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우리의 사랑도."
처음 수정이를 봤을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뿅망치 같은 걸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거랑은 좀 다른가? 내가 말 주변이 없어서.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말해보고 싶었는데... 다음부터는 이상한 비유 하지 말고 곧이곧대로 말해야겠다.
어쨌든 그랬다. 나는 첫눈에 반했다. 나는 연애가 엄청 고프지도 않았고 '금사빠'는 더더욱 아니며 술은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수정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일요일 아침이었고 나는 취업을 하고 나서도 주말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아 스터디 모임에 나와 있었으며 수정이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네모난 테이블의 양옆에 누군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던 것 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난다. 내 신경은 온통 맞은편에 앉아 있는 수정이에게 가 있었으니까.
연수를 마치고 정식으로 첫 출근을 한 이후 한 주가 정신없이 흘렀다. 간밤에 입사 동기들과 술을 마셔서 아침에 정말 일어나기 싫었지만 '자기계발!'이라고 속으로 외치며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잭팟이 터졌다. '자기계발'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졌으므로 어쨌든 이득이 아닌가?
여러분 항상 공부하세요.
캐나다에서의 1년은 즐거웠다. 날씨야 둘째치고 거기서 사귄 친구들도 너무 좋았고 솔직히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오면서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돌아오니 좋긴 좋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매일 SNS나 메신저로만 이야기를 나누던 그리운 친구들이 있었고, 치킨이 있었다.
복학은 아직 멀었고, 그래서 돌아와서 한 3개월 정도는 정말 신나게 논 것 같다. 이름 좀 있는 국내 여행지는 거의 다녀왔거나 다녀올 계획이고 못 만났던 친구들과도 만났다. 나 홀로 제주도도 한 번 다녀왔으며 그 결과 모아뒀던 돈이 거의 다 떨어지고 말았다.
열심히 논 나 자신에게 이제 잠시 들어가 있으라고 한 후 평일에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말엔 주로 쉬면서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봤는데, 캐나다에 있을 때는 자막 없이도 잘 보던 것들을 자막과 함께 보는 나를 발견했다. 영어를 안 써 버릇 하니까 영어 실력이 줄어든 것이다. 유학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가 스터디 모임이 하나 있다며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 그 스터디 모임에서 나는 오빠를 만났다.
내가 첫눈에 반한 수정이는 심지어 영어까지 잘 했다. 오늘 처음 봤는데도 불구하고 수정이와 사귀게 된다면 서로의 내적 발전에도 참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뇌내망상을 한동안 하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스터디 시간이 끝났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가서도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앉으려고 기를 써서 앉은 건 아니고 모임 주최하시는 분이 점심 식사 장소까지 안내해 주셨는데 그분의 안내대로 앉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같은 남자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 드리고 싶다.
밥을 먹고 몇몇 사람들은 각자 일이 있어서 가고 딱히 별일이 없던 나와 수정이를 포함한 몇 명은 날도 덥고 해서 근처의 시원한 카페로 향했다.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과묵하더니 지금은 놀라운 예능감을 뽐내는 사람도 있었고, 멋진 영국 발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던 키 큰 남자는 농도 짙은 전라도 사투리로 모두에게 반전미를 선보였다. 수정이는 여전히 예뻤으며 지금도 내 맞은편에 있었다. 주최하시는 분이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명량을 보러 가자고 했고 카페에 있던 인원 중 대부분이 함께 가자고 했다. 그 자리에서 주최하시는 분의 계좌에 다들 영화 티켓 비용을 보내고 영화관에 가서 그분이 나눠 주시는 티켓을 받아 먹을 걸 사들고 자리에 앉았다.
다 지나고 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 그분은 뭔가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이드의 둘만 앉는 자리에 우리를 그렇게 붙여놓을 수가 있었겠는가.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서 뒷편의 좋은 자리는 앉지 못했지만 그렇게 단체로 같이 영화를 보러 가는데, 일요일 저녁 강남의 영화관에서, 가장 핫한 영화 중의 하나가 그렇게 자리가 남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며 내게 앞으로 일어날 기적을 암시하는 복선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그때는 참 신기한 일이라고 수정이와 이야기하며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봤다. 팝콘을 먹으며 살짝살짝 닿는 손도 너무 좋았고 큰 콜라를 하나만 사서 내 자리에 놔뒀기에 수정이가 콜라를 찾는 듯한 눈치를 보이면 바로 콜라를 집어다 주면서 눈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당연하지만 영화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최민식과 명량을 잃었지만 수정이의 전화번호를 얻었다. 영화는 분명 나중에 명절 때 다시 해 줄 것이므로 그때나 가서 봐야겠지만 수정이의 번호를 얻었으므로 어쨌든 이득이 아닌가?
