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행성의 정의
(* 이 글 앞에 원래 있던 행성이 뭘까 1편 글을 편집 중 실수로 삭제해 버림 @.@ 내가 브런치에서 처음 적은 글이었는데 말이죠 ㅠ.ㅠ 삭제 복구는 안된다지만, 다행히 검색엔진 구글에 복사본이 저장되어 있어 그걸 이용해 새로운 글로 복구했네요. 그 통에 뜬금 없이 2편이 브런치 첫째글이 되어버렸지만, 그나마 복구는 됐으니 이게 어디냐 하고 있네요 *)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수백년 동안, 천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천체의 구조나 천체의 물리적 성질에 대한 이해가 급발전했다. 20만 년 가까운 현생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매우 짧은 기간의 발전인데, 여러 사람이 지적했듯이, 천문학이 그렇게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행성이 뭔지에 대해서는 21세기가 되도록 명확한 정의가 없었다는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새삼 놀랍다.
고대 사람들한테는 의외로 문제가 간단 명료했다. 앞글 행성이 뭘까 1편에서 설명했듯이, 맨눈으로 천문 관측하는 것을 기준으로 별 중에서 별자리 사이를 규칙적으로 떠도는 밝은 별을 행성으로 정하면 됐다. 사실은 혜성도 상당수가 규칙적으로 별자리 사이를 떠돌았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천문 현상이 별로 없었던 -_-; 고대인들은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됐다. 유일한 문제는 태양과 달을 행성에 포함시키느냐 마느냐 정도였다. 태양과 달을 포함하면 행성이 7개, 아니면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의 5개, 고대 천문학에서는 5~7개 행성의 운동을 이해하는 것 만도 심하게 복잡한 일이었다.
근대 천문학은 크게 2가지 점에서 고대 천문학과 맥을 완전히 달리한다. 첫째가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태양계의 구조를 이해한 것이다. 둘째는 천체망원경 등 다양하고 정밀한 천체관측 기구가 발명되고 정교한 물리/천문 이론이 발달한 것이다. 정밀한 관측 도구과 정교한 천문 이론을 이용해서 고대에는 모르던 천체의 새로운 물리적 특성도 이해할 수 있었고, 새로운 형태의 천체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성의 정의에 대해서는 고대부터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근대 천문학에서도 약간만 수정된 채로 받아들여졌다. 고대에 비해 태양-지구-달의 역할이 바뀌었지만, 나머지 고대의 행성들은 근대 천문학에서도 여전히 행성이었다. 망원경 관측이 발달하면서 천왕성(Uranus)이 1781년, 해왕성(Neptune)이 1846년에 새로운 행성으로 발견되었을 때도 역시 별 문제가 없었다. 천왕성이나 해왕성은 지구로부터 거리가 멀어서 맨눈으로 천체를 관측하던 고대인들이 몰랐을 뿐, 크고 우람한 덩치를 지녀서 행성 자격이 충분하게 보였다.
최초의 문제는 1801년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에서 세레스(Ceres)가 발견되었을 때 나타났다. 발견 당시부터 세레스의 크기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지만, 관측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종적으로 직경이 약 900 km 정도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태양계에서 행성으로는 중간 크기인 지구의 직경이 12,700km 정도이고, 가장 작은 행성인 수성의 직경이 약 4,800km, 지구의 위성인 달의 직경이 약 3,400km인 것과 비교하면, 세레스는 다른 행성은 물론 위성인 달보다도 한참 작았다.
당시 천문학계는 "작다고 행성 아니라는 법은 없으니까 -_-;"라며 찜찜해 하면서도 일단 세레스를 행성으로 인정하고 일단 넘어갔다. 그러다 다행인지 아닌지, 세레스 근처에서 비슷하게 작은 천체들이 엄청 발견되었다. 이들을 소행성(Asteroid)으로 분류하고, 1860년대 소행성 대(Asteroid Belt) 천체 중 하나라는 의미에서 세레스의 분류를 행성에서 소행성으로 바꾸면서 찜찜함을 겨우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30년 명왕성(Pluto)이 발견되었다. 다른 글(명왕성 6편 및 7편)에서 자세히 적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간략히 적으면, 명왕성을 행성으로 볼려니까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났다.
