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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Jul 29. 2017

어떻게 생각해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봤었고, 뒤에선 누군가가 쫓아온 듯 해."

  새로 취직한 회사는 이전 회사보다 여러모로 좋았다. 예전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1시간 30분가량을 가야 도착했었는데, 이제는 30~40분이면 충분하다. 출근 시간도 8시 20분까지였는데 10시까지라 너무 행복하다. 10시 출근 6시 퇴근이라고 하면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다 판타지 소설인 것처럼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실화다. 솔직히 6시 정각은 아니고 6시 10분, 늦으면 6시 30~40분 정도에 회사에서 나온다. 이직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이 일대의 큰길과 골목 구석구석도, 버스 노선도 진작 익숙하다.


  처음 함께 술을 마시던 날 술에 잔뜩 취해 헤헤거리던 너를 끌고 이 동네 골목을 헤매던 때부터, 딱 봐도 없을 게 분명한데 숨어있는 맛집을 찾겠다며 함께 손잡고 이곳저곳 쑤시고 돌아다니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 의외로 몇 개 발견했었다 - 널 못 만난 지도 벌써 일 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오래되어서 생각이 잘 안 날 줄 알았는데 바로 조금 전의 일처럼 생생하다. 이곳도, 약간 바보 같았지만 나를 보고 해맑게 웃던 너도.


  점심시간, 사수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얼마 전 맛집을 찾아냈다며 점심시간에 우리 팀 사람들을 데려간 곳도 이미 알고 있는 곳이었다. '정말 맛집 많이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그의 광대를 약간 상승시켜준 다음 어차피 뭐 있는지 다 알고 있는 메뉴판은 다른 팀원에게 넘겨주고 연희와 늘 먹던 걸 주문한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퇴직할 땐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적당히 경력도 차 있겠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원하는 곳에 충분히 취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부류의 멍청이들이 늘 그렇듯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 앞에 부딪혔다. 부딪혔다고 표현은 했지만 그래 봐야 자기소개서 몇십 개 불합격된 것, 면접 몇 번 떨어진 게 전부다. 뭐 지금 잘 됐으니까 이렇게 무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연희의 전화를 못... 안 받는 횟수가 잦아졌다. 칼 같던 카톡 답장도 늦어졌다. 진동으로 메시지가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바로 답장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게 급했으니까. 매사 여유로웠던 나였지만 살면서 처음 만나는 시련에 여유는 사라졌고, 조급함만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렇다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안 만났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꽤 자주 만났고, 그랬기에 불성실한 내 연락 태도를 가지고 단 한 번도 뭐라고 하지 않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연희의 회사가 있는 곳 근처는 맛집도 술집도 많은 번화가라 어디든 엉덩이 붙이고 먹고 마실 곳은 많아서 좋았던 것 같다.


  함께 있을 때는 그저 마냥 좋았다. 그러다가도 문득 회사원 차림의 연희에 비해 너무나도 자유로운 내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고, 그건 나를 알 수 없는 찌질한 기분에 휩싸이게 했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신기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연희에 비해 오늘 자소서가 잘 안 써지더라라는 식의 이야기밖에 할 게 없는 내 모습도 활활 타고 있는 찌질함에 기름을 부었다. 이 외에도 찌질함의 연료가 되었던 것들은 많지만 지금 이렇게 살짝 언급한 것만으로도 당시 나의 찌질함을 설명하는 데에는 차고 넘칠 것 같다.


한심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한 번도 직접 그런 말을 꺼낸 적은 없지만 한심함이란 건 한심한 그 이름 그대로 어떻게든 한심하게 표가 나는 모양이다. 항상 손잡고 웃으며 걷던 그 거리에서 그날 우리는 크게 다퉜고, 그게 시발점이 되어 헤어졌다.

  항상 함께 타던 버스 뒤에서 두 번째 2인용 의자도, 커피 맛과 오지랖 수준이 정비례하는 단골 카페 여사장님도, 말투가 싸가지 없었지만 그래도 잘생겨서 매번 봐줬던 연희네 집 앞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집 근처의 백화점, 영화관, 식당들 모두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 우리 회사에서 조금만 걸으면 연희와의 기억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그 모든 곳에 금방 다다를 수 있다. 심지어 당시 자주 가던 식당 중 몇몇 곳은 점심을 먹으러 자주 가기까지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치며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한다. 늘 보던 거리의 노점과 시끌시끌한 휴대폰 판매점을 피해 반대편의 한적한 산책로로 걷는데도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한적하게 걷기는 다 틀린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네가 없는 거리에서 너 없이 혼자 걸으며 나는 오늘도 너를 생각한다.



The moment we spent has past

and

gone away



[CHEEZE - 어떻게 생각해]


이른 노을 지던 그 하늘 아래

가로수 길을 따라 걷던 우리들

많은 사람들과 발끝을 부딪치며 걷고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봤었고

뒤에선 누군가가 쫓아온 듯해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난 늘 생각해

난 늘 생각해야 해

이제 그만 지겨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생각해 난

이제 그만 지겨워



그 날 넌 기억하니

예전에 우리 꿈을 나누던 그 밤의 놀이터를

마냥 하늘만 보며 결국 잘될 거라고 얘기했지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난 늘 생각해

난 늘 생각해야 해

이제 그만 지겨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생각해 난

이제 그만 지겨워



바보 같던 웃음의 순수했던 날 우리가

오늘도 내일도 매일이 그리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난 늘 생각해

난 늘 생각해야 해

이제 그만 지겨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생각해 난

이제 그만 지겨워

CHEEZE 'Q' (201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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