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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Nov 20. 2016

Going Home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려 주기를..."

[오전 5시, 경기도 안양시]


  원래라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지방 출장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반쯤 떠진 눈과 함께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고쳐야 할 우리 회사의 장비가 4군데 정도 있고, 만나야 할 고객도 3명 정도 된다. 그 중 한 명은 꽤 중요한 고객으로써 사장님이 준비 잘 해 가라고 몇 번이나 강조를 했었다. 아니, 그런 거 모르겠고 다 떠나서 가장 무서운 것은, 오늘이 겨우 화요일이라는 점이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후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집을 나섰다.



[오전 7시, 경기도 안양시]


  회사에 들렀다가 출발해야 해서 집에서 조금 일찍 나왔었다. 회사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오니 7시 정도가 되었다. 회사 근처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전주까지 가는 버스 티켓을 끊고 정류장 한 켠의 의자에 앉았다. 버스가 오기까지는 대략 10여 분 정도가 남았다. 지방 출장을 다니는데 왜 회사 차가 없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같은 마음이라는 대답을 하겠다. 회사 차량에 대한 질문을 하자 사장님은 회사 차는 따로 없다며, 만약 내가 차를 살 계획이 있다면 '일부 비용'을 지원해 줄 용의는 있다고 했다. 당연하지만 차는 사지 않는 쪽으로 했고, 그 결과가 이거다. 회사 법인 명의로 산 벤츠를 사장님이 타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보다 조금 지난 후의 이야기.


[오전 8시 30분, 고속도로 어딘가]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잠이 들었었나 보다. 이어폰을 통해 노랫소리가 아닌 전화벨 소리가 들려와서 잠에서 깼다. 제대로 잘 가고 있느냐는 사장님의 전화였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지만 피곤함이 묻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사장님은 가서 실수하지 말고 잘 하고 오라는 형식적인 이야기를 마치 든든한 어드바이스를 주는 듯이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노파심에 전화를 건 게 틀림없다. 출발할 때 출발한다고 문자로 보고를 드리는데도 늘 이런 식이다.  한 번 깬 잠은 쉽사리 다시 오지 않았고 결국 나는 목적지인 전주에 도착하는 10시 15분까지 뜬눈으로 버스 안에 앉아 있었다.



[오전 10시 20분,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


  12월의 공기는 남부 지방도 예외 없이 차갑다. 벗어 두었던 코트를 정장 위에 걸쳐 입고 버스에서 내려서 미리 맞춰 놓은 오늘의 동선을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되새겨 본 후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상이 있다고 해서 점검해야 할 장비가 4개, 만나야 할 분이 3분, 총 7통의 전화를 걸었는데 두 분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고객분은 오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이번 주 되는 날 아무 때나 다시 보자고, 오후에 다시 연락 달라고 이야기한 후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이번 주에 전주를 한 번 더 와야 한다, 이 말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오후 시간이 비었으므로 한옥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지만 전주 출장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점, 그리고 그곳에 가면 커플들이 가득하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렇게 좋은 것만도 아니다. 깊은 한숨을 쉬며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장비 수리를 의뢰하셨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셨던 두 분과 통화가 되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격려하며 짧게나마 눈을 붙였다.


[오후 1시, 전주 어딘가]


  점검해야 할 장비가 4개라고는 하지만 혼자 하면 또 금방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일을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아니 잠깐만요. 멈춰 보세요. 그러니까 대리님. 이게 이상하다니까요?"


"네?"


"지난번에 대리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제가 이렇게 해 봤거든요. 근데 장비가 동작을 안 해요."


"아... 박사님 그거 왼쪽으로 돌리는 게 아니고 오른쪽으로 돌리는 겁니다."


"아... 아하하 그랬었나요? 이거 원, 이 나이쯤 되고 보니 가물가물 하네요."


  그래서 유치원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간단하게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서 드렸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기 때문에 그냥 '하하 그럴 수도 있죠.'하고 웃고 넘겼다.


  아무튼, 이런 게 문제다. 나 혼자서 하면 금방 끝나는데 굳이 옆에 와서 확인을 하시고, 참견을 하시고, 때로는 나를 가르치려고 하신다. 물론 김 박사님 본인이 구매하신 장비고 나보다 나이도 많은 분들이니까 이해는 하는데... 그걸 굳이 지금 하셔야 하냐고. 할 일은 산더미인데 아직 장비를 하나밖에 점검하지 못했다. 아침에 약속을 취소하신 그 박사님이 처음에는 미웠는데 이제는 감사하기까지 하다.