여러분 항상 공부하세요.
날씨 때문에 여러모로 흐트러지기가 쉬운 건 환절기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해당된다. 각자의 건강도, 옷차림도. 그런 면에서 정훈이 오빠의 첫인상은 참 깔끔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가끔 세대 차이가 나는 것 - 이때 오빠의 표정이 참 재미있어서 나는 일부러 몇 번 그런 이야기를 더 했다. - 외에는 얘기가 정말 잘 통했다.
오빠는 스터디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카페에 가서도, 심지어 사람들과 영화를 보러 가서도 내 곁에 있었다. 그게 오빠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나는 싫지 않았다.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내딛은 사회 초년생만이 갖는 신선한 패기와 자신감이 느껴져서 좋았고 핸드폰 사진 속에서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친화력도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영화를 다 보고 사람들과 함께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다. 나는 사당에서 내려서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했고 오빠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는 역에서 헤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내심 좋았는데 막상 둘만 남으니까 조금 떨리긴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까지 올라왔는지 잘 모르겠다. 후덥지근한 정류장에 단둘이 서서 오빠는 내게 부채질을 해 주면서 사실은 자기 여기 안 산다고, 나랑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어서 번호 물어보러 온 거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부채질해주면서 하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니. 그게 싫었다는 건 또 아니고.
행복했다. 일주일 중 회사 일 때문에 찡그린 날들이 5일이라도 수정이와 함께 하는 2일 덕분에 행복했다. 가끔 운 좋게 금요일에 칼퇴근하는 날이면 그 주는 일주일에 3일씩이나 행복했다.
나는 그동안 운동하고, 공부하고, 술 마시고, 혼자 여행 다니고 하느라 하지 못한 다양한 것들을 수정이와 함께 했다. 내가 그동안 이런 것들을 안 하고 산 것들은 어쩌면 수정이를 만나서 다 해보려고, 그래서 몇 배로 더 행복하려고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사계절이 두 번 정도 도는 동안 쭉 함께 했고, 남들처럼 다투기도 하고 남들처럼 화해하기도 하며 더 단단한 관계가 되어갔다. 사람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서 수정이 같은 여자를 만난 건 나에게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일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손에 익어가고 있었고 결혼을 위해 허튼 곳에 돈 쓰지 않고 열심히 적금에, 주택 청약에 돈을 붓고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순조로워서, 나는 앞으로도 이런 나날들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복학을 앞두고 보낸 정훈오빠와의 시간은 너무 달콤했다. 평일에는 오빠도 일하고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금요일에 오빠가 칼퇴근을 해서 같이 저녁을 먹거나 하는 것 외에는 전부 주말에 만났다. 그 말은 곧 우린 가끔 친구들을 만나느라 보지 못하는 것을 빼면 거의 모든 주말을 함께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터넷이나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주말에만 만나는 것이 갈등의 원인이 되어 헤어지는 커플들도 많단다. 하지만 나도 오빠도 '이번에 못 봐도 다음이 있으니까 괜찮다.'라는 마음가짐이라 그런 문제로 다툰 적은 없다. 주변 사람들은 속 편한 성격이라고 했지만 우린 진짜 아무렇지 않은걸...
오빠와 함께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것을 함께 했다. 나이만 먹었지 능숙하게 생겨가지고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르쳤다. 자기가 해본 건 자신감 있게 리드하지만 한 번도 안 해본 건 어쩔 수 없다. 티가 다 난다. 말로는 해 봤다고 하는데 데이트를 네이버에서 배운 게 틀림없다고 느끼는 때가 몇 번 있다. 그럴 때면 동공이 춤을 추는데, 그게 너무 딱 보여서 내가 혼자 웃으면 자기가 준비한 것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줄 알고 자기도 좋다고 웃는다. 귀여워.
그동안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휴학생의 꿀맛 같던 여유를 즐기던 나는 어느새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하고 동시에 계속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번 주에도 수정이를 못 만났다. 다음 주에는 꼭 볼 수 있을 거라고 미안하다고 해서 알겠다고는 했지만 어째 일하는 나보다 더 바쁜 것 같다. 카톡이나 통화는 수시로 하고 있지만 목소리에서, 메시지에서 수정이의 다급함, 여유 없음 같은 게 느껴진다.
