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아직 네가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네..."
예전엔 그래도 어린 시절의 세세한 것들까지 기억을 하곤 했다. 그래서 동창회 같은 곳을 가면 너 그런 것도 기억하고 있냐며 친구들이 놀라곤 했었는데, 요새는 그러기보다는 주로 다른 친구들과 같이 놀라는 쪽이다. 기억력 원탑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숨은 강자가 몇 명 있더라.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놓치고 사느라 그런지 잊고 사는 것들이 퍽 많아진 느낌이다.
그렇지만 단 하나, 단 한순간.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오직 그때만이 또렷하다. H와 함께 했던 모든 날들은 언제 어디를 갔는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이야기를 했으며 H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까지 다 이야기할 수 있다. 별 의미는 없겠지만.
그런 느낌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데... 그냥 그것뿐이다. 달이 밤하늘에 또렷하게 빛난다고 해서 잡거나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달빛을 바라보거나 손으로 눈을 가리는 것 뿐이겠지. H도 그렇게 되었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SNS 같은 걸로 얼마든지 H의 근황을 확인할 수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뭘 하고 지내는지 알 수 있다지만 따로 그렇게 찾아본 적은 없다. 아마 내가 그러는 걸 원하지 않을 테니까.
오래 연애를 하면서 하는 가장 조용하지만 큰 실수는 다들 알고 있듯이 소중함에 무뎌진다는 것이다. 물론 만나면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하다못해 집앞 편의점에 가서 두 개 사면 한 개 더 주는 커피우유 음료를 같이 사오는 별 거 아닌 시간도 너무나 즐거울만큼 좋았으니까. 그런 너를 두고 나는 배가 불러도 단단히 불렀던 모양이다. 바보같이.
처음 이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여과없이 내 잘못과 과거를 글로 옮겨 적으며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던 것들에 대해 써 보려고 했다. 사연을 받아 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야 곤란해할만한 건 빼고 쓰고 있지만 '이건 내 얘긴데 뭐 어때'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펜을 들고 보니 선뜻 움직여지지가 않아서 나는 지난주 목요일부터 계속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으며 결국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앞자리가 3으로 바뀌면 뭔가 좀 더 대범해지고 과거에도 쿨해질 줄 알았는데.
똑같이 어리석고 똑같이 겁 많은 나인데, 찌글찌글하게도 너의 말버릇과 말투마저 아직 나는 가지고 있는데 너와의 거리만큼은 똑같지 않고 점점 멀어져간다. 또렷했던 네 모습이 조금씩 흐릿해진다. 너무나 그리운 너를 어렴풋이 기억할 수밖에 없게 될까봐 무섭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이 무력하다. '오빠는 조금 더 힘들어야 된다'던 네 말을 나는 몇 년 째 아주 잘 듣고 있다.
사귈 때 이렇게 잘 들을 걸.
다음 이야기 다 짤라먹고
하려던 이야기도 다 짤라먹고
그래서 분량도 다 짤라먹고
기다리시는 분들은 딱히 없겠지만 업데이트도 늦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흘러흘러 찾아 오셔서 제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 날의 바다는 퍽 다정했었지.
아직도 나의 손에 잡힐 듯 그런 듯 해.
부서지는 햇살 속에 너와 내가 있어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을 꾸었지.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너의 목소리도 너의 눈동자도
애틋하던 너의 체온마저도
기억해내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데
흩어지는 널 붙잡을 수 없어.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네가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다섯, 스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