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2주 사이 사진관에 학교에 증명사진을 제출해야 한다며 학생 손님이 몰려왔다. 날짜를 보니 3월 2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오지 말았으면 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방학이 끝나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고, 당분간 늦잠은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그저 놀고먹는 베짱이 같은 삶을 원해왔으나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아마 로또 1등을 2번 이상 당첨되어야 하지 않을까? 3월은 자격증 시험, 공무원 시험, 개학 등등 다양한 시기가 몰려있기에 다양한 손님들이 사진관에 방문해주셨으며 손님들과 대화를 조금씩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대차이를 느끼고 때로는 공감하며 희망찬 메시지를 던져주곤 한다. 아무튼, 필자도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창 시절이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나 스스로 많은 변화를 시도했던 시기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물론,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있기에.. 1년 동안 다녔던 원광대학교를 주제로 하였다. 아마 원광대학교 1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 생각한다.
사진을 사랑한 아이의 일생을 돌이켜보다.
어릴 적부터 뛰어 놀기만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라왔지만 부모님의 뜻하고는 다르게 공부와는 지구 5바퀴를 돌아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멀었다. 어릴 적 학습지 공부를 하면 항상 부모님 잠시 외출하신 사이에 답지를 몰래 훔쳐 문제를 풀었으며 가장 좋아하는 것은 tv 보면서 귤 까먹기, 나가서 잠자리 잡아오기, 킥보드 타고 아파트 단지 돌아다니기였다. 시간이 지나 14살 15살.. 세상 무서울 거 없는 나이와 함께 사춘기 시기까지 결합을 해버리니 부모님 속을 아주 부침개 뒤집듯이 앞-뒤-앞-뒤 뒤집기 시작하였다. 과외선생님을 붙여보기도 하고 학원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그럴수록 공부와는 거리가 더 멀어져 가기 시작하였고 부모님은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1년에 2번씩 꼭 학교에 오셔야 했다. 그렇게 점점 공부와는 거리가 더 멀어져 갔고, 중국 상하이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부모님들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한국에서 공부 안 하는 애들은 가서도 안 하더라" 이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중국에서는 더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나만의 자유를 느끼기 시작하였고 거기서도 부모님 속을 더 뒤집었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결국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으며, 중국에서는 그나마 공부라도 더 잘하고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시면서 투자하셨던 나의 시간과 부모님의 돈은 결국 수증기처럼 증발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나의 진로에 대해 스스로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 아이는 갑자기 '사진'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 아버님 몰래 당시 70만 원을 주고 카메라를 구입하여 학교 수업도 빠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공부한다고 독서실에 가서는 사진책만 들여다봤으며 스스로 뭔가를 이루고 나아간다는 점에 뿌듯해져 있는지 사진학과에 진학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방법을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보면서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부모님 몰래 준비하던 터라 남들이 다니는 사진학원, 입시 준비 이런 것은 꿈도 못 꾸는 현실이었으니 책, 인터넷 그리고 혼자서 맨땅에 헤딩이 전부였다. 그만큼 아이는 혼자서 시행착오라는 삽질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자신감 하나만큼은 뛰어났다. 왜냐하면 혼자서 이것저것 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열심히 준비하여 대학 입시 기간이 다가왔다. 사진학과가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아이는 부모님에게 원서비를 받아 다른 학교에 원서를 쓰면서 평소 가고 싶었던 사진학과에 몰래 지원을 하였다. 워낙 하향지원을 해서 다른 학교에 붙어도 별 다른 감흥은 없었고 대망의 사진학과 발표날이 다가왔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모니터를 쳐다보니 '합격'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그 아이 휴대폰으로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장학금 대상자이니 꼭 우리 학교로 오세요'라는 연락을 받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당연히 부모님은 그 아이가 카메라를 들고 그동안 사진 공부를 했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노발대발하셨고 아이의 부모님은 엄청난 반대를 하셨다. 끝까지 반대를 하셨으며 "등록금, 입학금 너 스스로 다 준비해서 가라 더 이상 네가 사진학과에 가겠다면 지원은 못해준다"라는 말씀을 듣고 아이는 집을 뛰쳐나가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그 아이에게 남은 돈은 3만 4천원이 전부였으니 뭐 어찌할 방법이 있겠는가? 결국 그 아이는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다른 대학교, 사진과는 전혀 상관없는 학과로 진학하고 1학기만 다니고 군대로 떠나버렸다.
