 가깝진 않겠으나 멀지 않은 언젠가...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갔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휘황찬란한 것은 아니었어도 하나하나 소중히 쌓았고


그래서 뭔가 만들어진 줄 알았는데


그냥 쌓기에만 집중한 탓에


내 미처 그걸 허튼 곳에 쌓고 있었던 것은 확인하지 못 했고


이제 와 돌아보니 전부 다 흩날리듯 사라져 버렸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간 데 없더라.


있잖아, 우리가 했던 건 뭐였을까.


그게 정말 사랑이었을까?




https://youtu.be/66X1SmnklZU

사랑은 왜 언제나 (Feat. 김지영, 낯선) - Ignite



[이그나이트 - 사랑은 왜 언제나(Feat.김지영, 낯선)]


사랑의 시작이란 언제나 절대 깨지지 않을 것처럼

헤어지는 그 순간부터 숨도 쉬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우린 믿곤 했지만


우습게도 어느새 이렇게 사랑한 시간은 지나가고

눈물조차 나지 않는 걸 너무 쉽게 널 잊어가는 내가 이상해 웃음만 나오네


이젠 니 얼굴도 생각이 안 나 그래 나도 그러기를 바랬어

하지만 아직 널 붙잡고 있어 돌아보면 아픔에 이렇게 쓰려오는데


얼마간은 널 잊고 살아가 혼자 보내는 시간 속에서

예전엔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운 기분에 차라리 잘 된 거라 생각했었지만


이젠 니 목소리 들리지 않아 그래 나도 그러기를 바랬어

하지만 아직 널 붙잡은 채로 기억 속을 서성여 자꾸만 눈물이 나와


눈물로 너를 보내고 가슴을 움켜잡아

미련을 떨쳐 버리고 추억을 쓸어 담아

가슴에 묻어버리고 인연의 끈을 잘라

괜시리 허세 부리고 무언가를 바라고 나만 바라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

나란 놈 땜에 남자란 단어 자체를 못 믿게 돼버린 너

그리기만 하면 매번 눈물이 나서

달려가 모든 것 다 잊게 꽉 안아주고 싶어도 텅 빈 너의 집은 아무 대답 없어

두 손잡고 산책했던 공원에서 망설이면서 고백했던 벤치에서 앉아

울적한 이 기분이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울어버리고 마지막 남은 사진을 태워


대체 왜 넌 내게 다가왔는지 결국 이렇게 끝날 얘기 속에

나를 들여놓고 불행하게 해 너무 미워지지만 아직은 사랑하는 걸


사랑의 마지막은 언제나 아무 희망도 허락지 않아

마음먹으면 닿을 수도 있는 곳에 있지만 다신 볼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어

Ignite-1st-Look-So-Good.jpg 이그나이트 1집 'Look so good'(200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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