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붙잡기엔 모든 것이 늦었어."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면 대부분은 비판하는 쪽의 입장이겠지만 정작 그 자신들도 외모지상주의의 그늘 아래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굴, 피부, 머리스타일, 옷 스타일. 그 중에서도 수 년 전 TV 프로그램에서의 '루져' 발언 이후 대한민국에서 남자의 키가 갖는 의미는 다양해졌다. 신발 속에 숨어 키를 높여주는 깔창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키 작은 자신을 희화화하는 개그맨이 인기를 끌기도 했으며 소위 말하는 '멋진 남자', '매력있는 남자'의 조건에는 항상 키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키만 있다고 다 갖춘 건 아니다.
내 고등학교 친구 태경이는 키가 컸다. 좀 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키'만' 컸다. 성인이 된 후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학생 시절 태경이의 얼굴을 보면 항상 여드름이 적어도 두세개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자신감있는 성격은 아니었고, 우리같이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활발한 편이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말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른이 되기 전까지 연애 경험도 전무했다. 그랬던 태경이였는데, 세월이 흘러 만난 태경이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군대를 일찍 다녀온 태경이는 22살 때부터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달 이상 솔로로 지냈던 적이 없었다. 물론 한 여자를 8년 만난 것은 아니고 2년 가량 사귄 여자친구가 한명 있었던 것 외에는 다 금방 만나고 헤어졌다고 했다.
태경이는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합정역 인근의 조용하고 넓은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아마 그 깔끔하고 좋은 집이 여자들을 끌어당기는 요소 중 하나였으리라 생각한다. 집을 꾸미는 것 외에 운동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키만 컸지 빼빼 말랐던 어린 시절의 태경이는 간데없고 과하게 건강해 보이는 태경이가 내 앞에서 소주잔에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코 앞에 살면서도 몰랐다는 게 말이 돼?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러니까. 야 그래도 우리는 그 '언제 한 번' 술이나 한잔 하자고 인사 주고받는 애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거 아니냐."
"야 많이 컸네 박태경이. 다른 사람들이랑 우리를 비교도 하고."
그래. 태경이는 실제로 많이 컸다. 특히 몸이. 직업은 퍼스널 트레이너. 지금 살고 있는 합정동에서 작게 개인 PT 센터를 열었다가 잘 돼서 규모를 지금처럼 키웠다고 했다. 태경이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내 30년간의 인생을 걸고 결코 미남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은 아니다. 그렇다고 활발하거나 잘 놀 것 같은, 재미있어 보이는 외모도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재미없어 보이는 인상에 가까웠지만 그때 우리가 태경이와 함께 놀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막상 놀아보니 재미있어서.
친해지기 전엔 태경이가 그렇게 웃긴지 몰랐다. 학기 초 밥을 같이 먹고, 매점을 같이 가고, 축구를 함께 하며 나름 친밀감 같은 게 생기자 태경이는 우리 앞에서 말문을 트기 시작했고 무심한 척 던지는 재치있는 말들에 우리는 항상 즐거웠다.
운동을 하면서 성격이 활달하게 바뀐 덕에 태경이는 재미없게 생긴 얼굴로 우리들한테 그랬던 것처럼 처음 보는 회원들도 빵빵 터트렸고 재미있게, 쉽게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퍼져서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대화 화제가 풍부했고 표현도 리액션도 재미있게 잘 했지만 진지할 때는 진지해야 하는 것을 잘 구분하는 친구였고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들어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어쩌면 태경이의 천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의 어설픈 연애담에도 감탄하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던 태경이는 위에서 설명한 것을 바탕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제 여자가 없어서 아쉬웠던 적이 없는 능력자가 되었다.
아쉬움이 없다는 것은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세상의 수많은 매력적인 여자들은 대개 자신에게 노골적이든 아니든 매달리는 남자들에게 질려 있으므로 태경이의 이런 점은 그간 태경이가 거쳐 갔던 매력적인 여자들에게 높은 플러스 점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어떤 이야기를 건네도 재치있게 받아치는 태경이에게 흥미를 느꼈다. 키와 몸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고 잘생김과는 거리가 있는 얼굴이라 딱히 눈여겨보지 않았던 태경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자들은 알고보니 이런저런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된 후 가지고 있던 흥미가 호감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태경이는 단 한번도 그런 그녀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식사를 하면서, 드라이브를 하면서, 침대에서 살을 맞대고 누워서 태경이는 그녀들과 다정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길게 가지 못했다. 그 관계들은 하나같이 채 100일을 가지 못했고 태경이는 어느 순간 평온한 말투와 약간의 슬픔이 묻은 미소를 가지고 그녀들의 등 뒤로 다가가 그녀들이 어찌 할 틈도 없이 서로의 관계를 절단하는 칼을 꽂았다. 의외로 그 과정은 별다른 분란 없이 마무리되었다. 마치 비누거품이 흐르는 물에 씻겨나간 후 비누거품의 흔적이 남지 않는 것처럼 깔끔하게. 빠르게. 또한 자연스럽게.
