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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Apr 07. 2017

고백

"나 너에게 갈게, 이젠 말할게. 같은 꿈을 꾸고 싶어."

  누군가에게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라고 털어놓게 되면 보통은 '누구야?'라던지 '어떻게 만났어?', 또는 '어디가 좋았어?'라는 질문이 들어올 것이다. 보통은 하나씩 물어보기보다 저것들을 한 번에 물어보곤 하는데, 아마도 핵심 질문은 '어디가 좋았어?'일 것이다.

  널 처음 만났을 때는 크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그냥 예쁜 아이구나, 하고 넘겼었는데 나중에 동갑인 걸 알게 되면서 조금 친해지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 중 겹치는 것이 많았고, 알고 보니 나 못지않게 개그 욕심도 있어서 우리가 이야기한 카톡 창을 되돌아보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각종 웃긴 이미지들과 'ㅋㅋㅋ'의 지분이 상당하다. 우리는 주량도 비슷했고 좋아하는 음식 종류도 비슷했다. 치킨만 보고 치킨 브랜드를 맞추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무심코 보낸 치킨 사진에 'ㅇㅇ치킨?'이라는 답장이 오는 걸 보고 '이런 것까지 닮을 수 있나?'하고 신기해했었지.


  생각해보면 그때 일을 계기로 호감도가 확 올라갔던 것 같다. 아니 이게 뭐라고... 참 웃기기도 하고 별스럽기도 하다는 건 나도 알지만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봐도 그때 이후다. 아마 우리가 정말 잘 되더라도 이걸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린 그마저도 농담의 소재로 승화시키고도 남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넌 겉으로 보기에는 차가워 보이지만, 극지방에서 얼음으로 뒤덮인 이글루 속이 오히려 더 따뜻한 것처럼 정말 상냥하고 정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정 많은 친구들이 으레 그렇듯 손해 보는 타입이기도 하고 본인 입으로 유리멘탈인 것을 인정했다. 그렇게 자신은 손해 보고 상처 입으면서도 불평은 하되 세상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아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많이 힘들어할 것이다. 힘들 때 기대서 쉴 수 있도록, 그래서 예의 그 상냥함과 따뜻함을 잃지 않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야!! 뭔 생각을 하길래 사람이 코앞에 와도 멍하게 있어?"


"어? 뭐야 언제 왔어?"


"어? 뭐야 는 무슨. 좀 전부터 있었거든? 니 뒤에도 서 있다가 나란히 서서 어딜 그렇게 보나 같이 보기도 하고..."


"알았어 알았어. 오늘 이래저래 바빴어서 좀 쉰다고 멍 때리고 있었다."


"뭐야 지금 내 말 끊은 거야? 너 진짜..."


"연어회 연어 초밥 아사히 맥주."


"헤헤 맞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배고프다 빨리 가자!"


  날아오던 주먹이 명치 앞 50cm 정도에서 멈췄다. 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게 이럴 땐 정말 유용한 것 같다. 어쨌든, 오늘은 그동안 약 먹는 것 때문에 금주를 하던 네가 금주를 종료하는 아주 역사적이고 뜻깊은 날이기에 내가 연어를 사기로 했었다. 그동안 술 못 마시는 것도 못 마시는 거지만 몸이 안 좋고, 또 그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 많이 힘들어하던 모습을 보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속상했는데 이런 날이 와서 나도 덩달아 몸이 가볍고 상쾌한 기분이다.

"그래...이거야...이게 그리웠어..."


  연어 초밥 두 개와 맥주 반 잔을 단숨에 이 세상에서 지워버린 뒤 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저렇게 말했다. 그동안 함께 밥을 먹을 때 우리는 최대한 술 생각이 나는 족발집, 곱창집 같은 곳은 가지 않았다. 선택지가 확 줄어들 줄 알았는데 막상 함께 찾아보니 그렇지도 않더라. 구석구석 숨은 맛집들을 용케 잘도 찾아낸다며 우리는 서로에게 감탄하곤 했었다.