전역을 앞두고 그 아이에게 무슨 이상한 바람이 불어 들었는지 갑자기 대학교를 새로 가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다. 그럴 만도 하다. 23살 전역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 남성들은 세상 모든 걸 깨부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살아갈 자신이 넘치고 패기있는 시기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과한 자신감이 넘쳤던 아이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메시지와 함께 '수능 실패'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후 그 아이는 원광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2015년 2016년 전국적으로 공무원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그 아이는 부모님에게 휴학을 하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이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또 이게 무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으셨을 수도 있다. 중국유학, 남들보다 1년 늦게 고등학교 졸업, 군대 다녀온 뒤 또다시 대학교 새롭게 진학.. 이제는 공무원 준비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끝없이 부모님을 설득하기 시작하였고 그 아이는 부모님에게 "딱 2년만 주십쇼. 2년 동안 시험에 합격을 못 하면 이제 정말 부모님 시키는 대로 살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고 결국 부모님의 허락과 지원을 받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1년 6개월 만에 해양경찰 시험에 합격으로 이어졌다. 영어 be동사도 모르던 놈이 정말 성공한 인생 아니겠는가? 그렇게 그 아이의 길은 이제 남들이 부러워하고 어쩌면 남들에게 꿈같은 직업, 아무나 할 수 없는 경찰의 길로 평탄하게 가나 싶었으나..
공무원 붙은 지 6개월이 지난 시점 아이는 또다시 사고를 쳐버렸다. 공무원 붙은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부모님에게 "해양경찰 그만두고 사진 일 하겠습니다."라고 폭탄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동안 부모님 속을 뒤집고 다닌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불을 지펴버리고 또다시 부모님에게 걱정거리를 안겨드린 꼴이 되어버렸다. 2달이 넘는 설득과 동시에 부모님은 끝없이 반대를 하셨다. "왜 남들은 못 들어가서 안달나있는 직업을 관두고 사진을 하려고 하냐" "너 사진학과도 안 나왔고 지금까지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않았냐 이제는 부모님 말 좀 들어라" "뭐 먹고살려고 그러냐 정말 너 나이도 생각해라" 당시 27살이었던 청년의 가슴속에는 자신이 가지 못했던 길 '사진의 길' 이 계속 미련이 남아 있었고 자꾸 생각나며 떠올랐다. "그래,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는 건 알겠으나, 그 로망이 깨져버릴 수 있다. 사진은 취미로 해라"라고 청년의 아버님은 청년에게 '사진은 취미로 해라'라는 말을 하셨지만 결국 그 청년은 끝없는 설득과 더불어 과감히 사표를 던져버렸다. 그토록 원하던 '사진의 길'을 가기 위해 아이는 스튜디오에 들어가 용돈 수준에 불과한 월급을 받으면서 막내 보조로 일을 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동탄에서 흑백사진관 + 사진작가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청년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그 청년이 바로 '림부스' 필자의 이야기다.
훗날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부모님께서 "애가 공무원 시험 떨어졌으면 기를 쓰고 반대를 했을 건데, 얘가 하고 싶고 스스로 하겠다는 거에서 결과로 보여주기 시작하니 더 이상 반대를 못 하겠다. 이제는 그동안 반대했던 길에 대해서 응원을 해야겠다."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24살 늦은 신입생이 바라본 찐 20살 신입생
24살? 25살? 나이에 15학번 20살인 아이들과 같이 입학하게 되었다. 법적으로는 성인의 나이. 신입생들이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즐기고 있지만 늦은 신입생이었던 나에게는 아직까지 어린 학생들처럼 보였다. 약간의 어색한 화장법, 쌍커풀 부기가 덜 빠진 눈, 이제 막 꾸미는 듯한 옷차림 그리고 교수님과 선생님 단어를 혼동해서 부르는 습관까지 남아있는 아직까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20살 신입생들이었다.
O.T, M.T, 입학식 등등 모든 행사를 불참하였다. '굳이 늦은 나이에 들어와서 그런 자리를 뭐하러 가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별로 갈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이는 어리지만 동급생들 그리고 학년 높은 학생들은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느낌이 참석 안 해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참석을 안 하기에 그들은 더 안도하고 눈치 안 보고 재미있게 놀지 않았을까 싶다. 오히려 군대 동기와 고등학교 때 알던 친구가 먼저 다른 학과에 다니고 있었기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입학을 하다 보니 뜻밖의 장점은 있었다. 정보들은 동급생들에 비해 빠른 편이다. 아무래도 주변 친구들은 이미 1학년 생활을 거쳐가고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기에 그만큼 주변에 물어볼 사람들도 많았으며, 오히려 늦게 들어와 동정심이 생겼는지 노인 취급을 받으면서 도움도 많이 받았다.
