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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 Nov 09. 2024

계란찜이 아니라 찜크램블이라도 오케이

어제 처음으로 계란찜을 시도해 보았다. 생에 처음 시도하는 계란찜이었다. 레시피는 chatGPT에게 물었고. 계란 3개와 물을 1:1.5 비율로 섞어서 전자렌지에 2분을 돌리면 된다고 했다. 정성스레 계란을 풀고 간장도 반 숟갈 넣었다. 전자렌지는 2분을 넘어 총 6분 동안 돌아갔다. 그리고 결과는? 대 실패. 뚜껑도 덮이지 않은 그릇에 몽글몽글 올라와 있는 건 '계란찜이 되다 만 무언가'였다.

애매하다. 맛이 있지도 없지도 않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안돼. 여기서 끝날쏘냐, 난 프라이팬에 그것들을 모두 엎고 열을 가했다. 스크램블처럼 약간 태우듯이 익히면 죽은 계란찜도 살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기대한 계란찜의 맛은 아니었더라도 '무언가'를 벗어난 '음식'정도로는 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쓰는 글도 저 계란찜 같다. 결과물만 보면 사람이 먹을 수는 있는, 볼 수는 있는 것이겠지만 그건 부단히 누군가를 흉내 낸 것에 가깝다. 기대했던 것만큼의 수준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도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게 내가 가진 실력이나 재능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처음 한 것치곤 잘한 것? 어떻게든 먹을 수 있게 조리를 한 것? 재능과 노력을 들이밀기엔 둘 다 애매하다.

나에게 중요한 건 그저 상을 차리고 끼니를 때운다는 정도일 뿐. 재능이란 말은 악착같은 노력을 퇴색시키고, 노력으로만 이루어졌다는 말은 나보다도 재능이 없는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말이 된다. 재능과 노력을 휘젓고 찌고 구워서,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든다. 그것만이 중요하다. 기대보다 못한 결과에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나는 원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만큼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노력해서 그런 '무언가'라도 써봤던 거니까.


기대하지 않은 만큼의 맛이라도, 남을 흉내 낸 것일 뿐이라도 무엇이 중요한가. 내가 만든 것. 그걸로 내 꿈이 배부르면 그만이다. 계란찜이 아니라 찜크램블이라도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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