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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부스 Jul 17. 2022

해미읍성 그리고 조선 천주교의 가슴 아픈 역사

해미읍성 입구.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3대 읍성이 있다. 순천 낙안읍성, 고창읍성 그리고 서산에 해미읍성. 그중에서도 필자는 저번 편에 순천 낙안읍성에 다녀왔었고, 이번에 서산 해미읍성을 다녀오며 이제는 고창읍성만 남겨두고 있다. 


원래는 이날 해미읍성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전통공연을 관람하기 위하여 이 날에 모든 일정을 비워뒀으나 갑작스럽게 공연이 취소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이 날 해미읍성을 다녀올지 말지 고민에 빠졌었지다. 그래도 한번 계획을 세워놨던 터라 그래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점심때쯤 차를 몰고 동탄에서 서산에 위치한 해미읍성으로 향했다.


편리한 접근성

수도권에서 해미읍성으로 향하는 경우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쭉 내려가게 되는데 해미ic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해미읍성이 위치해있다. 고속도로 ic와 인접해있어서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경우 정말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이점이 있으며 요즘 같은 시대에 고속도로와 가깝고 주차장 넓고(거기에 무료) 더군다나 바로 옆에 식당과 카페들이 몰려있으니 이거야 말로 지리럭 그리고 교통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다 갖춰져 있다. 주말에 이동하시는 경우 조금 시간을 넉넉히 잡고 이동하는 걸 추천한다. 서해안 고속도로 평택 부근부터 많이 막힌다.


해미읍성 해미의 뜻?

충청남도 서산에 위치해있는 해미읍성의 뜻은 한자 풀이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海美
바다가 아름답다.


지리적 특성상 바다가 인접해 있고 왜구를 막기 위한 장소였으며 기록을 찾아보니 이순신 장군님께서도 해미읍성에 근무를 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지금에서야 지도를 통해 해미읍성의 위치를 다시 확인해보니 안면도 뒤쪽으로 바다가 이어져 있고 수도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기에 아마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가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천주교의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있는 해미읍성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천주교는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문으로 여겨지며 종교로 자리잡지 않았으나, 18세기에 이르러 일부 사람들에게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서학에서 나오는 '인간평등'의 내용은 조선의 '성리학'과 모순되는 내용으로 조선 내에서 강하게 반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퍼져나가는 서학의 이름 천주교를 잡기 위하여 결국 조선 조정에서도 칼을 빼들었다. 그리하여 이곳 해미읍성에 1,000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가 유배를 오게 되었고 고문을 당하교 순교를 하였다.


이중에서도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를 보냈던 정조 시기도 포함되는데 이때 정조가 가장 아끼던 정약용 또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이곳 해미읍성으로 유배를 온 적이 있다.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을 하였을 때 이곳 해미읍성에 방문하였으며 국제성지로 승격하였다. 


당시 천주교 즉, 서학을 믿었던 사람들을 고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며 나무에 매달았다는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러 가지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

카메라를 들고 해미읍성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흐리고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씨였으며 상당히 습한 날씨였다. 순천 낙안읍성과 달리 해미읍성 내부에는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 듯싶었고 이곳저곳 돌아디닐때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발견하였다. 우리 전통놀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으며 북, 장구, 징 등등 다양한 악기들도 함께 준비되어있었다. 또한 다듬이질 체험, 마차 운영, 국궁체험 등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게 준비가 되어있었다.


더위에 힘드시죠?
걸어서 한 바퀴

해미읍성의 주요한 모습만 보고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상황이었지만, 저녁을 늦게 먹더라도 온 김에 한 바퀴 구석구석 둘러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돌아다니던 와중에 옆에 돌계단이 보였고 나는 나의 호기심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돌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돌계단을 올라가니 곧게 뻗어있는 길 앞에 정자가 있었고 길 옆에는 울창한 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나무 사이에 앉아 휴식시간을 보낼 수 있는 평상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바람에 따라 펄럭이는 읍성을 지키고 있는 깃발과 함께 읍성 내부 곳곳에 있는 항아리

잠시 더위를 피해 쉬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거대한 나무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전통가옥은 읍성의 분위기를 살려주며 우리를 더욱 조선시대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해미읍성을 마치며

원래는 내가 처음 생각해왔고 계획했던 게 갑작스럽게 변경되면서 잠깐이나마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해미읍성에 갈지 말지 고민했었다. 근데 어떻게 보면 오히려 나에게 더 좋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원래 계획대로 움직였다면 전통공연을 관람하고 해미읍성 내부를 이렇게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남았을까?라고 생각이 든다.


항상 어느 문화유산 혹은 문화재를 방문하기 전에 사전 조사를 한다. 역사적 배경 사건은 무엇인지 어떠한 이야기를 가지고 지금 우리 곁에 남아있는지 등등.. 


세계적인 종교이자 권위 있는 교황님까지 방문하셨던 해미읍성. 그리고 국제성지로 승격이 되었지만 과거 '천주교'라는 종교는 조선에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해미읍성이 아닐까 싶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천주교를 탄압해야 하는 이유와 사상적 배경 등등 당시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당했던 차별과 서러움 그리고 탄압과 고문 그리고 순교까지..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해미읍성이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문물이 자리잡기까지 엄청난 이해관계의 충돌과 함께 고통이 따르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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