부유한 집안과 안정된 수입, 탄탄한 몸매와 타고난 재미있는 입담, 성격이 태경이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태경이는 단 한번도 이별에 아쉬워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왜 그런지 물으니 태경이는 어떤 여자들을 만나도 금방 질려버린다고 했다. 몇 번이고 재방송되는 케이블 채널의 예능처럼 사람만 달라지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것들을 함께하게 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렇게 태경이는 많은 여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질리게 만들지 않을 여자를 찾고 있었다.
글쎄. 살면서 뭔가를 질리지 않고 평생 한결같은 마음으로 좋아할 수 있을까?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거나 A라는 장점이 있어서 A가 좋았는데 지내면서 알아가다 보니 B라는 장점도 있고, 그 B를 쭉 지켜보다 보니 나중엔 C라는 매력 포인트도 발견하고... 그런 식으로 다들 자기 반쪽인 한 사람을 찾아 오래오래 만나는 게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태경이에게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의 내가 여자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 ...물론 지금도 없다. - 별로 설득력이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태경이는 내가 예시로 든 것을 그대로 이용해 B나 C라는 것을 찾기 이전에 A부터가 너무 빨리 질려버린다고 나와의 연애관이 완전히 다름을 이야기했다.
그 때는 태경이의 말도 옳다고 생각했다.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의 삶의 방식이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랬던 태경이는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찾아온 사랑의 아픔으로 힘들어하게 되었다. A B C 같은걸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상대는 태경이가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일곱 살 연하의 여대생이었다. 관리하던 여자 회원들을 돌 보듯 하던 태경이였지만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쉬해서 결국 사랑을 이뤄낸 멋진 여자였다. 그런 멋진 모습과 함께 요즘 아이들답지 않은, 이것저것 따질 줄 모르는 순수한 면도 가지고 있어서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은 능숙한 여자들만 만나던 태경이에게 신선한 충격임과 동시에 좋은 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둘은 매일같이 붙어다녔고 집 근처인 합정, 상수, 연남동부터 서울 및 교외의 분위기 좋은 바나 카페를 함께 간 둘의 사진을 하루가 멀다하고 SNS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둘이었기에 만난 지 한달 반만에 헤어졌다고 연락이 와서 조금 놀랐었다. 그 때는 다른 여자들을 떠나 보낼 때와 다름없는 무심한 말투였어서 나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3개월 정도 지난 후 만난 술자리에서 태경이는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했다.
"보통은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꼭 함께하고 싶다, 라는 결심을 많이 하잖아?"
"그렇지."
"그럼 너, 반대로 누군가를 생각하고 좋아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적 있어? 어디서 뭐 하는지도 다 알고, 연락처도 알아."
그런 경험은 없다고, 그 전에 여자친구가 있는지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대답했다. 삐진 나를 달래주기 위해 태경이는 소개팅을 약속했고 그제서야 나의 마음은 아이스크림 녹듯 사르르 풀렸다.
"아무튼... 그런 사람이 있고, 그래서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거야?"
"응.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 자격이 없어."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면 새로운 뉴페이스?"
"아마 너도 얼마 전에 봤을 거야."
"어? 설마 지민 씨?"
"...응."
"야 사랑 같은 소리 하고있네. 너는 양심도 없냐. 그날 그렇게 울고불고 하던 지민 씨 억지로 택시 태워서 보낸 게 누군데. 그러고도 계속 전화 온다고 너 아예 스팸등록까지 했다며. 그래놓고 지금 뭐? 좋아하지 않으려고 하는 중이라고? 아주 좋은 데 살고 좋은 거 먹으면서 사니까 니가 아주 드라마 주인공같지?"
솔직히 나도 말이 심했다. 이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었는데. 내가 심했다고 생각하고 사과를 하기 위해 태경이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의외로 풀죽은 대답이 돌아와서 놀랐다.
"그런 건 아니야. 그냥... "
"아니 자기가 그렇게 차 놓고 뭔데 갑자기. 지민 씨가 착했긴 했지만 솔직히 너가 만났던 여자들이랑 비교하면 예쁘거나 몸매가 좋은 것도, 집안이 빵빵하거나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지 않나? 너 그런거 중요하게 생각했었잖아. 뭐 때문에 이렇게 난리야."