발견 당시에는 명왕성이 지구형 행성처럼 보였다.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으로 이어지는 거대 행성의 행렬 끝에 작은 지구형 행성이 나타난 셈이라 다소 의아스러웠고, 명왕성의 공전 궤도 엮시 행성으로 보기에는 의문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 지구급 크기라니 행성 자격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이후 천체 관측 기술이 발전하면서 1990년대까지 명왕성의 실제 물리적 성질이 하나 둘씩 밝혀지자, 최종적으로 명왕성은 직경이 2,300km로 세레스보다는 커도 달보다 작은 크기이고, 지구처럼 암석형 천체가 아니라 얼음과 각종 물질의 짬뽕이라서 혜성과 비슷한 천체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관측 기술이 발전하면서 행성과 행성 사이 공간에 대해서도 인식이 바뀌었다. 행성간 공간이 맨 위 제목줄 배경 사진처럼 깨끗한 공간은 아니고, 그렇다고 소행성대(Astroid Belt)처럼 몰려있는 것도 아니지만, 소행성 비스므래한 찌끄레기 천체들이 상당히 많은 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1990년대에는 해왕성 외곽이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며 카이퍼 대(Kuiper Belt)라고 혜성형 천체들이 많이 몰린 구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이퍼대 천체들이 어떤 중력 교란을 받아서 태양계 내부로 진입하면 혜성이 되는 것이다. 결국 명왕성은 카이퍼 대 혜성들의 친척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달보다도 작은 명왕성이 물리적 성질까지 혜성과 닮았는데 과연 행성으로 봐아하는가 찜찜함이 늘어갔지만, 그래도 명왕성은 다른 혜성과 구분이 될 정도로 덩치가 크잖나? 딱히 행성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이르자, 명왕성 바깥쪽에서 세레스보다 크고 일부는 명왕성과 동급일 정도로 크기가 크면서, 물리적 성질도 명왕성과 닮은 천체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카이퍼대 천체들이 명왕성의 친척으로 밝혀진 것에 더해서, 이제는 명왕성의 형제들까지 발견되어 명왕성의 족보(?)가 드러난 셈이다.
명왕성이 행성이라면 명왕성의 형제들도 행성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명왕성의 형제들이 발견되었을 때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었다고 뉴스 기사가 뜨곤 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많겠지? 그런데, 바로 아래 사진처럼 형제가 한둘도 아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는 거다. 얘네들을 모두 행성이라고 하자니 행성이 너무 많아진다. 앞으로 관측 기술이 발달하면 얼마나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게다가 예내들이 확실하게 행성급 천체도 아니라서 애매함이 증폭되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명왕성의 형제들이 늘어가자 천문학계는 명왕성의 형제들까지 행성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파와 세레스의 경우처럼 명왕성 형제를 행성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재분류해야 한다는 파로 양분되었다. 명왕성의 형제들이 늘어갈수록 이들 양대 파벌 사이의 논쟁은 격화되고 심화되었다.
천문학계를 대표하는 국제 단체인 국제천문연맹(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IAU)은 이런 문제와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그 동안 모호했던 행성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자 했고, 2006년에 새로운 행성의 정의를 도입했다. 도입하는 과정에서 명왕성의 형제들을 모두 행성으로 인정하는 방안부터 고대부터의 전통을 무시하는 급진적인 행성 정의까지 여러가지 방안이 검토되었고, 대략 [1] 기존의 행성을 최대한 포용하면서 [2] 공전 궤도 상에서 유일하게 우월한 천체를 행성으로 정의하고 [3] 명왕성과 형제들은 행성으로 분류하기 곤란하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이런 방침에 따르는 여러 방안들을 검토하다가 최종 결론 난 새로운 행성 정의는 아래와 같다.
