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elite Jul 14. 2015

명왕성 5

행성X는 어디에

행성X(Planet X)를 찾는 과정에서 명왕성을 찾았지만, 명왕성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 당시 천체 관측 기술로는 명왕성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고 작은 별이어서 자세히 알 수 없었음에도, 명왕성의 크기가 대체로 지구 정도임을 알게 되었다. 이나마도 지나치게 크게 잡은 것으로 훗날 밝혀졌다.

    명왕성 1편에서 적었듯이 행성X는 해왕성 너머에서 중력 작용을 하여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 운동이 예측치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행성이다. 덩치 큰 천왕성과 해왕성의 운동을 교란하려면 행성X도 덩치가 커야 한다. 하지만 명왕성은 너무 작아서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 교란을 설명할 수 없었다.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명왕성을 행성X를 찾는 과정 중에 얻은 부산물이라고 생각했고, 다시 행성X 탐색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톰보를 비롯한 수 많은 천문학자들이 탐색에 매달렸음에도 행성X는 발견되지 않았다. 1840년대 말 해왕성 발견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무려 140년 이상을 찾아 헤맸어도 찾을 수 없었다. 행성X는 존재해야 했다.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 운동이 계산치와 맞지 않으므로... 관측 데이터와 행성 운동 계산 기법이 갈수록 정교해져도 여전히 맞지 않으므로...

    그런데, 1990년대 초반에 이르자 문제는 뜻 밖의 방향으로 결론이 난다.




행성 탐사선


1960년대가 미국에서는 민권운동이 활발했던 등 여러가지 역사적 의미가 있겠지만, 냉전시대의 양강인 미국과 소련이 인공위성과 유인 달탐사선을 띄우면서 체제 경쟁을 벌인 시대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달 외에도 태양계 다른 행성으로 무인 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지구형 행성이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받던 금성과 화성에 탐사선을 보냈으나, 1970년대에 이르자 미국에서는 태양계 외곽의 거대 행성인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을 목표로 탐사선을 보냈다.

    무인 행성 탐사선은 사진기와 각종 관측 장비를 탑재하고 행성들을 방문해 생생한 사진과 관측 데이터를 보내와 사람들을 감탄시켰고, 태양계 구조와 구성원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행성 탐사선은 또 다른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바로 탐사선 자신을 관측 장비로 사용하는 임무였다.


거대 행성의 질량 측정


행성 탐사선이 목표하는 행성에 접근하면, 행성의 중력이 작용해 탐사선의 속도가 변한다. 이 때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는 행성의 질량에 비례하므로, 행성 중력으로 탐사선의 속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하면 결과적으로 행성 질량을 알 수 있다. 지구에서도 간접적인 방법으로 행성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지만, 관측 한계 등 여러가지 오차 요인이 많아 정밀하게 행성의 질량을 측정하기는 어렵다. 탐사선이 행성을 방문하면 직접적으로 정밀하게 행성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게 된다.


목성(Jupiter) : 태양계 최대 행성인 목성을 최초로 탐사, 정확히 표현하면 최초로 근접 조우한 지구 탐사선은  파이오니어 10호(Pioneer 10)이다. 1972년 3월에 발사된 후, 1973년 12월 경 목성에 근접하여 많은 사진과 관측 데이터를 보내왔다. 이 때 파이오니아 10호에 작용한 목성의 중력 때문에 파이오니아 10호의 속도가 달라지고 궤적이 변화했는데, 이를 통해 목성의 중력과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파이오니어 10호가 보내온 목성 사진

토성(Saturn) : 1973년 4월 발사된 파이오니어 11호(Pioneer 11)가 1974년 11월 목성을 거쳐, 1979년 7월경 최초로 토성을 근접 탐사했다. 이 때 사진 촬영 등 다른 관측과 함께 토성의 질량도 정밀 측정했다.

파이오니어11호가 보내온 토성 사진

천왕성(Uranus) : 원래는 1977년 9월 발사된 보이저 1호(Voyager 1)가 최초로 탐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보이저 1호는 1979년 1월 목성을 거쳐, 1980년 8월 토성을 탐사하던 중 두터운 대기가 있어 관심을 많이 끌었던 토성의 거대 위성 타이탄을 탐사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 때문에 천왕성은 1977년 8월 발사된 보이저 2호(Voyager 2)가 최초로 탐사하게 되었다. 보이저 2호는 1979년 4월에 목성, 1981년 6월에 토성을 거쳐, 1985년 11월 경 천왕성을 탐사하면서 사진 등 각종 관측 자료를 보내왔고, 천왕성의 질량도 측정하였다.

