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야."
형석이는 술잔을 비우며 나에게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라고 했다. 자기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살겠냐고, 삶이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균형을 맞춰가며 사는 거 아니겠냐고 영점 조절이 풀려버린 눈의 형석이가 나를 바라보는 건지 내 옆에 붙어있는 소주 광고 포스터 안의 아이유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눈초리를 하고서는 꼬부라진 발음으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나보다 겨우 2주 먼저 취업한 주제에 말하는 건 거의 신입사원에게 꼰대질 하는 부장님과도 견줄 만하다. 아무래도 직장에서 많이 당하고 사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오늘은 그냥 져 주기로 했다.
여러분 술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혀가 꼬부라지고 눈이 풀려서 그렇지 사실 형석이가 하는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오히려 동의한다. 현실은 물론 그렇지 못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 씩 이 길이 맞는 건가? 더 늦기 전에 그만둬야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건 이미 내가 이 일을 오래 못할 거라고 내 무의식이, 그리고 온 우주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3차 가자 난 괜찮다니까? 하고 큰일 날 소리를 내뱉는 형석이를 대리운전 기사님께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드린 후 보내고 조금 걸었다. 버스를 타기엔 가깝고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지만 지금 시간에 버스가 다닐 리가 없고 월급날은 다음 주인데 이번 달은 컴퓨터를 새로 사 버려서 지출이 과다해진 바, 과감하게 걸어서 귀가를 선택했다.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의 연구개발직으로 일하고 있고 돈도 남부럽지 않게 벌고 있지만 사실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주겠다. 학부 시절 배운 전공은 한 2.8% 정도 쓰는 것 같다. 그 2.8%를 위해 등록금 몇 천만 원을 들이부은 사실을 생각하면 화딱지가 나지만 이 전공을 택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회사의 문을 두드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음... 하고 싶은 거? 솔직히 아직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삼국지나 우리나라 역사 관련 책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역사학자가 되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있을 때 그런 얘기를 했다가 굶어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포기했었다. 그래, 뭐 그땐 어렸으니까 그런 말을 한 친구나 그 말을 듣고 바로 포기한 나나 할 말은 없지. 애초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도 하고 있는 운동은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시작했었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내 몸이 너무 신기하고 그 원리가 너무 재미있어서 책도 사서 공부해보고 헬스장에서 일하는 코치 형들과도 친하게 지냈었다. 몸 좀 컸다고 자만했던 게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잘못된 역도 동작을 계속 한 결과 어느 순간 어깨가 찢어질 듯한 통증이 찾아왔고, 2년 넘게 운동을 쉰 결과 나는 건강한 돼지가 되었다. 다시 이렇게 원상복구 시키기까지 정말 힘들었고 나는 이 길도 나의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성공한 부자들을 보면 주식으로 대박을 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소리를 듣고 모아뒀던 돈 3천만 원 정도를 자본금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보도 얻고 관련 서적들을 읽느라 거의 4개월 정도는 주식 관련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인생은 실전이라는 교훈을 얻으며 절반이 넘는 돈을 자본의 흐름 속에 날려버렸다. 인생 수업료 치고는 비싸지만 다 날려먹지 않은 게 어딘가. 나랑 주식은 정말 안 맞는구나 싶었다. 손대는 곳마다 말아먹으니... 이쯤 되면 그 주식회사 사장님들께 죄송하기까지 한 수준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나도 내년이면 서른이고 새로운 길을 향해 가려면 솔직히 올해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뭔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창업이나 그런 걸 할 용기도 돈도 아이템도 없기에 결국 하고 싶은 일과 관련된 직종의 회사로 이직을 해야 할 텐데 서른 살의 신입사원이라니! 다소 고리타분한 내 기준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굳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을 필요 없이 꿈을 그냥 일과 별개로 취미로서 조금씩 천천히 만들어 가 보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그게 되면 벌써 했지. 아니 애초에 아직도 뭘 하고 싶은 지 잘 모르겠다니까?
무섭다.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나가던 때는 잃을 게 없었지만 지금은 짊어지고 있는 게 예전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무섭다. 지금의 안정된 수입을 버리고 불확실한 꿈을 쫓아가는 것도, 하고 싶은 일을 평생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잠시 내려두고 돌아가지 못한 채 그냥저냥 살아가게 되는 것도.
꿈이 없고 싶어서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자신만의 꿈을 찾아낼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불안한 마음은 결국 더 강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언젠가 내 꿈을 찾았을 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능력을 갖출 준비를 할 것이다. 꿈을 찾았는데 그 꿈을 이룰 능력이 없는 것만큼 슬픈 것은 없을 테니까.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꿈의 경사면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얼마나 높고, 얼마나 경사졌으며 얼마나 미끄럽고 얼마나 숨이 차는지도 아직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잘 모른다고 좌절하거나 고개를 숙이진 않을 것이다. 그곳을 오롯이 올려다보고 있으면 나는 눈앞에 있는 목표를 적어도 포기는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은 꿈꾸던 그곳에 닿을 수 있게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 날을 기다리며, On Your Mark.
※ 동영상은 경우에 따라서 인코딩 과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참고 기다리면 곧 나올 거에요.
글 내용과는 무관한 애니메이션 MV지만 오랜만에 봐도 재밌어서 같이 올립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평소같은 미소와 모습으로
먼지투성이가 된 옷을 털었지 Oh
이 손을 놓으면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떨어지는 동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아
너와 나 나란히
새벽을 앞질러 보고 싶은 자전거
On Your Mark 언제나 달려나가면
유행성 감기에 걸렸어
On Your Mark
우리들이 그래도 그만두지 않는 건
꿈의 경사면을 올려다보며, 언젠가는
갈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들은 마음의 작은 공터에서
서로 털어버린 말들의 소나기 Oh
답을 내지않는 것 바로 그것이 답인것처럼
바늘이 사라진 시계로 시간을 보는 것처럼
너와 나 모든 것을
인정해 버리기에는 아직 너무 어려
On Your Mark 언제나 달려나가면
유행성 감기에 걸렸어
On Your Mark
우리들이 이것을 없애지 않는 이유는
꿈의 심장을 겨냥하고서 우리들이,
서로가 격려해주기 위하여
그래서 우리들은
On Your Mark 언제나 달려나가면
유행성 감기에 걸렸어
On Your Mark
우리들이 그래도 그만두지 않는 건
꿈의 경사면을 올려다보며 언젠가는
갈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들은
On Your Mark 언제나 달려나가면
유행성 감기에 걸렸어
On Your Mark
우리들이 이것을 없애지 않는 이유는
꿈의 심장을 겨냥하고서 (우리들이)
서로가 격려해주기 위하여
On your Mark
그래서 우리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