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소수만큼 노력하는 내가
0과 1 사이에는 수 많은 소수가 있다. 0.1이나 0.11과 같은. 아무리 9를 계속 쓴다고 해도 절대 1이 될 수 없는 0.9999...같은 순환소수도 있고.
나는 그를 사랑했다. 동시에 미워했다. 그는 날 처음 봤던 날 내가 입었던 옷, 내가 그에게 처음으로 건넸던 말, 그 날의 온도, 바람의 정도를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내 기준으로는 로맨틱했다. 다정했고 따뜻했다. 물론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그것이 실체조차 확인되지 않는 감정이라면 더욱. 우리도 그냥 진부하게 끝났다. 어느 날 밤, 간단하게 맥주를 하고 나왔는데 그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멈춰서지 않는가. 그리고선 이별을 고했다. 차갑게. 다시는 자신한테 전화도 하지 말라고, 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와 나는 길에서 몇 시간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가 먼저 택시를 타고 갔다.
물론 그러고 나서도, 난 헤어지지 못했다. 술을 마시고 전화를 했고 문자를 보냈다. 음성 메시지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는 죄다 무시했다. 가끔 아주 가끔, 그 다음 날 아침 8시에 '그만해,이제'라고 딱 5글자를 보내주긴 했다. 멘트는 항상 똑같았다.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 처럼. 맞팔은 당연 끊겼지만 그의 SNS 계정은 공개였다. 나는 종종, 아니 매일, 정확히 말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 그 계정을 왔다 갔다 했다. 새로운 게시물이 잘 뜨진 않았다. 일주일에 한 게시글 꼴로 올라온 것 같다. 자기가 먹은 음식 또는 읽고 있는 책이나 본 영화. 여전하구나. 취향은. 나랑 자주 먹던 돈까스를 여전히 자주 먹고, 나랑 자주 얘기하던 장르의 책이나 영화를 즐겨 보구나. 맘 같아선 언제나 좋아요를 누르고 싶었다.
어느날, 이제 그의 SNS를 들어가는 것도 하루 걸러 잊고 있을 때 쯤, 그의 SNS에 새로운 여자가 등장했다. 연인으로 보였다. 나는 수 많은 날을 눈팅해왔는데, 그 게시물에는 좋아요를 누를까 말까 망설이게 됐다. 엄지 손가락을 화면에 갖다 댔다가 다시 뗐다가를 반복했다. 그래도 행복해 보이는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했고, 벌써 그런 게 괘씸하기도 했으니까. 내가 좋아요를 1개 보태 준다면, 그가 어떻게 생각할까. 좋아요의 '의미'는 전달되지 않을 테니, 그의 맘대로 생각할 게 뻔했다. 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을 훑어 봤다. 그가 엄청 싫어하는 동기도 있더라. 좋아요를 누른다면 나의 좋아요 1개는 그의 동기의 좋아요 1개가 똑같이 카운트 되겠지. 그래서 좋아요를 누르지 못했다. 뭐랄까, 그와 내가 함께 만들었던 서사의 빛이 바래는 기분이었다. 난 그 날 SNS를 탈퇴했다.
그와 나의 관계에, 우리가 함께 했던 서사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지는 SNS에서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좋아요에 차라리 소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그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일을 온전히 좋아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0.1만큼, 0.2만큼은 좋아해 보고 있는 중일 수 있으니까. 아니면 순환소수인 0.9999..이라도 있었으면. 계속해서 9를 이어 붙여나가는 노력을 해보기야 하겠지만, 끝끝내 좋아요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다는 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