보이저2호가 찍은 천왕성 사진

해왕성(Neptune) : 보이저 2호가 1989년 6월 경 최초로 탐사하면서 각종 관측 데이터와 함께 해왕성의 질량을 측정하였다.

보이저2호가 찍은 해왕성 사진

    하나의 행성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면 다른 행성의 질량 추정치 오차도 줄일 수 있다. 물론 줄어드는 오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최선은 탐사선이 직접 방문하는 것이다. 탐사선이 처음 태양계 외곽의 거대 행성들을 방문할 때 질량 오차는 1% 이상이 되기도 했다지만, 최종적으로 보이저 2호가 해왕성의 질량을 측정할 때는 0.5% 정도의 오차였다고 한다. "0.5%? 별 거 아니네?"할 수도 있겠는데, 해왕성이 덩치가 있어서 이게 화성 정도의 무게란다.



폐기된 행성X 가설


위와 같은 탐사선의 측정 과정을 거쳐 1990년부터는 태양계 모든 행성(명왕성 제외)의 질량을 정밀하게 알게 되었다. 1992년, 마일즈 스탠디쉬(Myles Standish, 1939~)라는 천문학자가 그간 얻은 정밀한 행성 질량 데이터를 이용해서 천왕성과 해왕성의 중력 작용을 다시 계산했다. 재계산 결과, 계산에서 벗어나는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 교란이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 다시 설명하면, 그 동안은 행성들의 질량을 정밀하게 알지 못해서 행성의 궤도 운동 계산에 오차가 컸고, 계산 오차 때문에 실제 궤도운동의 예측에 차이가 발생했던 것이며, 탐사선들이 정밀하게 측정한 행성 질량을 이용해서 궤도 운동을 다시 계산했더니 실제 행성의 운동과 잘 맞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행성X는 계산치와 실제 행성 운동이 차이 나서 가정했던 것인데, 이제 더 이상 행성X가 필요 없어져버린 거다.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_-; 탐사선들이 거대 가스 행성의 질량을  하나둘씩 정확하게 밝히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대목에서 허탈하고 황망한 천문학자 많았을 것임 -_-;;;

    이로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고, 백여 년의 오랜 기간 많은 천문학자들이 애타게 찾을려고 매달렸던 행성X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근대사에 들어서 뉴턴(Isaac Newton, 1643~1727)에 의해 고전 역학이 확립된 이후 천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행성의 운동을 정확히 계산하는 데에는 고려해야 할 복잡한 요소가 많고, 정밀한 계산과 관측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계산에 오류가 많았다. 이런 오류는 태양계에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행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과 연결되기 일쑤였다. 이런 엉뚱한 행성 가설이 지금 생각하면 황당할지 몰라도, 당시 천문학으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었다. 행성X가 1990년대 초반까지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었던 것처럼...

    다른 예를 들면, 1800년대 천문학자들이 태양계 가장 안쪽에서 공전하는 수성의 궤도 운동이 계산치와 미소하게 벗어나는 현상을 발견하자, 이 현상이 벌컨(Vulcan)이라는 가상의 행성이 중력을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천문학자들이 생겨났다. 당연히 벌컨을 찾는 천문학자들도 생겨났고... 하지만, 1910년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일반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보정하자, 수성 궤도의 미소한 변동을 설명할 수 있었고, 이는 일반상대성 이론이 올바르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되었다. 이로서 벌컨 행성의 가설은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벌컨 행성은 1900년대 중반까지 SF소설에 등장할 정도로 대중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존재하지 않는 화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행성X도 유사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폐기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매달린 천문학자가 많아 안타까움도 크다만... 물론 그런 천문학자들이 헛수고를 한 것은 아니다. 행성X를 찾다가 명왕성을 발견하고, 벌컨을 찾다가 일반상대성 이론의 증거를 마련한 것처럼, 그들의 노고 덕분에 현대 천문학이 더욱 공고해지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안타까운 눈물이 ㅠ.ㅠ)


    행성X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해왕성 너머에 행성급 천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 운동을 교란하는 천체가 없다는 의미이므로, 해왕성의 운동을 교란하지 못할 만큼 멀리에 행성급 천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 천체는 행성X와는 또 다른 종류의 천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왕성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