  한참 옆에서 쫑알쫑알 훈수를 두시던 김 박사님은 식사 시간이 지나버렸다며 허허 웃으시고는 연구실 쪽으로 사라지셨고, 나는 박사님이 사라진 지 5분 만에 작업을 완료했다. 그 때 시간이 한시 40분이었다. 식당에 가 보니 이미 다 치우고 있어서 나는 근처의 매점에서 빵과 우유로 점심을 때웠다. 세번째 장소에서 점검을 마치고 마지막 장소로 가는 길에 김 박사님의 차가 후문에서 연구동 쪽으로 가는 것을 목격했다. 차에는 실험실 대학원생들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타 있었는데, 아무래도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하고 온 것 같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차가 지나간 뒤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입 속에 낀 빵조각의 달콤함만이 나에게 힘내라고 말하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오후 3시, 연구동]


  기적적으로 장비 점검을 제 시간에 다 마치고 고객 미팅을 위해 연구동으로 들어왔다. 구두에 묻은 진흙들을 나름 턴다고 털었는데 그래도 좀 남아 있었나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서 뒤돌아보니 경비원 아저씨가 못마땅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고, 로비에서부터 엘리베이터까지 깨끗한 대리석 바닥의 군데군데 흙이 떨어져 있었다.


"아니 발을 잘 털고 들어오셔야죠."


"아... 장비 점검하고 바로 박사님하고 약속이 있어서 급히 들어오느라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여기 자주 오는 분이시죠? 얼굴이 낯이 익은데..."


"네 자주 옵니다."


"거 아실 만한 분이 참..."


"...죄송합니다."


"됐어요. 다음부터는 조심 좀 해주시고."


"...네."


  뭐 별 것 아닌 걸로도 트집 잡고 생색내는 경비원 아저씨지만 - 영업사원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자자하다 -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것들이 익숙해지는 건 아니다. 다행히도 이후에 만난 유쾌한 박사님들 덕분에 이 일은 금방 잊어버렸다.


[오후 5시 10분, 후문 버스정류장]


  한 박사님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다음 번에 만나기로 한 박사님이 연구실로 놀러 오시는 바람에 두 분과 한꺼번에 이야기를 했다. 두 분이 동기이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시는 성격이다보니 어느 새 시간이 늦어 대화를 마무리짓기로 했다. 계약을 따 낸 건 좋았지만 밀려드는 피로감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버스에 앉아서 조금 쉬고 싶었는데 후문으로 향하는 긴 도로를 걷고 있던 나는 눈 앞을 무심하게 지나가는 버스를 발견했다. 뛰기엔 이미 늦었다는 걸 알기에 굳이 뛰지는 않았지만 유일하게 지나다니는 한 대의 버스의 배차 간격이 20분이므로 나는 바람막이도 마땅치 않은 버스 정류장에서 20분동안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오후 5시 40분, 전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 안]


"예 사장님 전화하셨습니까."


"어. 혹시 지금 올라오는 버스 탔어?"


"아직 안 탔습니다. 가고 있습니다."


"저기 그러면 지금 이 박사님한테 연락온 게 있거든, 내가 메시지를 전달해서 보내줄 테니까 그것까지 좀 처리하고 올라와. 박사님은 아마 퇴근하셨을 거고 내용만 전달받은 후 가서 작업하고 와."


"아... 급 일인가요."


"그런 건 아닌데 이 박사님이 전화를 한다는 걸 깜빡 하셨나봐. 그동안 우리 꺼 많이 사주시기도 했고 아무튼 그 분도 중요한 분인거 알잖아. 좀 해드리고 올라와."


"사장님 그런데 이 버스 놓치면 이게 안양 가는 막차입니다."


"그 서울 다른 곳 가는 버스도 많이 있잖아. 뭐하면 기차를 타도 되고!"


"... 네 알겠습니다."


  아니, 알지 못하겠어. 알기 싫어. 그러면서 내일 정시 출근 시킬거잖아. 출장 보고서도 재촉할거잖아. 이런다고 연봉 크게 올려주는 것도 아니잖아. 뭣보다 퇴근 시간에 대한 개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시간에 전화해서 뭘 시키면 안 되는 거잖아. 사장님 답 없는 건 아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박사님까지... 힘이 빠진다.


