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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elite Aug 10. 2015

별이 항성이라고?

용어 교정이  잘못된 사례

바로 앞글에서 혹성이라는 일본식 표현 대신 행성을 사용하도록 한, 바람직한 천문 용어의 교정 사례에 대해서 적었거든.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좋은 일만 있을 리가 없겠지? 이번 글에서는 잘못된 천문 용어 교정 사례에 대해서 적어보겠다.



별? 항성?


한동안 한국의 천문학계에서는 '항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대신 '별'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지금도 여기에 따르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니까... 예전에는 별이라는 말을 다양하고 넓은 의미의 천문 용어로 사용했는데, 그러지 말고... 별을 항성 즉 태양처럼 핵융합해서 자체 발광하는 천체, 이런 종유의 천체만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를 제한해서 사용하고, '항성'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말자... 이런 움직임이었다.

    얼핏 의도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행성이 뭘까 1편에서 잠깐 적었듯이 항성(恒星, fixed star)이라는 말은 고대인들이 우주의 구조를 잘못 이해하고 만든 말이라 항성의 물리적 성질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실제 항성은 우리 은하의 구성원이라 은하 중심핵을 천천히 공전하므로 하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아주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움직인다. 또한, 항성도 탄생과 죽음이 있어서 나타나고 사라지기도 한다. 짧은 인간 인생으로 인지하기는 힘든 천문학적 시간 단위로 벌어지는 일이라 그렇지, 항성도 항상 같은 상태가 아니고 변하는 것이다. 거기에... '별'은 순 우리말이다. 항성 대신 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순 우리말 천문 용어가 생긴다.


그런데, 항성 대신 별을 사용하자는 얘기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배경이 있다. 국제 천문학계에서 영어식 천문 표준 용어를 정하면서 항성을 Star로 정했던 것이다. 유사한 언어권인 유럽 국가들의 천문학계도 비슷하게 정했고...

    사실 밤하늘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별이 항성이기도 하다. 행성이나 혜성 같은 천체들은 지구 밤하늘에서 유난히 눈에 뜨여도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래서 'star'의 우리말 번역은 '별'이니까 "우리도 앞으로 항성 대신에 별이라는 말을 쓰자" 이런 식으로 얘기가 나왔던 것... "우리도 국제 천문학계 움직임에 따르고, 우리말 천문 용어도 생기고, 일석이조네"하면서 좋아할 일 같고, 그래서 나온 얘기겠지만...

은하수와 별들이 떠있는 밤하늘. 밤하늘에 보이는 대부분의 별은 사실 항성



문제


얼핏 좋아 보였는데... 문제가 무엇인지는 영어식 천문 용어와 우리말 천문 용어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Star = 항성 = 붙박이별

    Planet = 행성 = 떠돌이별

    Satellite = 위성

    Meteoroid = 유성 = 별똥별

    Comet = 혜성 = 살별/꼬리별

    Asteroid = 소행성


영어식 천문 용어에서는 Star를 항성이라는 의미로 제한해서 사용해도 의미 충돌이 별로 없다. 영어식 천문 용어에서는 대표적인 천체들을 단어 하나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항성에 대해서만 Fixed Star라는 말을 따로 쓰는 것이 어색하게 보일 정도다.

    하지만, 우리말 천문 용어로는 별 = 항성이라고 하면 의미 충돌이 심하다. 예를 들어 "별똥별의 별이 항성이니까 별똥별이 항성이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나와버린다. 우리말로는 '별'이 지구 하늘에서 보기에 점 혹은 비슷한 형태로 반짝이는 천체(및 같은 종류의 천체)를 의미했고, 천문 용어에서도 일관되게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갑자기 '별'만 의미를 제한한다면? 다시 말해 의미를 바꿔버린다면? 우리말 관습이나 다른 우리말 천문 용어들과 심한 의미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영어 천문용어와 달리 우리말 천문용어에서는 일관성이 크게 깨진다. 우리와 유사한 천문 용어 체계를 가진(정확히 말하면 우리말 천문용어 체계가 유래한) 중국이나 일본 역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는 여전히 恒星이라는 천문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영어에서도 일상 생활에서는 아직도 star를 우리말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별똥별을 'shooting star'라고 하는 것처럼... 영어의 star를 항성이란 의미로 제한해서 사용하자는 것은 천문용어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일상용어는 대상이 아니다. 이 글도 일상용어가 아닌 천문용어에 대한 것임에 유의하시길...)


세세하게 살펴보면... "별=항성"?이 우리말 관습과 맞지 않는데도 영어식 천문용어를 무리하게 따라야 한다면, 앞글에서 얘기했던 '혹성'을 '행성'으로 교정할 명분도 없어진다. 다른 일본식 쳔문 용어는 사용하면서도 특별히 혹성 만은 사용하지 못하겠다는 이유가, 혹성이라는 일본식 표현이 우리말 의미와 전통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영어식 천문 용어에 맞추기 위해서는 우리말 의미와 전통을 무시하면서 일관성을 깨뜨리겠다면? 이게 말이 되겠냐고 -_-; 국수주의와 사대주의가 기이하게 결합하기 일쑤인 한국에서 나타난 신종 코미디라고 비웃음 사지 않으면 다행 -_-;;;

    '항성'이라는 말이 실제 천체의 고유한 물리적 특성을 나타내지도 못한다는 주장도, 그런 식으로 보면 행성이나 떠돌이별이라는 표현도 천체의 고유한 물리적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현대 천문학에서 행성 외에도 혜성 등 별자리 사이를 떠도는 여러가지 종류의 천체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신성이나 초신성은 현대 천문학계에서도 공식 용어로 사용하는데, 사실 신성/초신성은 새로 생겨난 별이 아니고 나이 든 항성에서 일어나는 폭발 현상이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형성되어온 말이 현대 과학이 파악한 물리적 특성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고 걸고 넘어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우리말 뿐 아니라 영어 등 다른 나라 말도 마찬가지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말 천문 용어를 영어식 천문 용어와 맞춰야 하다니, 그런 발상부터 문제... 우리말 천문 용어가 적절한 체계를 갖추면 되는 것이지, 우리말과 언어 습관과 체계가 다른데도 영어식 천문 용어와 맞춰야 한다니?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오는지, 생각해 보면 어이 없을 지경... 앞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무지하게 일본식 천문 용어를 따라 쓴 사례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무조건 영어식 용어에 맞춰야한다는 발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완전히 얼토당토 않는 생각까지는 아니겠지만, "별=항성"?으로 제한해서 사용하자는 주장은 우리말 관습과 우리말 천문 용어 체계에 맞지 않는 잘못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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