• 정의1 : 태양을 공전하는 천체
• 정의2 : 구형(球形, 공 모양, sphere shape)을 유지하도록 충분히 크기와 무게가 큰 천체
• 정의3 : 자신의 궤도 주변을 청소할 능력이 있는 천체
정의1은 이해하기 쉬울 것이고, 정의2는 충분히 큰 천체를 행성급 천체로 정의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위의 소행성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크기가 작은 천체는 구형을 이루지 못한다. 크기가 충분히 크다면 무게도 커지고 천체의 중력이 커져서, 과도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무너지고 뭉개져서 구형에 가깝게 된다. 지구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산은 높이가 8km 정도인데, 만약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구에 100~200km 되는 높은 산이 튀어나와서 지구가 공모양이 아니라 뾰족한 뿔이 도드라진 모양이 된다고 해도, 지구 중력 때문에 천천히 무너지고 뭉개지고 높이가 낮아져서 결국은 지구가 다시 구형이 된다. 그래서 크기가 크고 중력이 강한 천체한테는 구형이 가장 안정된 형태이다. 결국 정의2는 행성급이 되려면 안정된 형태를 유지할 정도로 크기가 커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지구의 달도 정의2를 만족하는 구형의 천체이다. 문제는 지구의 달이 태양을 공전하지 않고 지구를 공전한다는 사실이다. 즉 정의1부터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달은 행성급 천체가 될 수 없다.
정의3은 행성의 공전 궤도에 사실은 행성 하나만 딸랑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천체가 있기 때문에, 공전궤도 상에서 유일할 정도로 우월한 천체를 행성으로 정의하기 위해 도입했다. 우월함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정의하기 막연하고 애매하기 때문에, 궤도 청소력이라는 물리적으로 계산 가능한 양을 도입했다.
지구를 예로 들면, 지구 주변의 공간이 깨끗한 것은 아니고 지구와 함께 태양을 공전하는 소행성 규모의 천체나 운석 규모의 작은 천체들이 많다. 이들 작은 천체의 거리와 속도가 지구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면 지구 중력의 영향으로 지구 공전 궤도 바깥으로 밀려나거나 심하면 튕겨 난다. 거리와 속도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라면 지구와 충돌해서 지구에 흡수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별똥별이 바로 지구에 흡수되는 천체의 예이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서 지구 주변의 궤도가 지금처럼 깨끗하게 청소되고, 지구는 공전궤도 상에서 유일하게 우월한 천체가 된다.
천체의 궤도청소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천체의 중력이다. 중력이 강하다면 주변 천체를 밀쳐내거나 흡수하기 좋기 때문이다. 천체의 중력은 천체의 무계에 비례하고, 천체의 크기가 클수록 무게도 커지므로, 크기가 크고 무게가 무거운 천체가 궤도청소력이 좋다. 천체의 중력 다음으로 중요한 요인은 공전 속도이다. 빠르게 공전하면 궤도를 자주 청소할 수 있기 때문에 궤도청소력이 커진다는 원리다.
정의3의 궤도청소력 때문에 명왕성과 형제들이 행성으로 분류할 수 없다. 명왕성 궤도에서 궤도청소력이 충분하려면 중력 즉 무게가 명왕성보다 훨씬 커야 한다. 그리고, 명왕성과 형제 천체들 주변에 비슷한 친척과 형제들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충분한 궤도청소력을 갖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에 날카로운 사람이라면 정의3이 정의2를 포함한다는 것, 즉 행성을 정의하는 데에는 정의2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사실 정의1~3은 단지 행성 만을 정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태양을 공전하는 여러 종류의 천체들을 계층적으로 분류하기 위한 정의이다.
정의1 만 만족하고 정의2~3을 만족하지 못하는 천체를 태양계 소천체(Small Solar System body, SSSB)라고 한다. 태양을 공전하지만 크기가 작은 천체라는 뜻으로, 소행성대에 속하는 소행성의 대부분, 카이퍼대 천체의 대부분, 그 밖에 행성 사이의 공간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작은 찌끄레기 천체들 대부분이 SSSB에 속한다.
정의1~2까지 만족하지만 정의3을 만족하지 못하는 천체는 왜행성(dwarf planet)으로 분류한다. 쉽게 말하면, 외양은 어느 정도 행성의 면모를 갖췄어도 능력은 못미치는 천체가 왜행성이다. 명왕성과 형제들, 소행성 중 세레스가 왜행성으로 분류된다. IAU의 새로운 행성 정의에 의해서 명왕성이 행성에서 왜행성으로 강등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텐데, 그 왜행성의 정의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행성→소행성으로 분류가 바뀌었던 세레스가 이 와중에 소행성→왜행성으로 또 다시 분류가 바뀜}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지구의 위성인 달은 정의2는 만족하지만 정의1부터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즉 태양을 공전하지 않기 때문에 왜행성이 아니고 지구의 위성이다.