  시외버스터미널을 4정거장 앞두고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넌 후 같은 번호의 버스를 다시 탔다. 환승따위 적용되지 않고 나는 왔던 만큼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입구의 경비원 아저씨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아까와는 달리 대부분이 퇴근해 고요해진 도로를 혼자 걸어 올라갔다. 어차피 밤에는 아무도 안 다니는데... 가로등 불빛이 조금만 더 어두웠으면 하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답답한 건, 이 박사님이 요구한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얼마 전에 부품 하나만 갈아 끼우면 되고, 쉬운 일임을 설명해 드리자 '그럼 우리 학생들 시켜서 하게 부품 몇 개만 줘 봐요.'라고 하셔서 심지어 챙겨 드리기까지 했다. 그 부품들 다 어디 갔냐고. 어디 홀라당 까먹었냐고. 이런 기억력으로 어떻게 박사까지 달았냐고.


  사실 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기억해야 할 만한 존재는 아니라는 거. 내가 100을 설명해도 3 정도만 기억한다는 거. 간혹 10 정도를 기억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안아드리고 싶을 정도라는 거. 그래도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오후 8시 15분, 전주 시외버스터미널]


  다행히 남부터미널 가는 버스가 있어서 그걸 타기로 했다. 2시간 반 정도 걸리니 도착하면 열한시, 집으로 바로 가도 열두시가 넘을 거다. 출장 보고서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서 오늘의 일을 보고서로 정리하려고 하던 그 때, 갑자기 앞에 있던 의자가 뒤로 확 젖혀졌다. 노트북에서 '우득'하는 소리가 난 것 같은데 다행히 고장난 것 같진 않았다.


  앞자리의 아저씨가 앉자마자 의자를 뒤로 확 젖혀 눕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사실 노트북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앞에서 아저씨가 의자를 젖히든 춤을 추든 아무 상관 없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보고서를 쓰고 있었고 아저씨의 부주의한 행동 때문에 하마터면 노트북을 떨어트릴 뻔 했다. 화가 난 나는 아저씨를 불러 따졌다. 역시나 예상대로 적반하장의 리액션이 돌아왔다.


"아니 어린 놈이 지금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아저씨가 휙 눕는 바람에 제 노트북 망가졌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래서? 고장 났어? 어? 고장 났냐고. 내 의자 내가 젖히겠다는데 니가 뭔데?"


"안에 회사 자료랑 영업 자료들 다 들어 있는데, 고장나서 업무 제대로 못 했으면 아저씨가 책임질거에요?"


"그게 왜 내 책임이야? 중요한 자료는 당연히 다른 데에 저장해놔야되는거 아냐? 그런 기본도 없는 놈이 무슨...쯧쯧..."


"그래요? 그럼 알겠습니다."


  마침 아저씨의 앞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매표소로 가서 앞자리 두개의 표를 샀고 다시 돌아왔다.


"뭐야? 꺼진 거 아니였어?"


  나는 아저씨의 말을 무시하고 아저씨 앞자리에 앉아 의자를 뒤로 휙 젖힌 후 내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리를 뻗어 아저씨의 의자에 갖다 댄 후 계속 떨기 시작했다.


"너 지금 뭐 하는거야?"


"아 죄송해요. 아저씨가 너무 키가 작으셔서 앞에 아무도 없는줄 알았네요. 근데 이게 제 다리라서요. 제 다리 제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아저씨가 뭔데요?"


"뭐? 이런..."


"아 원래는 제가 안 그랬는데 방금 전에 어떤 분께 배운 거라서요. 생각해보니 그 분 말이 맞아서,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요."


  그러자 아저씨는 내가 산 앞의 두자리로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나는 재빨리 그 앞을 막아섰고 그 때문에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저씨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운동을 빼먹지 않고 해 온 과거의 나에게 감사를 표한다.


"아저씨 지금 어디 가시게요?"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앞자리 가서 앉는다. 이놈아."


"죄송한데 그 두 자리 제가 아까 가서 사왔거든요. 제 의자 제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아저씨가 뭔데요?"


  조용한 버스 안에서 조금씩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얼굴이 새빨개진 아저씨는 잠시 식식거리다가 본인의 가방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면서 나에게 쌍욕을 퍼붓는 것을 잊지 않으셨고 나는 아저씨께 배운 대로 그대로 돌려 드렸다.


"아이고... 젊은 총각이 강단이 있네. 사실 저 양반 서울 올라갈 때마다 보는데, 몇 번 사람들하고 다투기도 하고 그랬거든. 여태껏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시원하고 고소했어."


