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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Aug 26. 2018

나는 나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네 얘길 들어준 수많은 청자는 알고 있어 어디서 남 흉을 본다는 널."

  연애에 대한 여러 전통적인 조언들 중 하나는, '가족끼리 그러는거 아니야.'가 아닌가 싶다. 당연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족은 진짜 가족이 아니라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어 언제 어떤 식으로든 얼굴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이 조언이 오랜 시간동안 힘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예전에도, 지금도 가족끼리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 테두리 안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만나기 때문이리라.


마치 나처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 곳이 어디든지 다 좋았다. 우리가 속해있던 그 곳은 물론, 찌는듯이 더운 여름날에도 둘이 함께라면 그저 좋았다. 남들처럼 좋기도, 싸우기도 했지만 어쨌든 좋았던 시간들이 많았으니 어찌어찌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메울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틈은 계속해서 내가 모르는 새에 우리 사이의 뭔가를 어긋나게 했고 결국 우리는 오래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딱히 누굴 탓할 문제는 아니었기에 나는 여느 이별과 마찬가지로 활발함과 웅크림의 밸런스를 적절히 맞춰가며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외로움을 참 많이 타던 친구였다. 오랜 타지 생활 탓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전후사정을 내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올인할 만큼 그 친구를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잖아. 초반에 그렇게 불타오를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불타오르지 않는것과 챙겨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딴에는 노력한다고 했는데 아마 자기 마음엔 영 안 들었겠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헤어진 후에 뒤에서 자기 유리한 대로 각색한 우리 이야기를, 내 험담을 하고 다니면 쓰나. 헤어지고 우리가 속해있던 그 곳의 사람들과 혹시나 멀어지는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이사람 저사람 만날 일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마음의 짐도 덜고 자기 편을 만들려고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여나 나는 안 좋은 소문이 퍼져 헤어진 후에 피해라도 끼칠까 싶어서 한 마디 말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도. 그러면 쓰나. 내게 그 소식을 전해준 동생은 말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 때는 일단 언니 편 들었어요. 그 오빠가 그랬대요? 하면서."


"같이 욕도 해주지 그랬어. 추임새 넣는거 잘 하잖아."


"에이 그래도 와 오빠 완전 개쓰레기새끼였네요 라고 말했다는걸 어떻게 여기서 오빠 면전에 대고 해요."


"본토 딕션이네 나 울컥할뻔했잖아? 거 잘 하네."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한잔 해요. 아무튼 그 땐 그랬는데 오빠 쪽 말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잖아요 이런건 한쪽 말만 들으면 안 되는거."


"뭐... 그렇지."


"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애들이나 언니들도 말은 안 했지만 같은 생각일 거에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안 써도 돼요. 말 안하려고 했는데 너무 바보같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길래."


"내 흉 볼 수도 있지 생각은 했는데, 막상 직접 들으니 좀 역겨운데?"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생각보단 무덤덤하시네요."


"왜?"


"그래서 뭐라고 했냐, 또 뭐라고 했냐 이러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화도 막 내고, 해명도 할 줄 알았는데."


"굳이? 어차피 그 말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도 없다며."


"그렇죠."


"그거면 됐지. 나도 똑같이 흉 보고 그러면 똑같은 사람 되는거잖아. 그건 싫다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늦어져 동생을 집에 데려다준 후 택시를 탈까 하다가 바람이 꽤 불길래 그냥 걷기로 했다.


  사실 안 맞아서 헤어짐에 동의한것 뿐 사람 자체가 밉지는 않았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건 서로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좋은 게 더 크니까 사귀기로 했었겠지.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너와 헤어진 것도, 헤어진 후에 여기저기 별 말을 하지 않은 것도.


  사람들은 타인에게 참 무심하면서도 참 관심이 많다. 그것이 누군가의 만남이나 헤어짐에 관한 것이라면 대체로는 후자 쪽이다. 내가 남 이야기를 하는 만큼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할 것이다. '이 친구는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의 뒷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구나.' 라고. 또한 이런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므로 기왕이면 말을 아끼는 편이 상수다.


