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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Jul 09. 2018

이별의 맛

"사랑을 말하던 내 입술 끝엔 아직 니 이름이 묻어있는데"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이것저것 가리고 안 먹고,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고? 그거 인생의 낭비 아닙니까?


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먹을 건 좋아한다. 이미 무수히 많은 접시가 내 앞에서 비워져 나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한리필이라고 쓰인 식당을 보게 되면, 사장님에게 무한리필 식당 경영을 선택하신 것에 대해 후회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은 호승심을 불태운다.


그래서 뭔가 못 먹는 게 있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최근까지는 잘 몰랐었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어서, 식감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다르다.

달달한 걸 굉장히 좋아했던 나리는 카페에 가면 항상 디저트를 같이 시켰다. 그래서 그랬는지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연애할 때도 달콤하고 귀여운 짓을 꽤 많이 했었다. 말은 간지럽다고 했었지만, 당시의 내 광대는 저 하늘 위로 올라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무뚝뚝한 편이었던 나도 나리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한 스윗 한다는 말도 종종 듣게 되었다.


하지만 내 곁에 항상 함께하던 그 달콤함이 사라져버린 후 나는 다시 예전처럼 무뚝뚝해짐은 물론, 나리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음식을 먹는 것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다고 해서 생각이 안 난 건 아니었지만.


한 번은 무심코 함께 자주 가던 합정의 조용한 카페에 혼자 들어간 적이 있다. 문을 열고 카페 안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 잔뜩 묻어있는 그리운 달콤함에 놀란 나는 단골을 알아보고 인사해주시는 사장님께 죄송하다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인사드린 후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난 적이 있다.

당연하지만, 그 카페만 빠져나온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카페 주변을 늘 배회해 우리가 간식도 몇 번 사다 주었던 귀여운 뚱냥이, 길게 쭉 뻗어 있어서 좁았지만 걷기 좋았던 거리, 지하철역, 함께 탄 버스, 언젠가 함께 갔던 모든 곳에 우리가 묻어 있었으니까.


나리야 잘 살고 있어? 봤다시피 나는 이러고 산다.

시간 그래도 많이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나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아무리 피하고 도망쳐도

어느 순간 나는 어디서든 너를 보고 듣고 맛본다.



너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시시때때로 나를 흔들어 버리는구나.


아니

아니다.

내가 흔들리는구나.




[김범수 - 이별의 맛]


https://youtu.be/BoLYhSEu1-4


어제의 난 어디 있을까

달라진 바람 달라져버린 공기

나른한 몸 고장난 마음

감기약처럼 쓰디쓴 나의 하루

물 속 같은 시간들 그 1분 1초

난 자꾸만 숨이 차올라


두 눈을 꼭 감고 두 귀를 닫고

난 너의 기억을 또 꺼내어 봐

참 달콤했던 참 달콤했던

너로 만든 케익같던 세상


사랑을 말하던 내 입술 끝엔

아직 니 이름이 묻어있는데

다 괜찮아질거라 수 없이 되뇌여도

입안 가득 그리움만 퍼져

이별을 맛본다


거울에도 유리잔에도

니가 좋아한 조그만 화분에도

너의 손끝이 닿았던 그 구석구석

가지런히 놓여진 추억


머리를 잠그고 가슴을 막고

난 너의 목소릴 또 꺼내어 봐

참 사랑했던 참 사랑했던

너로 만든 노래같던 세상


내일은 아득히 멀기만 하고

오늘은 몸서리 치도록 아파

다 지나갈거라고 수 없이 타일러도

맘 가득 서러움이 흘러


널 원하면 원할수록

조금씩 너는 멀어져 가

So far away


두 눈을 꼭 감고 두 귀를 닫고

난 너의 기억을 또 꺼내어 봐

참 달콤했던 참 달콤했던

너로 만든 케익같던 세상


사랑을 말하던 내 입술 끝엔

아직 니 이름이 묻어있는데

다 괜찮아질거라 수 없이 되뇌여도

입안 가득 그리움만 퍼져

이별을 맛본다


이별을 맛본다

김범수, 심현보 'Color Of City (Blue)' (200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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