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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Oct 03. 2023

뜨개질에 푹 빠진 아이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되었는데도 신발끈 묶기를 어려워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신발끈을 단단하고 예쁘게 묶는 것이 어려워 끈을 묶지 않아도 되는 운동화를 선호한다.  

    

엄마는 이런 나에게 뜨개질을 알려주셨다.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하는 뜨개질이 소근육 발달에 좋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들으신 모양이다. 대바늘로 목도리 뜨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코를 잡고 뜨는 방법은 어찌어찌 터득했겠지만, 삐뚤빼뚤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코를 빼먹기도 하고, 힘조절이 잘 되지 않아 일정하지가 않았다. 코를 빼낼 때 손가락에 힘을 잔뜩 쥐는 탓에 뜨개질을 한번 하면 손가락 근육통에 시달렸다.(뜨개질을 할 때 손에 힘을 빼야 한다는 사실은 먼 훗날에서야 알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친구 한 명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뜨개질을 하는 나를 보고 친구도 자신도 해 보고 싶다고 한 것 같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엄마가 대바늘과 실도 건네주시고 조금은 알려주셨겠다. 친구하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뜨개질 삼매경에 빠졌던 날들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뜨개질을 나보다 늦게 시작한 친구는 금세 나를 따라잡았다. 친구가 내게 신발끈을  쉽게 묶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그녀의 손 근육 발달은 또래들과 비슷했으리라.  

    

지구 어디에선가 비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친구와 중학생 때 장애판정을 받은 내가 다르다는 점도 모르고 그저 즐거웠다. 나보다 잘하는 친구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남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는 걸 모르던 시절이었거나 질투했던 기억도 좋은 추억으로 희석된 듯 하다.      


바늘과 실만 잡았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죽했으면, “유리야! 뜨개질, 숙제 다 하고 씻고 나서 해”라고 하셨을까     


코를 자꾸만 빼먹어 목도리는커녕 걸레로 쓰기에도 민망한 작품(?)이 나와도 지겹지가 않았다. 손가락이 아프고, 뜨개 질러들의 은어라는 푸르시오를 반복해도 뜨개 하는 시간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나는 무언가를 시도했을 때 몇 번 해 보다가 생각처럼 잘 안되면 금방 싫증을 내고 포기하고 만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뜨개질만은 그렇지 않았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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