  하지만 마음 속에 허전함이 존재한다면, 자기 편이 많지 않다고 느낀다면, 조급해져 신중하지 못하게 되고 시야가 좁아질 것이다. 그렇게 급한 마음에 밝은 곳만을 쫓다 보면 어느 순간 빛에 눈이 멀게 되고, 자기 주변에 드리워지는 짙고 끈적거리는 그림자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좋은 헤어짐'이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좋게 헤어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여러 관계에 복잡하게 얽혀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좋음은 물들지 않을 수 있으나

나쁨은 어느 순간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물들고 퍼져 버리기에...

나빠서 좋을 거 없잖아?




https://youtu.be/_of40AhsIuM


[여포 - 나는 나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세상 행복을 느끼며 기쁘고 

밝은 햇살은 늘 나를 비춘다. 

그럴 때 유독 남 잘못을 비웃고 

즐거움을 큰 웃음으로 비춘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싫어질 때면 

누구든 만나는 이에게 미워죽겠던 

표정, 행동 하나하나 질리도록 

욕하면서 흠집 내 이간질했어.


그리고 그 사람과 만나는 약속이나 

모임은 연기의 무대, 마술이다 

널 속이고 만들어내는 고갯말 

나는 나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문득 거울을 보면 생각이 날까 

지금 내가 싫어하는 건 너일까 날까 

뒤에서 내가 흉보는 친구 만나지말까 

아니 생각이 짧아 또 네 발을 밟아


빛이 드는 반대편의 나의 그림자 

세상 부끄러운 행동들의 줄임말 

해질 때쯤 길어지는 나의 그림자 

이제 와서 미안해 허리 숙인다.

내 키보다 커져버린 나의 그림자 

실망하고 고개 숙인 내가 보인다. 

네가 보게 걸어놓은 나의 그림자 

그동안에 미안했어. 허리 숙인다.



언제부터였을까 분명 처음에도 

지금 같은 모습으로 너를 매도 

그러고 다녔을 거야 여름에도 

그림자가 지지만 안 없어져 겨울에도

내 얘기를 들어준 수많은 청자는 

알고 있어 어디서 남 흉을 본다는 나를 

내뱉은 침은 결국 또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내 얼굴로 라는


무엇보다 미안한건 사람들 앞에서 

그도 알지 못하는 가면을 말했어. 

내가 직접 알려주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그를 벼랑 끝으로 떨어뜨렸어

언젠가 널 알고 내가 밧줄로 매단 

너와 나의 다리 그리고 나를 소개한 

그 사람들에게 바치는 내 고백 말 

나는 나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빛이 드는 반대편의 나의 그림자 

세상 부끄러운 행동들의 줄임말 

해질 때쯤 길어지는 나의 그림자 

이제 와서 미안해 허리 숙인다.

내 키보다 커져버린 나의 그림자 

실망하고 고개 숙인 내가 보인다. 

네가 보게 걸어놓은 나의 그림자 

그동안에 미안했어. 허리 숙인다.



쓸쓸한 밤, 비가 오는 흐린 날 

떠오른 건 너와 마주하고 술로 한 

그날의 기억들 작고 흐릿한 빛은 

내가 등진 그림자로 묻힌다.

무모한 생각 없는 행동의 그물망 

내가 걸려버린 그물의 주인과

어쩌면 나는 전부 닮은 걸지도 

내가 싫어하는 너는 나였을지도


빛이 드는 반대편의 나의 그림자 

세상 부끄러운 행동들의 줄임말 

해질 때쯤 길어지는 나의 그림자 

이제 와서 미안해 허리 숙인다.

내 키보다 커져버린 나의 그림자 

실망하고 고개 숙인 내가 보인다. 

네가 보게 걸어놓은 나의 그림자 

그동안에 미안했어. 허리 숙인다.


빛이 드는 반대편의 나의 그림자 

세상 부끄러운 행동들의 줄임말 

해질 때쯤 길어지는 나의 그림자 

이제 와서 미안해 허리 숙인다.

내 키보다 커져버린 나의 그림자 

실망하고 고개 숙인 내가 보인다. 

네가 보게 걸어놓은 나의 그림자 

그동안에 미안했어.

허리 숙인다.

여포 2집 'P.O.R.N'(201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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