정의1~3까지 모두 만족하면 비로소 행성으로 분류된다. 외양부터 안정적인 형태인 구형이면서, 능력도 공전 궤도 상에서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충분한 궤도청소력을 갖춘 천체라는 뜻이다. 달의 경우와 비슷하게, 정의2~3을 만족하지만 정의1은 만족하지 못하는 천체도 가능하다. 거대 행성인 목성과 토성에는 크기가 거의 수성 정도인 위성들이 있는데, 이들이 목성이나 토성 대신 적당한 태양 공전궤도 상에 있었다면 충분한 궤도청소력을 가지면서 행성이 될 수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어째거나 태양이 아닌 목성이나 토성을 공전하기 때문에 행성이 아닌 위성으로 분류된다.
유명한 영화 '아바타'(Avatar, 2009)는 판도라라는 가상의 외계 천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상으로 판도라는 지구보다 중력이 약간 작고 크기도 지구보다 약간 작지만, 대기가 조성되어 있고 다양한 생물이 번성하는 지구급 천체이다.
그런데, 아래 영화 속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IAU 행성 정의에 따르면 판도라는 지구와 달리 행성이 아니고 위성이다. 항성 주위를 공전하지 않고 거대한 외계 행성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판도라가 지구급으로 커다란 천체라도 행성이 아니고 위성인 것이다.
현대 천문학은 외계 행성들을 많이 발견하고 있지만, 현재의 외계 행성 탐색 기술에 한계가 많아서 생명이 번성할 수 있는 지구급 외계 천체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 속에서도 우리 태양계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특이하고 희한한 외계 행성들을 많이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외계 행성들을 고려할 때, 거대한 외계 행성 주위에 판도라처럼 지구급 거대 위성이 있고, 거기에 생명이 번성한다는 영화의 설정도 과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IAU가 내놓은 새로운 행성 정의가 곤란한 문제를 잘 해결했을까? 일견 그런 것처럼 보인다. [1] 전통적인 행성 정의를 최대한 포용하면서 [2] 논란이 되었던 명왕성과 형제들을 왜행성으로 재분류했으며 [3] 태양을 공전하는 다른 천체들까지 계층적으로 분류했다. 그 동안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정의에 땜질식 처방을 덕지덕지 붙이는 방식으로 태양계 천체들을 분류했지만, 이제부터는 뭔가 틀을 갖추고 태양계 전체를 보게 된 거다.
하지만 새로운 IAU 행성 정의는 새로운 찜찜한 문제들도 많이 낳았다. 새로운 문제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전문적인 천문학 지식이 많~~~이 필요하고 설명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영문 위키 항목인 'IAU definition of planet'을 참조하길 바라며 생략하고, 대략 만 이야기해 보자.
새로운 IAU 행성 정의는 전체적으로 악평을 한다면, 전통적인 행성 분류와 현재 태양계 상태에 맞추는 것에 급급한 인상을 주는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일단, 현재 태양계의 상태나 천체의 상태에 대한 분류가 천문학자마다 약간씩 다를 수 있는데, 이런 약간의 분류 차이가 결국 행성 분류의 차이를 낳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 태양계의 상태가 미래에 변해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외계 행성 탐색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외계 행성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현재 관측 기술로는 외계 행성이 IAU 행성 정의에 들어맞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 관측 기술이 발달하면 확인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현재 기술로도 예상 못했던 희한하고 다양한 외계 행성들이 발견되는데, 미래에 이런저런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하면 얼마나 아스트랄한 외계 행성이 발견될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태양계의 상태가 약간 변화해도 적용하기 힘든 IAU의 행성 정의를 예측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외계 행성에 무난하게 적용할 수 있을까? 딱 봐도 아닐 것 같지? -_-;
이렇게 공전궤도 상의 유일하게 우월한 천체를 행성으로 정하니 어쩌니, 이를 위해 궤도청소력이라는 물리량을 동원하니 어쩌니 하는 기준들이, 현재 태양계 상태로는 그럭저럭 들어맞지만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제대로 적용하기 힘든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미래에 닥치게 될 쉽게 알 수 있는 여러 사항들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 맞추기 급급한 행성 정의라는 악평이 나오는 거다.