취업이라는 건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들에게 있어서 부엌에 가서 물 따라 마시듯 간단히 휙 되는 게 아니다. 수정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어 점수는 걱정할 게 없었고 학점도 그 정도면 중간 이상은 간다고 본다.
자기소개서는 수정이가 따로 하는 스터디가 있다고 하지만 나도 틈틈이 함께 봐주고 있다. 기업 적성검사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시절 인적성검사와 내신만으로 대학을 갔으며 SSAT나 대기업의 각종 인적성검사에서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내가 온갖 꿀팁이란 꿀팁은 다 긁어모아 전수해주고 있다. 인성검사를 하는 대기업도 많다고 하는데, 수정이처럼 얼굴도 인성도 예쁜 지원자를 서류도 면접도 아닌 인성검사에서 떨어트린 기업들은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저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지만 결국은 수정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수정이의 취업에 대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딱 거기까지다.
그 외에는 수정이가 힘들어할 때 남자친구로서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 취업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만큼 즐거운 날들을 이제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함께 만드는 것 정도가 있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더 맛있는 걸 사주고, 가끔씩은 함께 쇼핑을 하기도 했다. 남녀 관계에서 돈 쓰는 것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한테는 그런 건 있을 수가 없다. 가뜩이나 이것저것 여유가 없는 수정이일텐데 하나라도 덜 신경 쓰게 해 주고 싶었다.
'귀하께서 보유하신 우수한 자질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귀하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지긋지긋하다. 처음 불합격 안내 메일을 받았을 때는 함께 쓰여 있는 저런 말들을 보면서 '그래도 내가 우수한 자질을 가지긴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힘을 얻곤 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던 나를 떠올리면 혼자 창피해져서 이불을 걷어 차곤 하지만.
청년 실업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만 가고 그에 따라 기업들도 채용 인원들을 확대한다고 하지만 바늘 하나 들어갈 구멍이 바늘 두 개 들어갈 구멍이 된 것을 가지고 확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취업은 힘들다. 외국 유학을 1년 다녀온 것은 처음에는 장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경험이란 것을 깨달았다.
오빠는 정말 열심히 도와준다. 자고 일어나서 카톡과 메일함을 확인해 보면 자소서를 고쳤다며 파일을 메일로 보내 놨다. 처음엔 그저 이뻐 죽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보낸 시간이 새벽 2시가 넘은 것을 보고 금세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졌다.
졸업은 했지만 취업 스터디 때문에 주중에도 주말에도 시간이 잘 안 난다. 비는 시간에는 거의 항상 오빠를 만나지만 오빠도 내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북 카페 같은 곳에서 데이트도 많이 했고 가끔은 기분 전환을 해 준다며 흔들리는 동공을 가지고 온갖 능숙한 척은 다 하면서 새로운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기분 전환을 시켜주곤 했다.
또, 오빠는 단 한 번도 나로 인해 약속이 미뤄지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뭐 우리가 한두 번 그래왔던 건 아니고 나도 오빠가 약속을 미뤘을 때 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최근 나 때문에 그런 적이 많았고, 그게 길어지고 있는 내 취업 준비 때문이라는 생각에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쁜 생각도 들었다. 짜증난다고. 자기는 지금 좋은 대기업 다닌다고 여유 부리는 거냐고. 나 동정하는 거냐고. 데이트할 때 항상 돈을 내줄 때도 고맙고 미안했지만 가끔은 그렇게 돈 많이 버니까 돈 펑펑 쓰는구나 하는 해서는 안 되는 생각도 하곤 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그렇게 자주는 아니었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열등감을 느끼는 내 자신이 싫었다.
우리는 고민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사이였다. 그것은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도,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도, 진로에 대한 고민도, 좀 부끄럽지만 성에 관련된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절대로 오빠한테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생각을 한두 번도 아니고 꽤 자주 하는 나를 오빠가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
그날은 우리가 사귄 지 700일이 되는 날이었고 내 월급날이자 갑작스레 쏟아져 내린 비에 늘 욕을 먹는 기상청이 평소보다 몇 배는 욕을 먹은 날이기도 했으며 우리가 헤어진 날이기도 했다.
나는 우리 관계가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으며 나는 수정이의 말이라면 내 고집을 얼마든지 꺾곤 했다.
연인 관계에서는 대화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연애 지침서에서, TV 프로그램에서, 명사들의 강연에서 제발 연인끼리, 부부끼리 대화 좀 하라고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실 이 커뮤니케이션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상호작용을 아우르는 말이지만 우리는 그중에서 오직 토크, 즉 대화에만 집중하기 쉬워지고, 그것이 곧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쉬워진다.