  술을 몇 잔 마셔서 그런지 평소에도 예쁜데 훨씬 더 예뻐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슬쩍슬쩍 닿는 네 어깨, 차 온다며 잡아당긴 너의 팔, 고맙다며 웃는 너의 얼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이쯤 되면 슬슬 마음을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술의 힘을 빌려 고백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오늘은 아니다. 내일은 출근해야 하니까 내일도 아니다. 모레는 네가 약속이 있으니 금요일 밤도 토요일도 아니다. 그다음 날인 일요일은 네가 지친 몸을 쉬게 하는 단 하루이므로 방해하지 않을 것이며 월요일은 둘 다 출근해서 정신없는 헬요일을 보내야 하기에 그 날도 아니다. 이런 식이면 과연 이번 생 안에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걱정될 법도 하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의 마음에 확신이 있으므로 괜찮다.


조만간 우리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네 옆에서 걷기만 하고 손을 잡지 못하는 게 싫다.

네가 힘들어할 때 꼭 안아주지 못하고 힘내라고만 말하는 게 싫다.


항상 내게 상냥하지 않아도 좋다.

남들한테는 안 부리는 짜증 나한테는 부려도 좋다.


"이제 괜찮아. 여기서 버스 타고 가면 돼."


"그래. 안 그래도 바로 버스 오네! 저기. 조심히 들어가. 카톡 할게."


"응 데려다줘서 고마워!"

  오늘은 이렇게 널 보내지만, 다음번엔 용기를 내서 너의 손을 꼭 잡을 것이다. 친구들은 니네 그쯤 되면 0.7 사귐 정도 아니냐며 과감하게 질러버리라고 하지만 사람 마음속은 모르는 일이다. 여기에 내 마음을 이렇게 써 내려온 것이 무색할 만큼 단칼에 '우리 좋은 친구로 지내자'라는 말과 함께 거절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을 열기 전까진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미래는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돌이킬 수 없게 될까 봐 무서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 너머에 있는 것이 설령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닐지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지.


그러니까 아무래도 내 다짐의 포인트는 '용기를 내서'가 될 것이다.



우리의 진심이 언젠가는 반드시 전해지길 바라며,

이 글을 전국의 모든 프로 짝사랑러들에게 바칩니다.



https://youtu.be/Jr0OmC_QMoo


[스탠딩 에그 - 고백]


oh ~ oh ~ oh ~ 너의 손이 스칠 때

oh ~ oh ~ oh ~ 내 어깨에 기댈 때


네 곁에서 걷는 게 싫어 한 번씩 너의 손이 스치잖아

그때마다 잡고 싶은데 하지만 난 그러면 안 되잖아

네 옆에 앉는 것도 싫어 내 어깨에 기대 잠들 거잖아

그렇게 네가 깰 때까지 서로 다른 꿈을 꾸는 거잖아


난 그게 잘 안 돼 내 맘 숨긴 채 네 곁에 있어주는 게

이제 난 안돼 네 맘 편하게 친구로 있어주는 게


oh ~ oh ~ oh ~ 너의 손이 스칠 때

oh ~ oh ~ oh ~ 내 어깨에 기댈 때



내 앞에서 우는 게 싫어 널 보는 내 맘이 더 아프니까

모든 걸 해주고 싶지만 그 사람이 내가 될 순 없잖아

아무렇지 않게 이대로 조금 더 곁에 있고 싶지만

더 이상 내 맘을 숨긴 채 너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어


난 그게 잘 안 돼 내 맘 숨긴 채 네 곁에 있어주는 게

이제 난 안돼 네 맘 편하게 친구로 있어주는 게


oh ~ oh ~ oh ~ 너의 손이 스칠 때

oh ~ oh ~ oh ~ 내 어깨에 기댈 때



나 너에게 갈게 이젠 말할게 너의 손을 잡고 싶어

나 너에게 갈게 이젠 말할게 같은 꿈을 꾸고 싶어


난 그게 잘 안 돼 내 맘 숨긴 채 네 곁에 있어주는 게

이제 난 안돼 네 맘 편하게 친구로 있어주는 게


oh ~ oh ~ oh ~ 너의 손이 스칠 때

oh ~ oh ~ oh ~ 내 어깨에 기댈 때

oh ~ oh ~ oh ~ 너의 손이 스칠 때

oh ~ oh ~ oh ~ 내 어깨에 기댈 때

스탠딩 에그(Standing Egg) '고백' (201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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