20살 1학년 친구들은 1주 2주가 지나고 서서히 어색함이 사라지고 자기들만의 친한 무리가 형성되어가기 시작한다. 그러고 '술'을 정말 일주일 연속으로 마시면서 더욱 친구들의 사이는 돈독해지기 시작하고 놀러 다니기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자취하는 친구의 자취방은 친구들의 따뜻하고 아늑한 숙박업소이자 24시간 운영하는 술집으로 변하는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사이좋아 보이고 항상 뭉쳐 다니던 친구들은 1학년 2학기가 지나고 2학년, 3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같이 놀러 다니고 몰려다니는 빈도도 줄어들고 다시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취직하기 시작하면 안부 인사와 생일 때 기프트콘을 보내면서 이것 조차 점점 기억 속에 사라져 가는 인연이 되어버린다. 꼭 전부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대부분이 이렇다. 대학교 친구 1~2명만 꾸준히 연락하고 좋은 관계로 유지하면서 지내도 필자가 보기에는 성공한 인간관계라 본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원광대학교에서의 1년
동갑 친구들에 비해 3~4년 늦게 시작한 나이어서 그런지 주변 친구들은 하나 둘 취업 준비와 자신들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였고 필자는 1학년이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동시에 취직 걱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늦게 시작한 만큼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다가왔으며, 사실 대학교에 진학을 한 지 1달이 지나서야 바로 공무원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뭐 남는 시간은 항상 중앙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왔다. 운동을 하기 전에 항상 스트레칭과 준비운동이 필요하듯이 여기서 보냈던 1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큰 준비운동과 같은 시간이었다. 이러한 시간과 과정이 있었기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루빨리 여기서 벗어나 온전히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꾸준하게 들어왔고 이러한 1년이라는 인내의 시간이 나에게는 큰 도움닫기가 되었다.
정말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고 현실에 가로막혀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꿈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 이런 과정이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보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실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았으면 한다.
3월 2일 이번에 새롭게 대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 신입생들 중에서 자신들이 원하고 바라던 학교 혹은 자신이 가고 싶은 전공에 진학한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다. 입학식 때부터 실망에 가득 차 벌써부터 재수 준비를 하는 친구들, 반수 생각 친구들, 여러 친구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기에 어떤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는 말해 줄 수는 없으나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자책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지금 선택한 길이 잘 맞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전공하고 관련된 일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봤던 내용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전공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어 자신 스스로 '비전공자'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어버린 것이다. 주변에서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컴플렉스라 생각하고 누가 전공이 물어보면 어쩔까?라는 강박관념에 박혀 살아왔다고 한다. 그 강박관념이라는 큰 틀을 깨고 나왔던 계기는 "전공자도 아닌데 엄청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라 말을 하였다. 그리고 명언이 탄생하였다. "감추고 싶은 약점이 때로는 나만의 무기로 변합니다."
조금 늦게 시작하면 어떻고 조금 늦게 돌아가면 어떠한가. 그만큼 자신이 원했던 길에 대한 준비시간을 거쳐왔고 스스로 탄탄해져 돌아왔으니 앞으로 신나게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아니면 피치 못해 선택했던 전공이 더 잘 맞을 수도..?)
작은 경험도 소중히 여기길 바라며..
20살이 되면 성인이 된 기분에 신나면서도 가장 많은 실수를 하고 다닐 때기도 하다. 처음 배워보는 술,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대학교 분위기, 드디어 따로 나와 살아보는 나만의 자취방 등등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다. 때로는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고 조별과제 문제로 마찰이 일어나기도 하고 연애를 하고 이별의 아픔도 경험하기도 한다. 청춘, 특히 대학생 때만 누릴 수 있는 특혜가 아닐까? 진로와 자신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가장 많이 하는 시기이며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전과할까? 편입? 등등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단계이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잘 활용하기를 바란다.
거대한 추억과 환상은 없었다.
5년 만에 찾아간 대학교는 예상외로 엄청나게 썰렁한 분위기였다. 옛 추억이 떠올라 잠시 방문을 했지만, 대학생활 동안 별 다른 추억도 없었고 다시 봐도 그냥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저 떠오르는 생각은 '이때 이랬었지...' 그러고 끝나버렸다. 어차피 기억과 감흥 그리고 당시 그 시절의 기억은 각자가 그 시절을 어떻게 보내왔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필자한테는 인생의 전화점이 되었던 1년의 시간 이외에는 별 다른 추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