지금은 그것을 잘 알지만 그때는 그것을 잘 몰랐다. 그게 우리가 헤어지게 된 이유다. 간단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이유다.
마음만 앞선 내 사랑 때문에 힘들어했을 수정이를 생각하니 수정이를 잡기 위해 하려던 말들은 입 안에서 나오는 것을 멈추었고, 그렇게 수정이를 떠나보냈다.
아마 오빠도 알 것이다. 우리가 서로 싫어서 헤어진 것이 아님을. 그냥 이건... 너무 힘든 지금을 내가 감당할 여유가 없어서 저지른 바보 같은 짓임을. 그리고 오빠는 이것도 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나중에라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음을.
아마 한동안 우리는 서로 많이 아파할 것이다. 많이 보고 싶어 할 것이고 사진도, 카톡 대화 내용도, 통화 기록도, 서로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도 한동안 지우거나 버리지 못할 것이다.
누구 잘못을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오빠는 그랬다. 헤어질 당시에 알게 됐던 것을 사귈 당시에는 몰랐을 뿐이라고. 그걸 알게 되는 건, 알게 만드는 건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니 헤어지면서 헤어짐의 이유를 알려주는 것에 대해 미안할 필요 없다고. 이해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오빠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차마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미안한 표정으로 살짝 웃어 보이며 인사를 한 후 돌아섰다.
지난번 업데이트 후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를 준비하면서 두어 번 정도 글을 엎고 새로 썼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래퍼이자, 현재는 팟캐스트에서 '그것은 알기 싫다'라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계시는 유형... UMC 님의 강연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강연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늘상 하는 꼬릿말을 대체하고자 합니다.
강연의 주제는 이번 에피소드와 단 1cm도 겹치는 부분이 없지만 강연 내용을 읽고 글을 다시 읽어 보시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는지 알게 되실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프리스타일로 하셨던 본인의 강연 일부가 이런 시답잖은 곳에 쓰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셨겠지만 혹여나 문제가 된다면 바로 조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결혼을 한지 이제 9개월째 돼 갑니다.
저는 제 바깥양반을 보고 화를 내지 않습니다.
겁은 가끔 낼지언정요.
무엇을 좋아할지를 계속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가장 하면 안 되는 것은,
이게 좋냐 이게 나쁘냐 하고
물어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아낼 때까지 계속 관찰하는 게 상수입니다.
이건 제 생각이니까,
여러분들 견해하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부부관계는 결코
대화로 이룰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찰을 먼저 하는 게 낫습니다.
감시카메라로 보라는 게 아니에요.
물론 그래도 괜찮습니다.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내 몰래만 설치할 수만 있다면요.
빨래를 언제 하나, 언제 귀찮아서...
정말 귀찮을 땐 며칠 정도의 텀을 두나,
집안일은 무엇을 더 좋아하고 무엇을 더 싫어하나.
옷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나.
물어서 알면 관심 없는 거죠.
진짭니다.
애들이 부모를 싫어하는 포인트도 그겁니다.
이 정돈 알아야지 뭘 물어요? 심지어 같이 살면서!
흩어진다 우리가 사랑한 날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우리의 사랑도
추억을 남겨둔 채 돌아선 널 잊지 못해
매일을 이렇게 나 추억에 살고 있어
정말 많이 생각해봤어 그동안
내가 너 없이 살아질까봐 겁이 나
널 너무 사랑하지만 지금은 너의 사랑
버틸 자신 없는 나를 이해해줘
나의 맘조차 맘대로 되지가 않아 바보같이
깊이 새겨진 너란 기억이 자꾸 날 흔들어
하루하루가 공허해 견딜 수 없는 그 시간들
사이로 우리가 흩어진다...
되새긴다 우리가 사랑한 날들
아픔이 남았지만 널 만나 행복했어
마음만 앞선 사랑 바보 같은 내 맘이
너와의 소중한 그 사랑을 망쳤어
나의 맘조차 맘대로 되지가 않아 바보같이
깊이 새겨진 너란 기억이 자꾸 날 흔들어
하루하루가 공허해 견딜 수 없는 그 시간들
사이로 우리가 흩어진다
나의 맘조차 맘대로 되지가 않아 바보같이
깊이 새겨진 너란 기억이 자꾸 날 흔들어
하루하루가 공허해 견딜 수 없는 그 시간들
사이로 우리가 흩어진다
보고싶어 보고싶어 보고싶어 정말
보고싶어 보고싶어 보고싶어 정말 많이
행복했어
고마웠어
사랑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