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닉네임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
내 MP3 플레이어에는 늘 지워지지도 않지만 잘 듣지도 않게 되는 곡이 있다. 'to. 리프'라는 파일명을 가진, 예전 닉네임의 나를 지칭하는 연주곡이 그렇다.
예고를 다니고, 그림을 그리고 밴드활동을 했으며, 게임을 아주 잘했던 소녀였다. 나와는 그저 게임으로 인해 친해졌을 뿐이었지만, 맞수가 가능했던 게임 실력과 장난기 넘치는 성격등이 잘 맞아 오빠동생하며 따랐던 아이. 그 소녀는 그렇게 알고 지내던 와중에 몇 개의 그림과 곡을 보내줬다. 몇 개는 그저 자기의 작업물이라며 감상을 듣기 위해 보내준 것이었지만 저 곡 같은 경우는 내 닉네임까지 적어서 선물해 준 것이었고, 그림 또한 나를 향한 메시지가 적힌 것이 있었다.
어느 정도의 호의였을까? 그때도 잘 알 수 없었고, 연락도 닿지 않는 지금에 와서는 정말로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소녀의 마음이지만, 어찌 되었던 내 마음은 저런 선물이나 자주 주고받는 대화로 꽤나 그 소녀에게 향해 있었다. 하지만 거주하는 지역이 멀다는 것을 핑계로 난 한 번도 그 소녀를 직접 만나러 가지 않고 그냥 그렇게 인연이 끊겨버렸다. 분명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 당시 부족했던 용기와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냥 가끔 기억하는 정도로 남은 인연이었는데...
그 후로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블로그나 SNS보다는 홈페이지를 직접 제작해서 운영하는 게 흔했기에 배너로 달린 링크에, 또 다른 링크를 타고 들어가 홈페이지를 항해하듯 그들의 실력에 감탄하며 보고 있다가 낯이 익은 그림을 하나 발견하게 됐다.
그 소녀로부터 내가 선물 받은 그림과 '아주 조금 다른' 그림을.
냉정하게 말해 그건 '트레이싱'이라 불리는 따라 그린 그림 정도가 아니라, 그 그림에 올라와 있던 원작자의 사인을 지우고 조금 그림을 수정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 내가 받은 선물은 거짓말 같은 것이었다. 원래부터 비밀이 조금 많다고 생각했던 아이였지만, 그 그림을 발견했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것만 아니었더라면, 조금은 즐겁고 조금은 아쉬운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하고.
그리고 그녀에게 선물 받은 곡은 지금도 내 MP3안에서 종종 재생되며 그때마다 내게 어떤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림과는 다르게, 그 곡과 비슷한 곡은 발견한 일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다. 그래서 그 곡이 정말로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의심하는 것처럼 그 곡도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애초에 그 소녀의 창작물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그 호의마저 나는 거짓으로 여겨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선물이 거짓이라면, 나에 대한 호의도 거짓이었는가? 또 그렇다면 거짓된 호의를 받고 느꼈던 나의 호감도 거짓된 것에 대한 환상이고 허상이었나? 가슴으론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곡이 나올 때면 자연스럽게 빨리 넘김 버튼을 누르는 나는 아직 그것에 대한 답을 내릴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언젠가 그 소녀를 다시 만나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그것에 대해 물을 수 있다면 그때는 그 곡을 지우거나, 편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겠지.
지금은, 그리고 또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곡은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물음표로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발랄하면서도 따뜻한 멜로디를 가진 그 미디 연주곡은.
(휴대폰이 아니라 MP3 플레이어로 노래를 듣던 시절에 쓴 글이네요. 브런치 작가신청 1회차를 시원하게 미끄러지게 해준 글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꽤 애착이 가는 글이라 약간 손봐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