"그동안 내가 당연히 신경써야 하는 중요한 걸 신경쓰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어."
"...?"
"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져서 장례식장 다녀왔거든. 진짜 오랜만에 펑펑 울었던 것 같아. 할머니랑 같이 했던 기억들이 하나 하나 생각이 나는데 그 기억들이랑 현재가 합쳐지면서, 이제 더 이상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프게 와닿아서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거든."
"아... 미안 몰랐어. 그런 일이 있었던 건."
"아냐. 별로 좋은 일도 아니라 여기저기 알리지도 않았거든. 아무튼 그렇게 한참 울다가 진이 다 빠져서 장례식장 구석에 앉아서 쉬고 있었어. 그러다 문득 지금 내 모습이랑 그때 후들거리던 다리로 울면서 택시를 타던 지민이 모습이 겹쳐 보이는거야."
"..."
"한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지민이는 정말 매 순간 최선을 다 해서 나를 좋아해줬던 것 같아. '매 순간 최선을 다 해서'라는 부분이 지민이와 다른 여자들의 차이점이고, 그게 내가 지금 힘들어하는 이유이기도 해."
나는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태경이를 바라보았다. 이런 경우에는 별다른 리액션 없이 조용히 상대방을 바라봐주는 편이 더 낫다.
"나중엔 그러지 않았지만 초반에는 데이트 할 때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는게 느껴졌어. 마주보고 이야기할 땐 내 얘기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내 눈을 바라봤고 차를 타고 갈 때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항상 날 바라보고 있었고."
"말하자면, 온 몸으로 진심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거네."
"응. 맞아. 지민이보다 예쁘거나 몸매가 좋거나 다른 조건들이 훌륭한 여자들은 많았어. 하지만 진심으로 내 생각을 해 주는 것에 대해서는 지민이를 따라올 사람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있을 지 모르겠어. 그걸 지금에서야 알았고."
"..."
"내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지민이가 느꼈던 감정은, 아마 내가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을 때의 감정하고 어느 정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슬픔의 정도를 내가 감히 짐작할 순 없겠지만."
"동정하는 거랑 사랑하는 거랑 착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동정은 아냐. 그냥...이제 난 나를 질리지 않게 만드는 여자를 찾아야 하는게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여자를 찾아야 한다는 걸 지민이 덕분에 알았는데, 그 간단하지만 중요한 걸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낸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그러다 보니 좋았던 날들이 자꾸 생각이 나. 내 차에도, 센터에도, 내 방에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지민이는 최선을 다해서 나와 하나가 되려고 했어. 그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
"지금이라도 연락해보면 어떨까? 시간이 좀 지났긴 했지만 지민 씨 너 많이 좋아했잖아. 아직 못 잊고 있다면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럴까...? 뭐라고 말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어 사실."
어렸을 때와 정반대로 우리 중 여자 경험에 관해서는 가장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태경이였지만 이렇게 보면 경험치가 많이 쌓였다고 해서 꼭 진정한 사랑을 빨리 알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안절부절 못하며 핸드폰을 만지는 태경이를 바라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태경이는 끝내 연락을 하지 못 했고 나는 마음을 추스린 후에 연락을 해 보라는 말 외에는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태경이가 늦었다. 지민 씨는 태경이와 헤어진 후 거의 한 달 정도를 혼이 나간 사람처럼 살았다. 그런 지민 씨를 짝사랑하던 학교 후배가 있었는데, 그 후배는 그렇게 힘들어하는 지민 씨를 보고 차마 견딜 수 없어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지민 씨는 처음에는 아직 마음 정리도 되지 않았고, 후배의 고백도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거절했지만 몇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다가오는 후배에게서 태경이에게 다가가던 예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결국 후배의 고백을 받아들여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태경이가 지민 씨에게 연락하기 불과 2주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민 씨는 조금 떨리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전화 너머의 태경이에게 이야기했다. 아직도 오빠가 너무 좋고 하루에도 몇 번 씩 많이 생각이 난다고, 사실 통화하는 지금 이 순간도 함께하던 그 순간 같아 꿈만 같다고, 눈 앞에 오빠 모습이 선하다고, 아마 조금만 더 일찍 연락이 왔다면 자신은 그 자리에서 오빠를 보러 달려갔을 거라고,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고, 그 믿음에 보답하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그 믿음을 저버리고 나만 행복하자고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그러니 미안하다고,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했다.
