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회사원 모모씨 Oct 31. 2022

쌉을 손에 달고 사는 친구였다. 어떤 동사를 치건 쌉이 앞에 붙는 기능이 그의 핸드폰에 있나라는 생각이 들만큼.작년 1분기는 매일을 그와의 카톡으로 시작해서 끝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친구였다. 좋아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도 나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그래서 그 놈의 '쌉'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편하기만 한 사이는 싫은데, 어느 정도는 긴장감이 있고 싶은데 무슨 말만 하면 '쌉쌉' 거리니. 쌉은 무슨 뜻인 지도 모르갰는데도 어떻게 딱 듣자마자 상스럽게만 느껴지는 지. 얘는 나한테 잘 보이고픈 맘이 전혀 없는 거야, 뭐야.



그 때는 '쌉'이라는 말이 내게는 낯설었다. 그 친구 말고 누가 쌉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대체 그 말이 어디서 쓰이는 거냐며 검색을 하기도 했다. 쓰이기나 하는 말인지. 다음에 쳐봤을 때 다음카페에서 한 게시글 디시인사이드에서 한 게시글을 발견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는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부탁, 협박, 충고 등 형태를 달리하며 여러번 발화했지만 그는 무시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나름의 진지함을 담았었는데, 사귀지 않는 사이에 너무 진지하면 안될 듯 해서 장난스럽게 말하는 게 패착이었나. 사실 만나서는 '쌉'이라는 말을 올리지 않았기에, 나도 얼마 안 돼 체념했었다. 그래. 카톡에서라도 쓰라지, 뭐. 대체할 말이 없다잖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게 요즘이다. 1년도 안 지났는데  어느 순간 '개'에 버금가는 보편적인 속어가 돼버렸다. 저번주에는 홍대를 걷고 있는데 길거리에 '헤나 10분쌉가능'이란 x배너를 보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그 친구가  생각이 나서.  내게 쌉은 그 친구였으니까. 쌉은 그 친구가 자연스레 생각나는 매개체이지 않나.



따지고 보면 절절한 사이도 아니었고, 그렇게 자주 생각날 친구도 아니다. 그냥 그 때 당시에는 조금 좋아는 했었는데 여차저차 하다가 잘 안 됐고 좀 나쁘게 끝났다. 그 때는 그 친구를 온 마음을 담아 미워도 했는데, 그 것도 며칠이었지. 물론 그 순간도 술에 만땅 취했을 때나 감정이 격해졌을 뿐이다. 그냥 스쳐 지나갈 인연이었다. 그렇게 잘 안 되고 한 번 다시 만나서 얘는 정말 아니다란 사실을 다시금 느끼고 연락을 아예 끊었는데. 그런데, 이 놈의 쌉이 갑자기 왜 유행어가 되어 버려가지고는 생각날 만큼 크게 의미 있는 인물이 아닌데 갑자기 불쑥불쑥 생각나게 하는 건지.  



그래서 다짐했지. 이제는 누군가의 취향과 습관을 기억하지 말아야지. 괜히 그것으로 인한  기억을 만들지 말아야지. 어떤 사람이 습관처럼 쓰는 말, 좋아하는 음식, 영화,즐겨 듣는 음악,키우는 동물 별 생각 없이 기억했다간 나중에 뜻하지 않게 그 사람이 괜히 그리워질 수도 있으니까. 어떤 말을 들을 때, 음식을 먹을 때 음악을 들을 때, 동물을 봤을 때, 안정돼 있는 내의식에 그 사람이 불청객으로 등장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리워하게 될 만한 사람이니까 당시에 그 사람의 취향과 습관을 나도 모르게 기억하게 된 걸 수도 있겠지만. 선후관계가 애매하네. 역시나 부질 없는 다짐이었던가. 쌉슬프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