그리고, 명왕성과 형제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분류인 왜행성도 문제가 많다. 물리적으로 왜행성을 정의하는 조건인 정의2에 문제가 많음은 영문 위키 항목을 참조하길 바라면서 설명을 생략하겠지만, 관련 문제 때문에 외견 상으로는 왜행성의 조건을 충족하지만 아직 왜행성으로 공식 분류되지 못한 천체가 많다.
그리고, 물리적 성질이 많이 다른 세레스와 명왕성 형제들을 같은 종류로 분류하는 것도 별로 좋지 않다. 이에 대해 동류가 아닌 동급의 의미로 분류한 것이라고 해명할 수는 있겠다. 기존 행성 분류도 수성-금성-지구-화성의 암석형 행성과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의 가스형 행성은 물리적 성질이 많이 다르지만, 동급의 행성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더라도 소행성대 천체와 같이 분류해야 할 세레스를 뚝 떨어뜨리고, 카이퍼대 천체로 분류해야 할 명왕성과 형제들을 뚝 떨어뜨려서 같이 묶는 것이 과학적으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잖나. 등등등... IAU의 새로운 행성 정의에는 다양하게 찜찜한 문제가 많다.
이런 사태를 -_-;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하면, 현재까지 우리 태양계 상태로는 행성의 정의에 대해서 심각할 필요가 없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심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런 안이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현재 태양계 상태로는 기존 행성 분류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명왕성과 형제들만 행성 아닌 것으로 처리해 버리기만 하면, 어떤 방식으로건 대충 행성을 정의해도 큰 문제가 없거든.
그렇더라도 어떻게 세계적인 천문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았는데 이런 닭대가리 같은 -_-; 짧은 생각으로 결론이 났는지... 참... 참... 그래도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았으니까 막 나가는 결론은 피했다고 안도해야 하는 건가 -_-;;;
그런데 말이지... 더 생각해 보면 이런 경우가 웬지 낯설지 않은 거다.
사실, 세계적인 규모의 대기업에서 세계적인 인재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brain storming이라면서 치열하게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결과 훌륭한 제품과 사업 기획이 출시... 될 것 같지만 실제 결과물은 닭대가리 수준인 경우가 종종 있다. 소프트웨어 최대 공룡 기업인 Microsoft사의 제품들이 과거에 이런 경우가 많았고, 한국 최대 대기업인 S사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심지어 어떤 대기업에서는 인재들이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았음에도 오히려 기업이 망하는 방향의 결론이 한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나와서, 결국 그 기업이 진짜로 망하기까지 한다.
작고한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애플사 제품 기획의 전권을 쥐고 있던 시절에 애플사에서 획기적인 제품이 많이 나왔는데, 물론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잡스가 고안한 것이 아니고 주변의 의견을 모아서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들을 수렴해서 하나의 제품을 기획할 때 사실은 독단적인 고집에 잡스 성질머리라고 주변에서 싫은 소리까지 들어가며 잡스가 밀어붙였다. 그 결과로 출시된 제품에서 일부 잡스 성질머리 탓 결함이 있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른 기업에서 내놓지 못했던, 시장과 트렌드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제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잡스 성질머리가 없던 시절의 애플사는 훌륭한 인재와 기술적 잠재력을 갖췄고 충분한 협의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출시된 제품은 지리멸렬하기 일쑤였고, 애플사는 나락으로 빠져들어 망할 거라는 비관적 전망이 횡횡했었다.
여러 사람이 의견을 모을 때 장점은 단연 막 나가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비교하려고 잡스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서 그렇지, 사실은 개인의 독단이 주도할 때 잡스처럼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는 드물고, 막 나가서 심각한 결함이 생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문제는 다수가 합의한 결론도 바람직한 결론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인데, 막 나가감을 피하려고 의견 수렴에 집중하다 보면 이런 부분을 놓치기가 쉬운 것 같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의견을 모아 만든 새로운 행성 정의가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는 사실, 우리에게 저런 부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경종을 울려주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