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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Jun 23. 2020

잘 먹겠습니다

2020년 그 여름, 또 올까?

신기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퇴근 후 집에 들어온 남자는 싱크대로 달려가 어제 먹었던 설거지 거리를 깨끗이 씻어 낸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 그래 오늘은 어묵탕을 만들면 되겠다 결심을 하고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어묵을 꺼낸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얹히고 해동되지 않은 어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기 시작한다. 날 선 칼로 꽁꽁 얼어버린 어묵을 자르기란 쉽지 않지만 아무렇지 않게 재료들을 준비해 간다. 반찬통에 큼직큼직하게 정리해 둔 파도 썰어내고 사두었던 버섯도 내어 논다. 냉동실에 남겨 놓은 만두 두 개마저 꺼내 놓으니 어느새 어묵탕 냄비가 푸짐한 잔칫날이 된 듯 풍성해진다.    


오늘도 정신없이 하루가 갔다. 행사가 있어 종일 힐을 신고 뛰어다녔더니 발가락과 발바닥이 더 이상 걷기 싫을 정도로 힘들다. 그래도 퇴근하는 발걸음은 즐거운 것 같다. 그가 기다린다고 했다. 어떤 것도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다.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 앞으로 지나갈 역들이 너무 많지만 내 앞에 자리가 생길 거란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빨리 오라는 그의 목소리 끝에 기분 좋은 여운이 흘러나와 귓가에 맴돈다.   

 

저 멀리 있는 그가 한눈에 보인다. 어떻게 보일까? 가까워지는 그에게 다가갈수록 지하철 스크린에 비친 나를 찬찬히 살펴본다. 오늘따라 신경 쓴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렇게 입고 다니라는 그의 말에 조금 놀랍지만 마음에 든 것 같아 기분은 좋다.    


집에 오자 그가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나는 소파에 앉아 아픈 발을 쉬게 한다. 이상하게 자꾸만 식사를 준비하는 그의 뒷모습에 눈이 간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등 뒤로 분주하지만 경쾌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그게 만일 나라면, 기분 좋은 대답 같지만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참 낯설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를 보는 내 마음이 안타깝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닐 텐데. 실망시키면 어떡하지.    


요리가 하나둘 준비되고 내 앞에 놓인 테이블에 새로 산 수저와 젓가락 세트가 가지런히 놓인다. 엄마가 보내준 김치를 썰어 접시에 내어온다. 현미가 가득한 밥그릇과 완성된 어묵탕이 담긴 국그릇까지 어느새 테이블에 하나의 식사가 차려진다. 기분? 글쎄.. 그저 신기하다는 단어뿐, 어떻게 이 상황과 감정과 느낌을 표현해야 할지 마땅한 표현을 찾기가 복잡하다. 차려진 테이블의 장면을 보며 이게 뭘까 하는 물음표와 느낌표만 가득하다. 사실이지만 사실 같지 않고, 이 시간을 붙잡고 싶지만 내 것이라고 담기에는 간직한 것들이 한여름밤의 꿈처럼 포르르 사라질까 두렵다.     


이곳에서 내어 받는 식탁이 참 신기하고 낯설다. 누군가의 수고와 기쁨의 대상이 되어도 되는 걸까 자꾸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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