지민 씨에 대해 내가 아는 건 태경이를 통한 것과 지난 번에 인사한다고 한 번 만났던 것 뿐이라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나는 태경이가 전해 주는 그 말을 듣고 참으로 지민 씨 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지민 씨는 '사랑'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세상 다른 어떤 여자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이 틀림없다. 사랑에 빠진 상대에게 매 순간 진심으로 최선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한 기간이 짧고 긴 것을 떠나서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다. 이런 얘기를 지민 씨에게 하면 지민 씨는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기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못 된다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그로부터 다시 몇 개월의 시간이 더 흘렀다. 나는 여전히 여자친구가 없고, 지민 씨 소식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태경이는 그 때 이후로 일에만 집중하고 있고 지민 씨 이후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지는 않다. 아마 말은 안해도 추억과 후회에 짓눌려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의 진실에 닿는 직선 통로란 건 없다. 그래서 나도, 태경이도, 지민 씨도 예외없이 우리 모두는 끝도 없는 이 불친절한 길을 멀리 돌아가고 있다. 딱히 이정표가 있는 게 아니라서 이미 도착한 줄도 모르고 그 자리를 다시 뜨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우연히 곁에 있는 사람과 앉은 그곳이 목적지인 줄도 모르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애초에 방향을 잘못 설정해 끝없이 헤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그 '목적지'는 특정된 한가지 모습이 아니라 여러가지 모습일 수도 있으며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 '목적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솔로생활 1년차인 내가 하는 말이라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일단 지금은 내가 내린 이 답을 가지고 '목적지'를 만들어 나가 볼까 한다.
언젠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날 나의 소중한 사람 - Million Dollar Baby - 을 위해.
yo 앙상해진 나뭇가지 눈 덮인 거리
거친 찬 바람이 불어대니 옷을 여미지
귀 끝까지 세운 옷깃 웅크린 허리쪽이
따스함이 묻어나는 연인들의 손짓
그리움에 발버둥치는 사랑의 날개짓
쓸데없는 감정인 듯 바람에 날리지
후하고 불어대면 입김 속에 그려지는
너무 빨리 사라지는 너의 잔상들이
찻잔보다 따스한 그때만큼 향긋한
기억을 끄집어 내지만 그대는 여기 없다
삐걱대는 간판아래 너무나도 간단하게
숨겨왔던 감정들이 이곳에 머무네
필름을 돌려논 듯 펼쳐지는 회상
내가 몹시 그리워서 울고 있을 상상
그 상상 속의 나는 항상 가진걸 거네
다시 내게 돌아올거라는 도박을 하네
사랑한다는 그 말로
돌아오란 흔한 말로
너를 붙잡기엔 Oh 모든 것이 늦었어
Million Dollar Baby
사랑했다는 그 말로
돌아오란 흔한 말로
너를 붙잡기엔 Oh 모든 것이 늦었어
Million Dollar Baby
잠들기 힘든 새벽 홀로 밤새 뒤척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내 방 구석구석이 다 죄다
너에 대한 흔적이나 기억뿐이라
너는 지금 그 누구와 그 어디서 무엇을 할까
허공 속을 헤매고 다니는 나의 목소리
구멍이 난 가슴 속에 언제나 바람이 불지
나에 대한 관심이 마치 집착처럼 느껴졌지
그땐 그게 왜 그렇게도 싫었었는지
홀로서는 나의 모질었던 것들을 생각하면
땅을 발로차지 얼음처럼 차진 너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한 나를 다그치며 살아가는
나 역시도 이별 속에 힘들긴 마찬가지
24/7 365일 내내
너를 보낸 죄책감에 힘이 드는 내게
여름날의 단비조차 무던히도 가혹해
홀로 잠든 이 시간이 내겐 너무 지독해
사랑한다는 그 말로
돌아오란 흔한 말로
너를 붙잡기엔 Oh 모든 것이 늦었어
Million Dollar Baby
사랑했다는 그 말로
돌아오란 흔한 말로
너를 붙잡기엔 Oh 모든 것이 늦었어
Million Dollar Baby
버려진 많은 기억 속에도
그대를 보낸 이 순간에도
난 이대로 그대로 기다려 이대로
Uh yeah Million Dollar Baby
돌이킬 수 없다고 후회해도 baby don't cry
다신 볼 수 없다고 후회해도 please don't oo
난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 기다려 이대로
yeah Million Dollar Baby
이 모든게 그대로
네온도 사랑도 모두 그대로
신문가게 모퉁이 추억의 가로등 빛 조차도
빠져버린 커플링과 찢긴 사진 마저도
이젠 다시 앉을 수 없는 그대 소파 마저도
밤새 술 퍼 마셔도 너무 슬퍼 울어도
잠시 기뻐 웃어도 허무한 감정은 그대로
정녕 그대도 날 잊지 않느냐는 눈빛으로
제발 돌아와줘 please don't go back
Come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