  건너편 자리의 아주머니가 말을 붙이며 내 편을 들어 주었다. 이내 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평화롭게 출장 보고서를 완성했으며 사장님에게 완료보고 문자를 보낸 후 도착지까지 눈을 붙였다. 돈이 조금 깨진 건 그렇지만, 술 한 번 안 먹으면 되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덕에 속이 시원해서 그런지 잠이 아주 잘 왔다.



[오후 11시 25분, 사당역]


  잠깐 눈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어느새 서울에 도착했다. 사당에서 집 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서 터미널에서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사당으로 향했다. 버스에 탔다고 다가 아니고 약 40~50분 정도 더 가야 하지만 한 번에 갈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직 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술이 좀 되신 분들이 버스에 많이 탔다. 나는 이제 퇴근하고 있는 중인데 하루의 스트레스를 술로 모두 날려버리고 귀가길에 오른 그들이 부러웠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노트북 가방이 괜히 무겁게 느겨졌다. 그래도 조금만 더 있으면 새벽 5시부터 시작되었던 나의 기나긴 하루가 끝난다.


  돌이켜보면 오늘 하루는 유난히 길었다. 출장 한 두번 가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꼬이는 날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오늘은 좀 역대급이었던 것 같다. 이런 날들이 쌓이고 쌓이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까? 아직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그 날이 왔을 때 이런 경험들이 도움이 될까?


  사실 가까운 미래는 아닐 것이고 당장 나는 내일의 일도 알 수가 없으니까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잘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아 모르겠다 일단 좀 자자.


[오전 00시 10분, 경기도 안양시]


  하마터면 못 내리고 종점까지 갈 뻔했다. 그동안 갈고 닦아온 귀소본능이 빛을 발한 덕분에 내리기 2정거장 전에서 귀신같이 눈을 뜬 나는 무사히 제 때 내려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잠들기 전에 했던 생각들이 다시금 내 머리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실 또래 애들에 비해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주머니 사정도 썩 좋지 못하다. 부모님 용돈커녕 한 달 벌어 한 달 살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다음 주에 소개팅을 하긴 하는데 그렇게 큰 기대는 안 한다. 소개팅 자체의 불확실성도 그렇고 아직 헤어진 지 2개월밖에 안 돼서 별로 생각이 없다. 나 곧 서른인데 이대로라면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남들 하는 연애, 결혼 나는 왜 이렇게 높은 벽처럼 느껴질까.  이대로라면 난...


"현승이 왔니?"


"어...엄마. 왜 아직 안 잤어요?"


"그냥. 잠이 안 오더라고."


"오~ 우리 아들 왔나?"


"뭐야 아빠는 왜 또 안 잤어요?"


"엄마가 잠이 안 온다는데 나만 쏙 들어가서 잘 수가 있나. TV보고 있었지."


  틀어져 있는 TV 속에서는 예능 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사실 두 분 다 저런 버라이어티 예능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아마 지금 하는 프로그램이 뭔지도 잘 모를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 한 켠에 난 베개자국을 잠시 바라본 후 두 분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얼른 자요."


"그러네. 이제 슬슬 자야겠다. 씻고 얼른 푹 쉬어."


  잠이 안 온다던 두 분은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는 10분 남짓한 시간 사이에 코까지 골며 잠드셨다. 닫혀진 안방 문 안에서 쌍으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웃기면서도 죄송했다.


  그래. 오늘 하루가 어땠든 나는 잘 이겨냈고 지금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다. 안 졸린 척 하며 나를 기다려주는, 나를 믿고 있는 우리 가족이 있다. 밖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든 그것들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했기에 나는 지금 이렇게 돌아왔다.


  내일은 부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를. 가깝진 않겠지만 멀지 않은 언젠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잠이 든다.




지금은 차가 없지만, 가족 외식할 때는 항상 내가 운전을 해.

언젠가 차를 사는 날이 오면 아직 만나지 않은 너와 함께

멋진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려고.


함께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공원을 가고,

사진을 찍고, 별 것 아닌 것에도 크게 웃고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힘들어해주고 같이 욕도 해 주고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우리가 서로에게 충분한 믿음이 생기면

그런 날이 오면

가장 먼저 우리 가족을 소개해 줄게.


넌 부담스럽다고 하겠지만, 네가 오기 전까지

내게 힘을 불어넣어주던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꼭 소개해 주고 싶어.




https://youtu.be/yfHfXS1sYuY



[김윤아 - Going Home]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이 세상은 너와 나에게도

잔인하고 두려운 곳이니까

언제라도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려 주기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이뤄지기를 난 기도해 본다.

김윤아 3집 '315360'(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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