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이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그 차가운 너의 눈빛도."
그 해 겨울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졸업 후 어중간하게 친한 동창들과 으레 그렇게 되듯 싸이월드 미니홈피 같은 걸로 형식적인 인사치레나 주고받던 사이었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으로 바뀐 후에도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너와 연락을 자주 주고받게 될 때에도, 몇 번 만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에도 나는 '동창과 친해졌다'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느 날, 함께 술을 마시던 네가 나에게 키스를 하기 전 까지는.
뭔가에 홀린 건지, 나도 몸이 외로웠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나도 사실 너에게 호감이 있었던 건지는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그날 밤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 후로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만났고, 매일같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으며 매일같이 사랑을 나누었다.
오랫동안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힘들어하던 차에 나와 연락이 닿았다고. 일상과 감정을 나누면서 그것이 나에 대한 호감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전 여친에 대한 정리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 망설였다고 한다.
나야 뭐 정리할 전 남친도 이미 흐릿해진 지 오래고 이제 슬슬 연애를 해야 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던 차였으니 이래저래 타이밍은 잘 맞았던 것 같다.
16살 이후 10년간 쌓인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해서 그랬는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마냥 즐거워서 그랬는지 함께 했던 두 달 간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찰나의 꿈처럼 느껴질 만큼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만 만나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두 달 째 되던 날이었다. 한창 행복해야 할 때 이런 말을 들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제일 아팠던 건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나 좀 사올게' 라는 말을 할 때와 다를 것 없는 무심한 말투였다.
이런저런 잘 이해되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유를 내게 말했지만 사실 전 여친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전 여친 정리가 늦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 아마 정리가 잘 되지 않았기에 속으로도 많이 고민했을 것이고 어쩌면 연락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 정도로 눈치 없는 바보는 아니다.
너는 '그럼 잘 지내. 미안했고 고마웠어.' 라는 짧은 말을 내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졸지에 마지막 약속 장소가 되어버린 이곳은 평소에도 다소 시끄럽고 오고 가는 사람 많기로 잘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 혼자 남겨져 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타인에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장소에 있었던 덕분에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손은 계속 떨렸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날 수가 없었지만 필사적으로 눈에 힘을 줘서 눈물을 참았다.
밤이 조금 더 깊어져 북적이던 카페가 조금 조용해진 후에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바보같이 카페 주변을 잠시 둘러본 후 집으로 향했다.
한 걸음에 너의 미소, 한 걸음에 너와 했던 약속들, 한 걸음에 따뜻했던 너의 체온.
다시 한 걸음에 너의 미소, 한 걸음에 너와 했던 약속들, 한 걸음에 따뜻했던 너의 체온.
잠깐 쉬고 나서 다시 한 걸음에 너의 미소, 한 걸음에 너와 했던 약속들, 한 걸음에 따뜻했던 너의 체온.
심호흡을 한 후 한 걸음에 너의 미소, 한 걸음에 너와 했던 약속들, 한 걸음에 따뜻했던 너의 체온.
다시 용기를 내서 한 걸음에 너의 미소, 한 걸음에 너와 했던 약속들, 한 걸음에 따뜻했던 너의 체온.
또다시 한 걸음에 너의 미소, 한 걸음에 너와 했던 약속들, 한 걸음에 따뜻했던 너의 체온.
우리가 길게 만난 건 아니었으니까 나도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할 말 하고 돌아선 너처럼 간단하게 지난 두 달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걸음에 하나씩 떨쳐내다보면 집에 도착할 때쯤엔 쉽게 다 내려놓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몇 걸음을 걸어도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다.
어리고 어리석었던 그때의 나 때문에 상처입었을 네가
이제는 모두 다 잊고 행복하게,
이런 글을 볼 일도 볼 필요도 없이 잘 살고 있기를 바라며.
어젯밤 네가 나에게 말하던
그런 이유가 전부였다면
이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꺼야
숨기려 해도 느낄 수 있잖아
이미 사라진 너의 웃음을
말을 할수록 변명처럼 느껴지는 걸
우리 이제
그저 이대로 너를 지워야 하나
사랑하지 않아
처음부터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
아이처럼 맑은 너의 미소를 보며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
그런 말이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그 차가운 너의 눈빛도
우리 이제
그저 이대로 너를 지워야 하나
사랑하지 않아
처음부터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
아이처럼 맑은 너의 미소를 보며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
그런 말이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그 차가운 너의 눈빛도
아이처럼 맑은 너의 미소를 보며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
그런 말이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그 차가운 너의 눈빛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